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새해 소원
내년 생일이 당연히 오지는 않는다 #1
1월, 아빠가 죽은 날은 새해가 되고 바로 다음 날이었다. 그 해 나의 새해 소원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아빠가 눈을 뜨는 것, 그리고 아빠를 죽게 만든 모든 사람이 불행해지는 것이었다.
아빠는 흔히 말하는 호탕한 성격이었다. 사람, 술, 노래, 노는 것 전부 좋아했다. 아빠 주변엔 사람이 많았고 아빠는 늘 즐거웠다.
엄마는 아빠와 정반대였다. 눈 한 번 돌리지 않고 공부해 교사가 되었고,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도 하는 착실한 모범생이었다.
아빠는 우연히 친구를 따라왔던 교회에서 엄마를 처음 만났다고 했다. 아빠는 엄마에게 한눈에 반했고, 엄청난 구애를 시작했다. 아빠는 그때 이야기를 할 때마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엄마가 하얀 천사 같았다는 말을 꼭 덧붙였다.
연애 경험이 없었던 엄마는 아빠가 무서웠다고 했다. 아빠가 가죽 옷을 입고 오토바이를 탄 채 엄마 퇴근길에 나타난 날, 엄마는 동네 창피해서 일단 데이트를 시작했다.
"날라리 같앴는데 이야기해 보니 공무원에, 건실하고, 사람 좋아 보이더라고."
엄마아빠의 연애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엄마는 늘 저 구간에서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말했다. 사랑에 빠졌던 엄마가 보여서 나는 저 구간을 굉장히 좋아했다. 수줍어지는 엄마 얼굴이 새삼 신기하기도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반대도 있었지만 엄마아빠는 기어이 연애 결혼에 성공했고 다음 해 여름, 내가 태어났다.
불수능이라 말이 많았던 그해 나는 수능 시험에서 평소보다 100점 이상 떨어진 성적표를 받았다. 당연히 재수를 하고 싶었지만, 나의 게으른 성향을 아는 엄마는 완강히 반대했다.
"너 절대 못해. 3학년 되서 편입하고 일단 성적 맞춰서 들어가자."
절대 못한다는 엄마의 말에 서럽지만 반박할 수 없었다. 엄마아빠의 말을 단 한번도 거스른적 없던 나는 그때도 수긍하고 경기도의 한 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렇지만, 한 달도 안 되어 그 학교에서 제적당했다.
그냥 가기가 싫었다. 한 달이 지나고 계속 무단으로 결석하자 학교 측에서 제적 처리를 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한 달이 지나고 제적 당한 것이라 등록금도 돌려받을 수 없었다.
엄마는 불같이 화냈고 아빠는 푸하하 웃었다. "역시 내 딸"이라며 하고 싶은대로 하라고 했다.
알고보니 공무원이었던 아빠는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쯤 공무원을 냅다 그만두었다고 했다. 어렸던 나는 아빠의 퇴직을 그리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때의 엄마는 아빠가 너무 무책임하다고 생각했고, 딸 셋을 데리고 혼자 살 생각까지 했다고 했다.
아빠와 이혼하지 않고 쭉 살았던 것처럼 이번에도 엄마는 결국 내 편이 되어주었다.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며 금전적 도움을 일부러 주지 않긴 했지만 말이다.
이렇게 나는 아빠 성격을 빼다박았다. 그래서였을까. 아빠는 딸 셋 중 첫째인 나를 유난히 더 예뻐했다.
아빠의 생각이 곧 내 생각이었고, 나는 늘 아빠를 이해했다. 엄마아빠가 다툴 때도 나는 아빠 편을 들었고, 아빠랑 훨씬 더 친했다. 연락하는 남자나 남자친구가 생겼을 때, 헤어졌을 때 등등 모든 이성 문제를 아빠와 나눴다.
아빠는 남자는 많이 만나봐야 한다며 내 연애를 적극 지지했고, 더불어 어디 가서 실수하지 말라고 친히 내 주량도 늘려 주었다. 덕분에 나는 깔끔한 술버릇과 어디 가서 장단은 맞출 수 있는 주량을 갖추게 되었다.
아빠가 사업을 시작한 지 7년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엄마와 한창 다투던 시기를 지나 아빠의 사업도 안정이 되었고, 금전적으로도 나아지고 있었다.
아빠는 방역 업체를 운영했었는데, 나는 아빠가 일하는 현장을 좋아했다. 당연히 몸에는 안좋겠지만 소독약 냄새도 좋았고 무엇인가 정화되는 기분이 좋았다. 대학생 때는 아빠를 도와 현장에서 직접 기계를 다루기도 했다. 덕분에 지금도 나는 벌레는 딱히 무서워하지 않는 강심장을 지니게 되었다.
그 무렵 아빠와 나는 육회에 빠져 있었다. 아빠가 새롭게 만든 육회 양념이 너무 맛있었고 맥주를 마시며 동생들과 같이 음악 방송을 봤다. 엄마는 석사 논문을 쓸 때라 정신이 없었고 아빠와 나는 이때다 싶어 기회만 되면 술을 마셨다.
아빠는 딸 셋과 대화가 통하고 싶다며 늘 음악 방송과 예능을 챙겨봤다. 그때의 나는 씨엔블루와 성시경을, 동생들은 투피엠을, 아빠는 씨스타를 좋아했다.
그리고 엄마가 퇴근할 시간에 맞추어 엄마가 먹을 저녁을 만들고, 엄마가 좋아하는 갈색추억을 퇴근 bgm으로 틀어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주말에는 다 같이 노래방을 갔다. 아빠는 엄마랑 오붓하게 있고 싶다며 너네끼리 놀라고 늘 방을 두 개 잡아 주었다. 우리끼리 놀다가 서비스 시간을 주시면 엄마아빠가 있는 방으로 넘어가 다 같이 노래하는 게 우리의 루틴이었다.
우리 아빠는 이렇게나 다정한 사람이었다.
여느 때와 똑같은 하루의 시작이었다. 아빠는 어느 아파트의 소독을 맡았고, 엄마는 출근했고, 대학생이었던 나는 서울 기숙사로, 동생들은 학교를 갔다. 할머니가 강아지와 아침 산책 가는 모습을 보았고, 외할머니가 내가 좋아하는 총각김치를 담갔다는 전화를 받으며 버스를 탔다. 언제 내려오냐는 아빠의 문자에 아빠가 육회 만들어주는 날이라고 답장을 했다.
수업은 없었지만, 한참 중요한 시험을 준비할 때라 하루 종일 도서관에 틀어박혀 있었다.
시험은 두 달 정도 남았었고 잔뜩 예민한 상태였다. 도서관에서 울리는 진동 소리에 미간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마 나 도서관인데 급한 일이야? 아님 내가 이따 걸게."
"엄마 말 잘 들어. 아빠가 사고가 났어."
그날은 아파트 단지 전체의 지하 주차장 소독을 마무리하는 날이었다. 주변에 '공사 중' 표지판을 치고, 아빠 혼자 마무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사다리에서 떨어졌다.
표지판이 있어서인지 한참 동안 아무도 아빠를 발견하지 못했다. 아파트 경비 아저씨가 나오지 않는 아빠를 찾아 나섰고 쓰러진 아빠를 발견해 119에 신고했다. 머리부터 떨어졌지만 너무 늦게 발견돼 골든타임은 당연히 지나있었다.
"동생들은 어리지만, 너는 어른이잖아. 아빠를 보러 올지 말지 잘 생각해 봐. 아빠가 많이 다쳐서 많이 속상할지도 몰라."
엄마다운 말이었고 엄마다운 대처 방식이었다. 지극히 이성적인 우리 엄마. 그치만 나는 아빠를 닮아 그리 이성적이진 않기에 짧게 생각하고 바로 대답했다.
"가도 돼?"
"오늘은 차 끊겼으니까 내일 와. 중환자실이라 면회가 제한되어 있더라."
늘 또랑하던 엄마 목소리가 많이 떨렸다. 갑자기 엄마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엄마를 안심시키려 아무 말이나 떠들어댔다. 동생들에게는 잘 말하겠다, 내일 첫차 타고 바로 가겠다 이것저것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둘째와 셋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가 다쳤고 언니가 대표로 다녀온다는 말을 일부러 시답잖은 농담을 덧붙여했다.
전화 임무를 끝내고 휴게실 소파에 널부러졌다. 갑자기 너무 추웠고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손이 떨려 전화기를 몇 번이나 떨어뜨렸다. 무슨 일이냐 묻는 남자친구의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남자친구는 그 새벽에 택시를 타고 기숙사로 달려와줬다.
기숙사 근처 급하게 잡은 호텔 방에서 남자친구는 불안해하는 나를 안고 새벽 내내 토닥여 주었고, 그 따뜻함에 어이없게도 까무룩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