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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lievibes Jun 21. 2024

새 옷을 사지 않는 사람

상쾌한 아침을 열었다. 어제 늦은 밤, 유기농 자두를 사왔다. 모양도 작고 투박했지만 자두가 날 불렀다. 자두 2팩과 천도 복숭아 1팩을 사왔다.

 

늦은 , 자두가  부른데엔  이유가 있겠지. 신기한  며칠 전부터 자두가 먹고 싶었다.   로컬푸드 직매장보단 새벽시장 과일이 싱싱하고 저렴한데다 같은 값이면 양도  많다는 생각이 있어 새벽시장에 갔다와야지 하고선 있었던 참이었다.


그러다 어젯밤 마트에 들렀다 자두가 날 부르니, 마음이 이끄는대로 냉큼 사왔다.

그러곤 오늘밤 나와의 인연이다.했다. 내일 점심 자두 샐러드를 만들어야지 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눌린 자두 3개로 자두 드레싱을 만들었다. 커피 한 잔을 내렸고 소파에 기대 앉았다.


나름 반짝반짝였던 커리어우먼 시절을 돌이켜보면, 그땐 진짜 나보다는 보여지는 나에 집중했고 또 그래서인지 나답지 않은 모습일 때가 많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헤어스타일에서부터 옷에서부터 액세서리부터 신발, 가방까지.


그땐 또 무언가 프로페셔널한 느낌이랄까. 하이웨스트 스커트에 깔끔한 블라우스나 셔츠 차림의 출근이 으레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시절, 아니 어쩌면 그렇게 주입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한 번은 내 스타일의 귀걸이를  하고 갔는데 "초아씨 그런 귀걸이는 가급적이면 하고 다니지 말아요."했다. 그렇게 말한 선배 언니들의 귀걸이는 내 것보다 훨씬 화려했던 걸로 기억한다.


각 개인의 개성을 외려 튀는 것으로 간주하는. 나는 되고 너는 안된다.라는 당시 그런 분위기 내지 문화를 나는 꽤 오랜시간 견디기 힘들어했다. 직장에서 튀지 않고 무난하게 지내려면 옷차림이든 액세서리든 단정해야 하고 최대한 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불문율처럼, 나는 아주 자주 그런 말들을 주변으로부터 들어야 했다.


무엇이든 새 것보단 옛 것을 좋아하는 성미가 있다. 직장생활 하면서 내가 진짜 나다울 수 있고 자유로울 수 있던 유일한 시간은 주말이었다. 주말이면 이태원 앤틱 가구점에  들러 유럽이나 미국에서 100년은 족히 넘은 고가구들을 신나게  마음껏 구경하는 일. 빈티지 그릇과 접시들을 구경하는 일이 내겐 소소한 여유이자 취미기도 했다.


어느 덧 서른이 훌쩍 넘어버린 지금, 나이 들어가며 좋은 점은 인생이란, 진짜 나를 알아가는, 찾아가는 여정이라는 생각과 그 믿음이 확고해지면서 나란 사람이 선명해지면서 20대와는, 30대 초반과는 완전히 다른, 마음이 여유로워지고 자유로워졌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요즘 그 어느 때보다도 소녀같은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남의 시선 따위에 신경쓰는 일일랑은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린지 오래고 무엇보다 지금의 나는 진짜 나, 참나에 오롯 온전하게 집중하며 알아차리며 매 순간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내 존재 자체만으로도 온전하다. 아름답다. 감사하다.는 걸 깨닫고 의식하고 늘 깨어있으려고 하는 시점과도 정확히 일치한다. 내가 살고 싶은, 가고 싶은 삶의 방향과 가치관과 태도가 명료해지면서 내  삶은 간결하게, 단출하게, 소박하되 낭만적이게, 군더더기 없게 내 스스로의 삶이 이젠 아름답다고 자신있게 말할  있을만큼 나는 변했고 그 삶의 패턴이 편안하게 자리잡았다.  


나는 더 이상 새 옷을 사지 않는다. 새 옷을 사지 않은지 꽤 되었다(마음에 드는 요가복은 사는데, 루즈한 요가복이 일상복이 돼 버린지 오래다). 내 스스로도 놀라운 건, 이젠 어느 옷가게 매장을 가도 전혀 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점인데, 지금의 내 옷이라 하면 편안한 치마와 편안한 요가복이 전부다. 딱 달라붙는 레깅스를 불편해하는 성미라 요가복도 펑퍼짐하고 루즈한 그러면서도 수수함과 멋스러움이 살아있는 바지를 즐겨 입는다.


옷장을 열면 가짓 수가 한 눈에 들어올 만해도 내 눈엔 이마저도 충분하고 만족스럽기 그지 없는데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의 옷감 텍스처와 디자인, 색감의 옷들만 남아서인지 이토록 멋스러울 수가 없으며 애정 가득담아 깨끗하게 빨아 탈탈 턴 뒤 햇볕에 빳빳하게 바삭하게 바짝 말린다.


그러곤 사랑 가득 담아 고이 접어 색깔별로 서랍장에 차곡차곡 쌓는다. 이때만큼은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된다. 고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는 내 옷들을 보고 있자면 기쁨과 행복감이 일순간 밀려오는 놀라운 경험을 나는 이렇게 아주 자주 한다.  


함부로 소비하지 않는다. 어쩌다 하나를 사더라도 그것의 가격이 비싸든 싸든 내 기준은 나름 철저한 편이다. 실용적일 것. 필요한 것일 것.  내가 입고 싶은 것일것. 내  취향의 것일 것. 내가 60대가 돼서도, 할머니가 돼서도 멋스러울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신중하게 생각하다보니 내 옷에  대한 애정이 가득할 수밖에 없다. 집착과는 다르다. 이제 나는 내 옷들에게 말을 걸기도, 나와 늙어서도 함께하자며 사랑을 보내기도, 깨끗하게 정갈하게 살뜰하게 대한다.


끌리셰하지만 명품만 입으면 무엇할까. 우선은 나란  사람 자체가. 내가 명품이어야지.라는 생각이다. 저렴한 옷이어도 입고 나갔을 때 사람들이 어디서 샀는지. 으레 비쌀 것이라고 생각해  짐짓 내게 물어볼 떄가 있는데, 그럴때면 나는 마치 아주 큰 일을 해낸 것처럼 내 나름의 알뜰함과 살뜰함에 뿌듯해하기 일쑤다.


아주 중요한 자리거나 공식적인 자리가 있을 때도 이런 류의 옷을 입고 나가는데 사람들이 나의 옷차림이 세련됐다고 혹은 예쁘다고 말하면 마치 천 원짜리 옷을 십만원 짜리 옷으로 만들어버리는 마법을 부린 듯, 나는 이런 쪽으로 재주가 있는게 틀림없다며 속으로 흐뭇해  한적도 여러 번이다.


살면서 느끼는 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면 내 스스로의 삶이 보다 선명해진다는 것. 내 스스로가 내  삶과  친해지고 가까워지고 자유로워진다는 것이다.


지금 내  옷장과 서랍에 있는 옷들은 한 눈에 보아도 몇 장인지 셀 수 있을 만큼의 가짓수 인 것은 물론 색깔별로 잘 정리도 되어있다. 이렇게 되면 내게 꼭 필요하고 내가 좋아하는 옷들만 남게 되기 때문에 함부로 옷을 사는 일이 없으며 새 옷을 사는 일이 더더욱 없게 된다.


확실한 건 지금 내 옷장의 옷들은 내 머리가 하얗게 쇤 할머니가 되어서도 지금과 같이 나를 멋지게, 나만의 색깔과 향기와 취향과 개성을 가진 아름다운 할머니로 만들어줄 것이라는 내 믿음은 확고하다.


내가 입은 옷이 몇 천원이건 몇 만원 짜리건 몇 십만원 짜리건 몇 백만원 짜리건 그게 무엇이 중요할까. 그건 내가  가진 것이지 진짜 내가 아닌 것을. 내가 입었을 때 그 이상의 옷으로, 명품 옷으로 만들면 그게 바로 찐 멋쟁이가 아닐까. 멋진 사람이 아닐까.하는 내 생각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기에 무엇보다 내면을 더 아름답게 가꾸고 나만의 분위기와 아우 있는 사람이 되자.는 내 삶의 철학이 이렇게 내 일상 곳곳에, 옷에 까지도 알뜰살뜰하게 적용되는 삶을 느끼고 있노라면 이젠  내가 진정 내 살믜 주인으로 살아가고 있구나.라며 내 스스로에게 무한한 사랑을 가득담아 보낸다.


결국 모든 것은 내 마음에  있다.

내  멋에 사는 삶, 자유로운 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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