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4시쯤인가 교무행정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다. 어떤 학부모님이 교감 선생님과 직접 통화하고 싶다면 교감 직통 전화를 알려달라고 하셨다고 한다.
교감과 직접 통화하고 싶다고?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교무실 전화로 교감 바꿔 달라는 것도 아니라 교감 직통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하니 나로서는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교무실에 걸려 오는 학부모 전화는 열이면 열 모두 단순 문의보다는 민원성 전화가 대부분이다. 그것도 교감 바꾸라는 전화는 소위 말해서 악성(?) 민원일 가능성이 높다라는 것을 3년째 교감 역할을 수행하면서 피부로 느낀 바다.
오늘 교무행정사님을 통해 교감 직통 전화번호를 알려달라는 학부모님도 아마도 뭔가 불편한 것이 있어서 교감에게 직접 물어볼 심산으로 교무실로 전화를 했을 것이다. 교감 직통 전화번호를 알려달라는 그 학부모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오기까지는 약 5분 정도였는데 순간 가슴이 먹먹하고 답답해왔다.
그 이유는 무슨 일로 교감에게까지 전화를 걸려고 하는지 도통 모르기 때문이다. 뭔가 알아야 방어를 할 수 있고 최소한 대비를 할 수 있는데 무작정 교감에게 전화를 걸겠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나로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학급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더더욱 알 수 없다. 담임 선생님과 학생과의 관계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담임 선생님이 나에게 설명해 주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다. 민원을 걸어온 학부모와 대화를 통해서야 그제야 대략 감을 잡을 수 있을 정도이니 대화의 주도권을 가져오기가 쉽지 않다.
만약 학교 전체적인 행사의 문의나 질의라면 당연히 교감으로써 대응하며 책임 있는 답변을 드릴 수 있는데 그야말로 교사와 학생과의 관계, 학생과 학생과의 관계, 교사와 학부모와의 관계에서 일어난 심적 갈등이라면 대략 난감이다.
전화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 동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잠시 뒤 내 책상 전화기에 벨이 울렸다. 핸드폰 번호가 떴다.
"안녕하세요? 교감입니다"
"네. 누구누구입니다"
"네. 안녕하셨죠? 무더운 여름 건강하게 잘 보내셨는지요?"
"네. 교감선생님도 건강하셨죠?"
여기까지는 상투적인 인사가 오간다.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어떤 질문이 쑥 들어올지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우리 아이가 그러는데 현장체험학습 취소되었다면서요?"
올 게 왔다. 어제 교직원 회의 시간에 함께 의논했던 내용이기도 하다. 법제처의 해석으로 일선 학교 현장체험학습에 제동이 걸렸고 이에 대한 후속 대책으로 선생님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어 방안을 고민했었다.
"취소된 것이 아니라 보류되었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왜 보류되었는지 말씀을 드렸다.
초등학교에서 수학여행이나 현장학습을 목적으로 버스를 빌릴 경우에도 일반 관광버스가 ‘어린이 통학버스’ 기준을 충족한 차량을 이용해야 한다. 어린이 통학버스 신고를 하려면 차량을 노란색(황색)으로 도색하고, 어린이 체형에 맞는 안전벨트 등을 별도로 설치해야 한다.
출처 : 강원도민일보(http://www.kado.net)
분명히 그 학부모님도 알고 있었을 터인데 왜 전화를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구구절절 신문기사, 지침 등을 말씀드렸다. 학교의 잘못이 아니라 법 해석으로 중지되었음을 알려드렸다. 하지만 그 학부모님은 앞으로 지침이 달라질 수 있으니 학교 측에서 발 빠르게 현장체험학습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게 노력해 달라고 이야기하셨다.
누군들 모르나. 가장 애타는 게 학교인데. 담임 선생님인데. 학교는 그동안 계약해 놓았던 것 취소하랴 후속 대책 방안 세우랴 학생들에게 설명하랴 이만저만 고생이 아닌데 뻔한 것을 왜 전화까지 하면서 확인을 받으려고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학교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학기 초부터 세운 현장체험학습 계획을 일방적으로 취소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만한 사람이.....
학교에서의 현장체험학습은 철저하게 교육과정 안에서 실천된다. 계획 전 협의, 계획, 사전답사, 실행, 사후결과 순으로 안전과 교육적 효과를 계산하며 정확하게 시스템 안에서 진행된다. 현장체험학습에 관해서 민원 전화를 거는 대부분의 학부모님들은 극히 개인적인 측면에서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학교 현장은 이렇게 다양한 학부모님들을 상대해야 한다. 일선 학교 교감님들이 그 일들을 감당해 내고 있다. 교무실에서 어떤 전화가 걸려 오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다른 교직원들은 잘 모른다. 혹시나 노파심에 다시 말씀드린다. 학교 관리자들이 그냥 놀고먹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