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년 생일이 당연히 오지는 않는다 #2

by 진동글

첫차를 타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해 겨울 그 버스는 아직도 생생하게 생각이 난다. 빨간 광역버스를 타고 멍하게 병원으로 갔다. 버스에서 내려 병원을 찾는데 어디 있는지 도통 보이질 않았다. 빨리 가고 싶은데 답답하고 초조했다.


군고구마를 파는 아저씨한테 길을 물었는데 내 얼굴이 영 아니었던지 아저씨는 벌떡 일어나 병원 정문까지 나를 데려다주셨다.


중환자실, 중환자실, 중환자실. 되뇌이면서 중환자실이 있는 층을 찾았다. 중환자실은 굳게 닫혀 있었고, 그 앞 의자에 고개를 숙인 엄마가 있었다.


하루에 몇 번 들어갈 수 없는 중환자실. 엄마와 한참을 기다려 처음 본 아빠는 지극히 비현실적이었다. 빡 머리를 민채 수많은 기계를 꽂은 아빠를 보고 어이없게도 신기 감정이 먼저 들었다. 부르면 대답할 것도 같아서 나도 모르게 "아빠 아빠" 작게 읊조렸다.


그날부터 아빠에게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아빠는 볼 수 없겠지만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매일매일 정제된 내용을 보내다 문득 정말 아빠한테 말하고 싶은 것이 생각났다. 평소 말하던 것처럼 가볍게 문자를 보냈다.


"아빠, 이번에 생일 못 챙겨줘서 미안해. 내가 빅사이즈옷 사다 주기로 했었는데ㅋㅋㅋ 시험이 뭐라구 시험 끝나고 파티하자고 했지? 나는 아빠 생일을 조금 미뤄도 된다고 생각했어. 정 안되면 내년에 크게 챙겨줘야지 생각했다니까~ 아빠의 내년 생일이 없을 수도 있다는 건 생각하지도 않았으니까. 정말 미안해 아빠."



사실 워낙 늦게 발견되어 수술도 의미가 없었다. 의사 선생님은 이제 장기전이라고 집 근처 병원으로 옮기자고 했다. 운 좋게도 본가에는 도립 병원이 있었고, 한 달 뒤 아빠를 옮겨왔다. 물인간 상태여서 그럴리 없겠지만 일반 병실로 옮겨온 아빠는 어쩐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엄마는 이제 서울로 가라면서 동생들한테 어떻게 말할지 같이 고민하자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기가 싫었다. 엄마를 혼자 두기도 싫었고 그냥 싫어서 고집부리기 시작했다.


"통학할게. 여기 근처에 도서관 있으니까 거기서 공부하구 올게."


"큰일이 있을수록 아무렇지 않아야 해. 엄마가 너 호들갑 떨지 말랬지? 엄마 힘 빠지면 네가 엄마랑 교대해야 하니까 올라가서 쉬면서 체력 보충하고 있어."


나는 늘 그렇듯 사실만 말하는 엄마를 이길 수 없다. 엄마 논리에 굴복하고 서울 가는 버스를 탔다. 몇 주동안 선잠을 자서 그런지 기절 직전으로 잠을 잤다. 상쾌하게 강변역에 내려서 캔커피를 샀다. 거의 원샷하듯 꿀꺽꿀꺽하니 힘이 샘솟았다.


지하철은 구의역을 지나 건대입구역을 향해가고 있었다.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아 맞다, 도착했다고 전화했었어야 하는데.


"어디야?"


"아 나 방금 도착했어! 연락한다는 걸.."


엄마는 들릴 듯 말 듯 아빠가 죽었다고 했다.



지하철역에 내려 가만히 앉아 있었다. 머리가 멈춰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냥 가만히 앉아있었다. 무수히 많은 생각이 비눗방울처럼 톡톡 떠올랐다 사라졌다.


거짓말 아닌가. 방금 전까지 보고 왔는데. 불과 두 시간 전까지 병원에 누워있었는데. 의사 선생님이 아빠 컨디션 좋다고 했는데. 어쩐지 아빠가 웃는 것 같았는데. 대학병원 의사 선생님이 장기전이랬는데. 이게 무슨 장기전이야. 의사 더럽게 무능하네. 아빠가 죽다니? 이제 아빠가 없는 건가. 나도 죽고 싶다. 아빠한테 가고 싶다. 아빠 보고 싶다. 지금 아빠한테 문자 보내면 답장해 줄 것 같은데.







장례식장에 들어가니 아빠 름과 상주로 올라가 있는 친척 오빠의 이름이 보였다. 갑자기 미친 듯이 화가 났다. 상복도 입지 않은 채 왜 내가 상주가 아니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 어른들은 원래 상주는 남자가 하는 거라며 나를 달랬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면서 악다구니를 썼다. 이름이 쓰여있는 표지판을 주먹으로 쾅쾅 내리쳤다. 모서리에 부딪혀 손바닥에 피가 났다. 아프지도 않았다.


친척 오빠가 일단 상복으로 갈아 입자며 나를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오빠에게 발길질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이거 다 찢겠다고 오빠 상복을 할퀴고 있는데 오빠가 갑자기 꼭 껴안았다. 이상하게 숨이 찼다.

몇 분이 지났을까. 숨이 조금 돌아오니 오빠한테 미안했다. 그래 오빠가 뭔 죄야. 약간은 머쓱한 기분이 들어 미안하다고 속삭이니 오빠는 나를 토닥였다. 오빠가 머리에 하얀색 핀을 꽂아주며 속삭였다. "장례식은 생각보다 길어. 힘내자. 괜찮아 괜찮아."


엄마와 동생들은 삼일 내내 울었다. 나는 이상하게 눈물이 나지 않았다. 울어서 힘든 엄마와 동생들을 대신해 조객을 받았다. 모두 한결같이 나에게 가족을 부탁했다.


장례식은 생각보다 바빴다. 엄마를 대신해 상조 회사, 보험 회사, 동생들 학교 등등 여기저기 연락하고 이래저래 눈코 뜰 새 없었다.


장례식 마지막 날, 아빠에게 마지막 인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엉엉 우는 사람들을 달래며 지하로 내려갔다. 아빠가 덩치가 너무 커서 염하기도 힘들었고 관에 넣기도 힘들었다는 말에 피식 웃음이 났다. 아빠 그러게 살 좀 빼라니까.


취조실 같은 유리 너머 수의를 입은 아빠가 누워있었다. 머리가 밀린 것 말고는 자는 것 같은데. 진짜 아빠가 죽은 걸까.


문을 열고 들어갔다. 동생들은 우느라 아빠를 쳐다보지도 못했다. 바보들 지금 많이 봐야지. 아빠 양볼에 쪽, 쪽 두 번 뽀뽀를 했다. 할 말을 잔뜩 생각했는데 정작 잘 생각나질 않아서 결국 짧게 속삭였다. "아빠 걱정 마. 나 믿지? 내가 다 잘 챙길게. 거기서 우리 구경하구 있어."


하얀 가루가 된 아빠가 하얀 유골함에 담겼다. 오빠는 아빠 사진을 들고, 나는 유골함을 들고 맨 앞에 섰다. 모두의 울음소리가 웅웅거렸다. 누가 누르고 있는 것처럼 무거웠다. "오빠 이거 떨어뜨리면 어떻게 돼?" 물었는데 오빠는 우느라 내 질문을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유골함은 점점 무거워졌다. 빠가 여기 앉아 있는 건가. 유골함을 빤히 쳐다봤다. 너무 무거워서 당장에라도 떨어뜨릴 것 같아 꽉 끌어안았다. 득 유골함에 엄마와 동생들이 앉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례식이 끝나면 바로 취업부터 해야겠다.







모든 것을 마무리하고 자취방으로 서둘러 돌아왔다. 엄마와 동생들이 걱정됐지만 이모들을 떠올리며 잠시만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있으면 눈물이 날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생각하니 장례식 첫날부터 지금까지 운 적이 없었다. 아, 남자친구가 장례식장 왔을 때 울었지. 드라마 보면 막 오열하고 쓰러지던데. 장례식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울던데, 왜 눈물이 안 나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꾸 토하고 싶었다. 장례식장에서 먹은 게 체했나 싶어 계속 토를 했다. 토하다 보니 눈물이 터져 나왔다. 한번 울기 시작하니 걷잡을 수 없었다. 울고 토하기를 반복하면서 생각했다.


어이가 없다. 당연했던 모든 것이 사실 당연한 게 아니었다. 아빠의 내년 생일은 없고, 우리 가족은 다섯 명이 아닌 네 명이 되었다. 나의 내일은 있어도, 아빠의 내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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