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 많은 베짱이
내가 그곳을 나올 무렵 비슷한 시기에 그곳에서 함께했던 사람들 중 몇몇은 조직에 회의를 느끼고 가족에게 돌아왔으나 20대 초중반에 그곳에 들어가서 30대 초반이 되어 나온 우리는 사회에서 루저였다.
제로 상태에서 시작해도 버거울 판에 다들 빚을 지고 나온 상태이기에 개인회생을 신청하고 신용불량인 상태라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한때 농협에서 인정받던 이는 8~10년 후에 돌아왔을 때는 중소기업 경리자리도 겨우 들어갈 수 있는 현실에 개탄해했다.
나는 그나마 다행인 편이었다. 빚은 엄마가 해결을 해주었고 연인과는 부부가 되었고 친구는 여전히 내 친구였다.
하지만 나의 세상에 대한 가치관은 20대의 그것에 머물러 있었고 사회에서의 위치는 어정쩡한 경력 단절자인데 꼴에 자존심은 있어서 동기들이 다 팀장급인데 그 밑으로는 들어가기가 싫었다.
이때까지도 아직 정신이 멀쩡한 상태는 아니었다. 되지도 않는 시크릿에도 꽂히고, EFT, 호오포노포노, 리얼리티트랜서핑 등 이것저것 다 접해보았다. 마음으로 그리고 머리로 상상하고 상상이 현실이 되는~ 개뿔.
성실히 차곡차곡 사회에 신뢰를 쌓기보다는 인생 한방을 꿈꾸었다.
내가 놓친 시간을 만회할 수 있는 로또 같은 기회를 꿈꾸며 네트워크마케팅 일명 다단계에 꽂히게 된다. 지금 돌이켜 보니 진짜 NO답이다.
물론 결과는 뻔했다. 영업이나 실적 내는 것이 부담되고 싫어서 조직에서 나왔는데 네트워크라고 잘 될 턱이 만무하다.
그렇게 혼자 빚쟁이 체험을 한번 해봤으면 되었을 것을 이번에는 남편에게까지 경제적 부담을 안겨 주는 꼴이 되었다.
결국 "배운 도둑질 같다"라는 속담처럼 한번 취득하면 평생 쓰는 면허증이 나에게 있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나는 간호사 면허증을 가지고 안정된 직장 생활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고 내 주변인들은 이때 모두가 안도의 숨을 좀 쉬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가진 능력에 비해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형이상학에 빠져있다가 물질세계에 눈을 돌리니 내가 너무 초라했다.
인스타에 예쁜 집, 멋진 직업, 고급 차, 잘 관리된 외모와 명품 등 타인의 삶은 정말 행복해 보였다.
내 인생이 낙오로 마감할 까봐 불안했고 알 수 없는 미래가 걱정되고 현실은 공허하게 느껴지고 나도 저런 것들이 다 갖추어지면 행복할까?
이상은 높은 반면 게으른 나는 욕심 많은 베짱이가 되어갔다.
언뜻 보면 남들처럼 평범하게 직장 다니고 인간관계하면서 정상인처럼 지내는 듯 보이지만 실상 나의 마음속은 종종 떠도는 부표 같았다.
이 표류하는 기분이 싫어서 그때그때 구미에 당기는 오락거리에 몰두해 그날이 그날 같은, 이 수렁에 오래 빠져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찌할 수 없는 덫에 걸린듯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지금 되돌아보면 저 때 너무 마음이라는 허상에 치중해 있었던 것이 원인이었다.
상처받은 내면아이란 퇴행을 하는 것이 됩니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언어로 표현되지 못한 경험을 무의식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이 무의식은 동일한 경험이 일어날 때 그 경험을 했던 어린 시절로 그 사람의 의식을 끌고 갑니다. 이러한 것을 퇴행이라고 합니다. 그는 어린 시절의 주술적인 사고에 지배되던 당시로 들어가게 되며 그 시절의 고통을 다시 겪습니다. 언어로 표현되지 못한 경험을 라깡은 요구하지 못한 욕구인 욕망이라고 표현합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욕구가 있습니다. 생리적이건 심리적이건 말이지요. 이러한 욕구는 선악의 구분이 없습니다. 하지만 사회 맥락상 그것을 요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요구되지 못한 욕구는 욕망으로 남아서 무의식이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살면서 비슷한 욕구를 느낄 때 그 사람을 그 욕망이 있던 시절로 끌고 가고 그 사람은 터널 시야가 되어서 어른스럽지 못한 판단과 행동을 하게 됩니다. 어른스럽지 못한 판단과 행동이란 감정적인 판단과 즉흥적인 행동을 말합니다.
상처받은 내면아이라는 개념은 이러한 것에서 왔는데 중요한 것은 그 아이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라는 것입니다. 유령과 같이 그 사람이 의식을 배회하는 잡음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어떤 경험을 또는 욕구를 언어로써 표현해서 요구를 하게 되면 그 경험 또는 요구되지 못한 욕구는 해소가 되고 해당되는 유령은 사라지게 됩니다. 본래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그런 것이지요.
다만 이러한 언어로 표현되지 못한 욕구들이 여러 가지가 복잡계로 존재하게 됩니다. 이것을 융은 복합체(콤플렉스)라고 불렀습니다. 정서로 채색이 된 관념 복합체라는 것이 융이 정의한 콤플렉스의 의미입니다. 여기서 관념이란 어떤 경험을 말로 하면 안 된다는 사회적인 가치관이나 어떤 욕구를 요구하면 안 된다는 사회적인 윤리관으로 발생하는 내적 갈등으로써의 관념입니다. 이 관념은 여러 가지 경험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그 관념이 복합체를 이루고 이는 감정으로 채색이 되어 있다.
마음의 구조란 이러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렇게에 불교에서도 마음과 벗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오직 무심(마음 없음)이 가장 선하다고 보는 것이지요. 하지만 마음에 사람들의 관심이 많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마음팔이 장사꾼들입니다. 심리학자에서 자기 계발강사들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장사치들은 사람들이 마음에 관심이 많기를 바랍니다. 하루종일 자신의 마음만 바라보기를 바랍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마음을 과도한 가치를 가지고 보게 됩니다. 하지만 실제로 마음이란 그저 뇌척추 신경계가 발하는 전기적 신호의 잡음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출처 : 네이버카페 유교제가 『상처 입은 내면아이 따위는 없다』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