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nch box
나이들어가며 부쩍 신경쓰는 게 있다. 피부와 머리숱이다. 털털하고 무심한 성미 탓도 있겠고 피부관리를 위해 피부과를 다녀본적이 없는데, 집에서 할 수 있는 홈케어 선에서 나름 신경쓰고 있다. 타고난 구릿빛 피부색은 어쩔 수 없지만, 낯빛은 얼마든지 가꿀 수 있다는 생각이다. 피부톤이 가지런한게 피부를 좋아보이게 하므로 피부결에 신경쓴다. 그렇다고 거창하게 관리하는 것은 아니고 보습에 진심이라는 설명이 맞겠다.
머리숱과 머릿결도 피부만큼이나 중요하다. 언젠가 이마 윗부분을 들추다 어머머 한 이후로 신경쓰고 있다. 20대 30대 초반만 하더라도 짙은 화장도 옅은 화장도 어색하지 않았는데 서른 중반이 된 후부턴 과한 화장이 도무지 어색하고 과해보이는게 아닌가. 피부결만 정돈되면 자연스런 메이크업으로 커버되니 자연스럽고 수수해보이는 마법이 부려진다. 머리숱과 머릿결도 관리되면 단정해보이고 깔끔해보이고 건강해보인다.
나이 들어가니, 화려한 것보단 수수하고 단출하고 밋밋한 색감들에 눈이 간다. 자연스런 맛.이랄까. 자유롭고 싶고 자연과 가까이 가고 싶은 마음의 발현이 아닐까.싶다.
나는 매일 도시락을 싼다. 거창한 것은 아니고 건강하면서도 가벼운 음식들로 도시락통에 가지런히 음식들을 담는다. 스테인리스 도시락 통에 대한 애정이 있다.
인도풍의 이그저틱한 원단을 참 좋아하는데, 그런 것들에 환장하는 성미가 있다. 지금 내 가방도 손수건도 카드지갑도 파우치도 온통 원단으로 만든 것들이다. 그 중에서도 내 취향의 손수건은 빈티지하면서도 예쁜 도시락 주머니가 된다. 난 꼭 도시락통을 선물처럼 포장하는데, 매일 나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생각에서다.
과식하지 않고 하루 2끼 챙겨먹기에 도시락은 과하지 않다. 가볍고 신선하다.
내 도시락의 핵심은 내 소화력을 존중하는 것일 것과 신선한 식재료를 사용할 것.이다.
광화문 직장인 시절, 한동안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던 적이 있는데 그때도 난 늘 이런방식으로 날 보살폈다.
내가 이토록 먹는 것.에 내 몸 안에 들어가는 것에 진지하면서도 진심인 이유는, 소화력이 존중돼야, 장이 편안해야 마음이 편안해지고 마음이 편안해지면 나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나를 제대로 볼 줄 알아야, 세상살이가 편해진다.
내게 도시락을 싸는 일이란, 창의적인 행위이자 날 위하는 의식적인 행위이자 내 하루의 소소한 낭만이자 즐거움이자 기쁨이다. 이토록 즐거운 놀이로 나는 하루에도 시시로 수시로 기분좋음과 충만함을 느낀다.
행복하려면 행복할 줄 알아야 한다. 행복에 실체가 있을까.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애정이 있다. 일상에서 오는 작고 사소한 소소한 기쁨과 낭만이 날 행복하게 한다. 즐겁게 한다. 기쁘게 한다. 그거면 되었다.
행복은 정말이지 늘 내 곁에 살아 숨쉬고 있다. 그걸 발견해내는 건 내 몫이고 내 선택이다.
매일 도시락을 싸는 이유, 행복한 내 선택이다.
어느 하루 같은 재료, 같은 색감, 같은 텍스처이지 않다. 매일이 새로운 메뉴고 매일이 다채롭고 건강한 음식들의 조합이자 조화이자 향연이다. 그 좋은 바이브를 매일 먹는 나. 좋은 바이브를 가진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도시락을 싸는 일, 어떤 이유에서건, 어떤 방식에서건 내게 유리하다.
Lunch box
멍때리기.를 곧잘 하는 편인데, 잠시 동안의 멍때리기를 하니 정신이 번쩍든다.
요 며칠새 자꾸 내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은, 시간이 아주 쏜살같다는 것.과 습관화된, 나도 모르게 내재화된 생각들로 더 이상 이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혹은, 이대로 그냥 흘러가게 놔둘 수 없다는 절실한 자각이었다.
경험상 그리고 실제로도 무얼하든 절실함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 편인데, 지금 내게 그 무언가의 절실함.이 그야말로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이다.
나이 들어서인지, 그마만큼의 삶의 다양한 경험이 켭켭이 쌓이다 못해 넘칠지경이 돼서인지, 돌고돌아 지금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나의 취향은 어떤 것인지.
나는 무얼 할 때 기분 좋아지는지.
무얼할 때 삶의 의미를 느끼고 설레하는지. 행복해하는지.를
선명하게 알아가게 되었다는 점에서,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생각이 아닌, 말뿐이 아닌, 실행.이라는 사실이다.
요즘의 기분이랄까. 신기하게도 희한하게도 작년보다 한 살이 더 붙은 올해가. 지금이. 더 용기가 난다.
나이 한 살 먹으면 먹을수록 겁이 많아진다는데, 나는 외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나 겁은 덜해지고 이거 해까. 이거 하자. 그래 지금 하자. 생각만 하지 말고 일단 하자. 해보자.는 내가 되어가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건 내 삶은 내 일상은 어떻게든 돌아간다.는 삶의 원리를 깨달아서일까.
흘러가는 세월이 야속하기보다는 그 세월을 나의 시간으로 만들자는 나의 굳건한 의지와 다짐 탓이 크다.
이제야 깨닫게 된 삶의 통찰과 깨달음을 찬란할 수 밖에 없는 이십대의 나이에 알게 되었더라면 어땠을까.싶기도 하지만, 이것이 어쩌면 나의 필연적인 삶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다보면 이마저도 지금이라도 알게 돼 감사하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늦은 것은 없다.고 하면 된다고. 이제라도 알았으니 제대로 맛깔나게 살아보자고.
어느 것이든 일장일단이 있고 그 선택은 나의 몫.이라는 것. 그 선택에 대해 책임지며 살아가는 용기.
마흔이 되려면 아직은 조금 남은 셈인데, 요즘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나 자신이 되어 살아가기다.
내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다보면 어느 순간 물리가 트이게 되고 마치 삶이 내게 말을 걸 듯 아주 조금식 천천히 내게 말을 걸어준다. 정답은 없지만 그러다보면 답이 선명해지는 마법을 경험하게 된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웬일인지. 아침먹고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노래를 듣고 있는 와중에, “나는 메시지다.”라는 문장 하나가 번뜩이며 떠올랐다.
그래, 나는 메시지다.
글자 그대로 정말 그러하다는 생각인데ㅡ 우리 모두는 삶이라는, 인생이라는 영화의 주인공이며 그 영화의 결말 역시 우리 스스로에게 달려있다는 것.
내가 온전하게 내 삶의 주인으로 살면 내 시간도 온전하게 내 것이, 내 편이 되어준다는 것.
고로 나는 메시지 그 자체라는 것.
나는 나.라는 사람의 브랜드라는 것.
그 브랜드를 잘 가꿔나가다보면 어느 순간 기가막힌 우연과 행운이 찾아온다는 것.
결국 내 인생은 내 것.
내가 만들어가는 것.
나라는 사람은 이런 사람이라서, 매번 의식의 흐름대로 써 내려가는 내 글이란, 늘 삶의 통찰과 깨달음으로 귀결되는데, 어쩌면 이것조차 필연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