주현주라고 했다. 뒤부터 읽어도 똑같은 이름 주현주, 그녀는 좌우가 똑같은 겉과 속이 똑같은 그런 사람 같았다. 혼자 피식 웃었다. 에스프레소에 취했는지 바의 분위기에 취했는지 머릿속이 멍했다.
"이런 곳에 혼자 오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현주가 한 단어 한 단어를 정확하게 발음하려고 힘을 주고 있다는 것을 희서는 느끼고 있었다. 취한 걸 스스로 알고 있지만 그렇게 보이고 싶지 않을 때 희서가 하던 버릇이었다. 그녀가 가여워 보였지만 그렇게 보인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혼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안식처처럼 편하게 스며드는 곳이 아닐까요? 외로울 때?"
현주는 콧방귀를 끼며 대꾸했다.
"흠, 그렇게 보이고 싶은 거죠. 외롭다고 소리치고 싶은 거예요. 하지만 그걸 견뎌보고 싶은 힘을 얻어가려고 오는 겁니다."
갑자기 말끝이 정중해지자 희서는 몸을 세워 바로 앉았다.
"요즘은 아무리 가까워도, 살을 맞대고 있어도 외롭거든요. 외롭다고 소리만 친다고 외로움이 사라지지도 않죠. 외로운 사람들을 보면서 그 안에 도사리고 있는 아픔 뒤 감춰진 힘을 얻으려는 거예요."
"그렇군요. 지금 이겨내려는 아픔이 있으신가 보군요."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뭐 항상 보는 게 아픔이고 통증이고 외로움이라서 저는 다른 사람들의 통증을 위한 기도를 하러 이곳에 온다고나 할까요? 이런 질척한 재즈바에 말이에요."
"다른 사람의 통증이라면... 종교적인 바람이나 그런 건가요? 기도를 하신다니 말이죠."
"아, 저는 산부인과 의사예요. 처음엔 이게 생명의 직업이라고 생각했었어요. 젠장! 생명을 축복하고 생명을 위해 행복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려고 택한 건데..."
희서는 갑작스럽게 쓸쓸한 표정으로 꼬냑을 마시는 현주가 무거운 마음을 벗어날 수 없어 방황하는 것처럼 보였다. 검은 구름이 몰려오는 듯한 회색의 표정이었다.
생명은 빛의 단어다. 영롱하게 빛나며 얼마나 희망을 주는 말인가. 그런데 현주는 그 생명에 대한 얘기 사이에 '젠장'이라는 단어를 끼워 넣고 있었다.
"그런데 무슨 일 하세요? 물어봐도 되요?"
"아, 네, 저는 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쳐요. 영어요. 영어학 이론도 가르치고요."
"오, 멋진 일 하시네요. 정말 생명을 키우는 일을 하시네요. 부럽습니다."
희서는 그녀 앞에 생명에 집착하고 있는 취기가 잔뜩 오른 산부인과 의사가 정말 희서를 부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부럽다는 한 마디 억양에 온갖 슬픔이 다 들어있는 것 같았다.
현주는 마치 금세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 미간을 찌푸리면서 바텐더를 불러 스트레이트 꼬냑을 한잔 더 주문했다. 희서의 다 식어버린 에스프레소가 든 잔이 테이블 위에서 먼지처럼 작게 보였다. 희서도 에스프레소를 한잔 더 시켰다. 뜨거운 에스프레소 향이 입안을 돌아 넘어가며 희서를 더 건조하게 만들고 있었다.
"생명을 가지려고 하는 사람들, 돌보러 오는 사람들보다 생명을 없애달라고 오는 사람들이 더 많아요. 아직 제가 젊어서 그런지 아무 감정도 없이 해달라는 대로 해줄 거라 생각하나 봐요. 미칠 것 같아요.... 아..."
현주는 울고 있었다. 희서는 우는 현주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아, 정말 가여운 영혼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