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dawn)과 황혼(dusk), 그 트와일라잇(twilight)
빛이 오고 있다는 신호, 여명입니다. 그전 어두운 까만 새벽은 새벽 별을 마음에 또렷하게 새길 수 있는 차가운 이성의 시간이죠. 곧 달과 별들이 빛으로 흐려질 때쯤 바다에는 배들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런 여명 뒤 해가 떠오릅니다.
여명, 은은하지만 강한 힘을 주는 이른 새벽의 그때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입니다. 눈을 부술 듯이 쨍하고 뜨는 해를 따라 매년 초, 매월 초, 매일 아침을 기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저는 어쩐지 그 전의 들끓음이 심장을 조여 더 살고 싶게 만듭니다.
일출, 사람들이 분주해지기 시작합니다. 저는 너무 밝아지는 세상이 두렵기도 해서 눈을 감고 목을 움츠려요. 해와 마주하기 전 하루의 색깔을 정하면 따갑고 수다스러운 빛이 없어도 가만히 할 것들을 하나씩 차분히 해나갈 수 있어요. 혼자의 충분이나 풍성을 믿으면서 스스로 가장 저 자신에 가깝다고 느끼는 때입니다.
산을 오르는 지인은 정상의 일출을 보러 가는 것보다 일출 전 수십여 분간의 여명을 즐기러 간다고 합니다. 모두들 빛에 몰두할 때 그 빛이 오는 길을 같이 걷는 거예요. 얼마 전 새벽 산에서 제 등에 서서히 오르며 제 힘든 걸음을 받쳐주던 여명을 기억합니다.
정상의 빛이 감춰버린 꼬리의 그 긴 여운을 하루, 한 달쯤의 에너지로 담아 옵니다. 제대로 잘 살고 싶다는 마음에 듬뿍 여명의 기운을 담아 옵니다.
하루 빛의 처음을 예고하는 여명은 세상에 빛을 내주어 터질 듯한 시간들을 만듭니다. 사람들과 섞여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하루를 채우도록 합니다. 죽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죽을, 밥을 먹어야 하는 사람에게는 밥을 주는 세상이 좋습니다. 기꺼이 땀 흘린 손을 내밀어 죽도 먹고 밥도 뜨며 하루를 밀고 나가는 저를 다독입니다.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든 제가 하는 만큼 튕겨 올려져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해피엔딩이라 믿어요.
재미있고 신나고 행복하고 찌질하고 더럽고 치사할 때도 있는 날을 정리하며 기운이 다 빠질 때쯤이면 해도 지치고 해가 주는 빛도 바래져 슬슬 뒷걸음질 치며 준비를 합니다.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추파도 던지고 사랑도 만나고 춤도 추고 키스도 하면서 하루의 또는 삶의 기울기가 내리막으로 돌아섭니다.
빛이 떠난다 해서 삶이 당장 끝나는 건 아닙니다. 사람들이 분주히 집으로 돌아가고 바다를 항해하던 배들도 닻을 내릴 곳을 찾아 안식으로 들어갑니다. 별들이 드러나고 달빛이 진해지면 고요히 다음 시간을 준비해야 합니다.
아주 까맣게 칠흑 같은 밤이 오기 전까지의 빛이 황혼으로 가슴에 남아 사람들을 반성하게 합니다. 일기도 쓰고 눈물도 흘리고 다짐도 합니다. 포근한 이불속에 얼굴을 묻으면 어느새 눈물 자국으로 남았던 가슴의 찌꺼기가 잠 속에서 주검이 되어 꽃상여를 타고 훨훨 날아갑니다.
곧 여명이 옵니다. 그리고 하루를 제대로 지나 황혼으로 걸어 들어가야 합니다. 그게 인생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