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슬쩍 꺼내 본 -신문배달 이야기(1)

1. 신문배달 이야기 (1)

by 해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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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신문이 오지 않았다. 보급소에 전화도 하고 처음 신청했던 보급 소장님께 전화도 했지만 받지 않았다. 문자를 남겼다.

‘오늘 신문이 안 왔습니다.’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그리고 다시 오늘! 오늘 신문이 오지 않았다. 다시 두 곳에 연락했지만, 답이 없었다. 무단결근 연속 2일이라니! 해명도 없이!!

그리고 오늘 6시 30분, 문을 열어보니 신문이 기다리고 있다. 아무런 변명도 없이 결근하더니,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쓰윽, 도착했다.

‘구독 해지를 통보할까. 왜 아무런 설명도 없고 문자 확인해 놓고도 연락이 없을까. 난 이유만 얘기해 주면 알았다고, 괜찮다고 해줄 텐데.’

처음엔 화가 났다가 슬쩍 걱정되었다가 오늘 쓰윽 시치미 떼며 도착한 신문을 보니 왠지 모를 안도가 느껴지기도 했다. 해명이 없는 이유는 분명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 어쩌면 말하기도 구차한. 그 옛날의 나처럼.


1. 신문 배달 이야기 (1)

공자는 만년에 〈위정 편(爲政篇)〉에서 다음과 같이 회고하였다. "나는 나이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吾十有五而志于學), 서른에 뜻이 확고하게 섰으며(三十而立), 마흔에는 미혹되지 않았고(四十而不惑), 쉰에는 하늘의 명을 깨달아 알게 되었으며(五十而知天命), 예순에는 남의 말을 듣기만 하면 곧 그 이치를 깨달아 이해하게 되었고(六十而耳順), 일흔이 되어서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네이버 지식백과]


누가 강요하지 않았음에도 쫓기듯 ‘그래야 한다’에 부합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깨달은 것은 역시 공자와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고, 그의 시계와 나의 시계가 다르고 중점을 두는 곳도 달랐다는 것이다.

스물한 살, 어느 날 국민은행 통장을 펼쳤다. 잔액, 321,560원.

‘다음 달까지 먹고살 수는 있겠군. 그다음엔?’

그래서 동네 신문보급소를 찾아갔다.

“저, 신문 배달하고 싶어요.”

지국장님은 나를 흘깃 보더니, 자전거를 탈 수 있냐고 물었다.

“네, 탈 수 있어요.”

사실, 자전거를 잘 타지는 못했다. 아주 오래전 잠깐 타봤고 그냥 별것 아니구나, 이 정도 생각하고 끝이었다. 자전거도 없었고, 지금 자전거를 탈 수 있을지 없을지도 확신할 수 없었지만, 나는 신문 배달을 해야만 했고,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탈 수 있다고 한 것뿐이다. 그뿐이다.


150부부터 시작, 체구가 작은 나를 배려해서 지국장은 많은 배달부가 선호하는 아파트 한 곳을 나에게 지정해 주었다.

WS 아파트. 150부. 17만~19만 원 지급.

기상은 새벽 3시 30분. 실제 배달은 새벽 4시~ 5시 30분 정도 예상하면 될 것 같았다. 괜찮은 아르바이트라고 생각했다.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새벽 운동도 할 수 있고, 끝나고 새벽기도 하러 교회에 들를 수도 있었다.


첫날, 40대 후반의 지국장은 J 일보와 영어신문 몇 부를 함께 커다란, 커다란, 남자 아저씨들만 탈 것 같은 자전거 뒤 철창처럼 생긴 판에 실어주고 넓고 두꺼운 검정 고무줄로 신문이 잘 안 빠지도록 묶는 방법이라며 칭칭 감아주셨다.

‘내가 저 쇠로 된 훅을 풀 수는 있을까?’

“학생! 자 이제 가봐. 호수를 틀리면 안 되니까 잘 확인해야 해. 알았지? 다녀오면 자전거는 저쪽에다 세워두고 가면 돼.”

약간은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본다는 것을 등 뒤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온 힘을 다 짜내어 비틀거리지 않고 자전거를 운전하려 애썼다. 다음날은 덜 비틀거렸고, 그다음 날은 훨씬 안정적으로 조금만 비틀거렸고, 어느새 나는 오르막길도 제법 안정적으로 신문을 실은 자전거를 몰 수 있었다.


WS 아파트에는 그 당시 유명했던 모 코미디언 아저씨도 산다고 했다. 그런 건 사실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다. 아파트 꼭대기 층에서 내려 신문을 들고 복도식 아파트의 복도를 지그재그 모양을 그리며 신문을 구독하는 집 현관 앞에 놓는 일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점점 팔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새로운 힘을 충전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가끔 우유배달 하는 사람이나 다른 신문배달원을 마주칠 때, 그들이 대부분 남자였기 때문에, 아니 그 새벽에 누구를 만날 것을 기대하지 못했기 때문에, 살짝 놀라고, 살짝 겁먹은 마음이 있었지만, 결국 우리는 모두 바쁜 사람들이었다. 우리에게 ‘할당’된 배달을 빠른 시간 안에 정확하게 끝내고 다른 일을 하러 가야 했다. 그래서일까. 가끔은 잠시 멈추고 계속 움직이고 있는 나를 멈추고, ‘저기요! 안녕하세요! 힘내세요! 수고하세요!’ 뭐라도 말하고 싶은 충동도 느꼈지만, 그냥 말았다.


- 에필로그

새벽에 신문 배달을 했던 그 대학생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어떻게 시작할까. 지금, 괜찮은데. 시작하면 눈물이 또 흐르고, 눈물이 너무 많이 흘러 얼굴이 퉁퉁 부어버릴 텐데, 꼭 해야만 하는 거야? 구질구질한 이야기가 뭐가 좋다고.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함구했고, 쓰지 않고, 깊이 나만의 저장고에 넣어만 두었다. 가끔 용기를 내서 저장고의 문을 열어 혼자 그 속에서 몇 시간씩, 혹은 며칠을 지내며 나오지 않았다.


어제, 슬쩍 꺼내 본 그 대학생 이야기는 마냥 아프지만은 않았고, 구질구질하지도 않았고, 좋기도 했고, 신나기도 했고, 흥미롭기도 했고, 나누고 싶기도 한 그런 것들이다. 그래. 우리가 모두 그렇듯이, 그 대학생도 삶의 희로애락을 다 겪고, 겪어내고, 성장하고, 이제, 웃으면서 혹은 담담하게 눈물지으며 이야기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결코, 무겁지만은 않고, 아니, 가벼울 때도 있고, 웃길 때도 있고, 감동을 줄 때도 있다. 무엇보다도 내가 그랬듯이, 지금 이 이야기를 읽고 있는 누군가에게 용기가 될 수도, 치유가 될 수도, 미소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슬쩍 신문 배달을 했던 그 대학생 이야기를 더 꺼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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