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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수 May 12. 2023

화장실 갈 시간도 없다!

교감의 시간

3월을 맞이하는 선생님들의 심정은 어떨까?



따뜻한 봄을 맞아 새로움에 대한 설렘도 있지만 새로운 학기, 새로운 것에 대해 적응해야 하는 부담감이 교차하지 않을까!



새로운 부임지에 옮긴 분이라면 더욱 부담감이 클 것 같다.

교육과정 설계, 평가 계획, 학급운영 방향 설정, 학부모와의 관계 설정, 업무 파악 등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가는 교실 풍경이 머릿속에 환히 그려진다.

학기 초 건강하게 비친 얼굴도 어느새 피곤한 모습으로 서서히 바뀐다.

나도 그렇다. 어제는 저녁 8시 30분에 잠들었다.



선생님들 못지않게 3월은 교감의 시간 중에 성수기에 해당된다.

교감이 무슨 일 할 게 있냐고 반문하시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결재만 하면 되는 게 아니냐면서. 천만의 말씀.



교감의 해야 할 영역이 확대되고 있고 기대하는 바도 부담스러울 정도로 커지고 있다. 다른 직장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중간 간부의 역할이 종전에 시키는 입장에서 이제는 실무를 책임지는 역할로 변화되었다. 어느 지자체에서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국장으로 발탁되어 승진을 축하했는데 1년도 안되어 명예퇴직을 했다고 한다. 그만큼 그 자리에서 해야 할 역할이 많이 바뀌어다는 얘기일 테다.  



교감이 하는 일은 겉으로 보기에 별로 티가 나지 않는다. 특히 선생님들이 보기에 교감은 그다지 바쁘지 않은 사람으로 비칠 수 있겠다 싶다.

아마도 선생님들과 교감의 생활 패턴이 다르기 때문에 오는 생각의 오류가 아닌가 싶다. 선생님들이 교실에서 수업하는 시간에 교감은 교무실에서 전반적인 학교 업무를 파악하고 설계하며 중요한 사항들을 체크해 간다. 가끔 쉬는 시간에 교무실에 내려오는 선생님들은 우두커니 의자에 앉아 있는 교감의 모습을 보며 부러워할 수 있을 것 같다. '교감은 수업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을까'라고.



예전에 아내가 나에게 하던 말이 생각난다.



'집안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어. 설거지하고 나면 또 식사 준비해야 돼'

'집안을 매일 청소하는데 티도 안나'



교감이 하는 일도 그렇다.



'학교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어. 쌓이는 건 공문밖에 없어'

'매일 열심히 일을 하는데 티도 안나. 끝이 없어'



교감의 시간은 학교의 시간이다!



민원 전화라도 한 통 걸려 오면 그때부터 하던 일 모두 올스톱이다. 민원인의 진의가 무엇인지 사실 여부를 판단해야 되고 신속하게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 발을 동동 굴려야 한다. 민원이 발생한 날은 교감의 시간이 온통 민원을 해결하는 시간이 된다.



요즘 교육지원청에서도 업무 관련하여 모든 전화가 교감에게 직통으로 걸려온다.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오면 전화기 메시지에 부재중 전화가 왔다는 메시지가 잔뜩 쌓인다. 교감을 찾는 전화다. 교감의 시간은 전화를 받는 시간에 많이 할애된다. 화장실 갈 시간도 놓칠 때가 많다.



교직원들과의 소통은 대부분 메신저 프로그램을 활용한다. 자리를 잠시 비우거나 다른 일에 몰두하여 일 처리를 한 뒤 메신저를 켜 보면 확인해야 할 쪽지가 수두룩하다.



복무 관련한 쪽지부터 회의 개최 건, 공문 결재와 관련된 내용 등 빼꼭하게 적힌 쪽지의 문맥을 이해하는 데에도 시간이 꽤 소모된다. 어떤 쪽지는 상대방을 배려하여 반드시 답글을 보내야 한다.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교감의 시간은 메신저 쪽지를 읽고 감정의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최대한 친절하게 답변하는데 쓰인다.



학교에 출근하는 순간부터 교감의 시간은 개인의 시간이 아니라 학교의 시간인 이유다!



'학교를 위해서 내 시간을 아낌없이 사용하리라!'라고 결심을 가지고 근무하다가 집에 가면 파김치가 된다. 저녁 9시가 되면 약 먹은 병아리 모양 눈꺼풀이 반쯤 잠긴다. 퇴근하고 나서 아빠의 시간, 남편의 시간, 인간 이창수의 시간을 누리기에는 아직 사치다.



               (3월의 삼척 오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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