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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lievibes May 31. 2024

삶을 견디는 기쁨

구운 두부 샐러드

요리할 때 손이 큰 편인데, 혼자 먹을 땐, 그때그때 한 끼 분량만 한다. 그런 단출함이 요즘의 내 삶의 태도와 가치관과 잘 맞다. 미니솥, 미니 프라이팬, 주방 조리도구들이 부쩍 미니미니해졌다. 설거지를 하다 앙증맞은, 미니솥을 엎어놓으니 무척이나 귀여워 볼록한 부분을 톡톡 두드리며 궁딩팡팡.해줬다. 이런 사소한 귀여움, 앙증맞음, 즐거움이 모여 내 하루를 만든다.


부엌에서 요리하고, 테이블을 차리고 있는 날 볼 때면, 어릴적 가장 좋아했던 빨강머리 앤 만화영화 속 식사장면이 종종 오버랩되곤 한다. 매튜 아저씨와 마릴라 아줌마 그리고 앤의 식사 장면, 블랙커피가 콸콸 커피잔에 쏟아지는 장면, 쿠키와 케이크를 굽는 장면, 도시락을 싸서 피크닉을 나가는 장면 등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정서가 편안해지고 안정되는 그런 부분이 있다. 빨강머리 앤.을 다시 보고 있자니, 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굉장히 철학적이게 다가온다.


하루에도 수십 번, 순간 순간의 선택이 내 하루를 만든다. 중요한 건 선택하고 난 뒤 내 태도다.


파리살 때, 어느 늦은 밤이었다. 메트호를 타러 가는 길이었다. 늦은 밤이라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한 청년이 보드를 타며 지나갔는데, 마치 음악 선율 위를 걷는듯한, 마치 구름 위에서 춤추는 듯한, 부드러운 리듬으로 보드를 타고 가는 것이 아닌가.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지금도 그 기억이 생생한데, 파리의 낭만 그 자체였다.


잊고 산 것 같은, 저런게 바로 낭만이지. 저런게 바로 젊음이지. 저런게 바로 자기다움이지. 몇 십초 사이 내게 큰 울림이 있었다.


지나간 시절을 생각하면, 아쉬움도 있고 내 나름의 안타까움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인생 경험, 어느 시간 그 무엇하나 아무 것도 아닌 경험은 없었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건, 내겐 이렇게 조각조각 순간순간의 아름다운 경험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토록 추억할 게 기억할 게 많은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이 어두컴컴했던 시절, 내가 다른 곳도 아닌 파리를 선택한 것도 파리에서 살게 된 것도 다 이유가 있었겠지. 파리에 살아볼 것도 어쩌면 예정돼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어느 선택이든 후회는 있지 않을까. 조금이라도 후회없는 선택이란 있을까.


서른 중반 넘어서부터는

어쩜 내 주위의 모든 것들을 통해 나는 끊임없이 사유하고 사색하는지.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걸까.


이십대 중반부터 서른 중반까지

십년의 세월은, 내 영혼의 성장을 위한 것이지 않았을까.

그 시절 기쁨과 환희의 순간도 있었고

그 시절 슬픔과 절망과 우울의 순간도 있었다.


돌이켜 보니, 늘 마음이 힘들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이제서야 내 삶을 사랑할 줄 알게 되었다.

나는 내 인생이 아름답다고 느낀다.


내게 낭만은 늘 평온하고 기분좋고 아름다운 것들만이 아니라

슬픔도 고독도 모두 낭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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