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교감 일기 03화

교감, 어수선한 분위기

by 이창수

국가도 어수선하고, 학교도 어수선하다. 교감의 역할이 참 난감하다. 공무원의 신분에서, 교감의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법과 원칙에 따라 판단하되, 마음은 따뜻하게.



7년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소환해 본다. 이 시기에 참 적절한 책이다. 그때 쓴 글인데 다시 읽어도 새롭다.^^



류성룡은 누군가? 배워야 할 점은? 전쟁 중에 그가 보여준 말과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류성룡은 전란을 몸소 겪었다. 두 번 다시 전쟁이 겪지 않기 위해서 후손들에게 전해 줄 말이 있었다. 아픈 역사를 잊지 않도록 <징비록>에 기록을 남겼다. 국가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징비록>에서 류성룡이 선조 임금에게 올린 장계를 중심으로 작가는 류성룡의 삶의 원칙을 추려냈다. 임금에게 간절한 마음을 담아 올린 글을 보면 류성룡의 인품을 발견할 수 있다. 율곡 이이와 동시대를 살았으며 퇴계 이황을 스승으로 모셨다. 허균의 형 허봉과는 친구 관계로 허난설헌의 글을 읽고 그녀의 위대성을 일치감치 인정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그는 전란 중 도제찰사의 임무를 맡아 전시 행정의 총책임자였다. 엄청난 중압감을 짊어지고 국가를 지탱해 나간 장본인이기도 하다. 막중한 권한이 있었기 때문에 하급 관리에 불과했던 이순신(정읍현감)과 권율(형조 전랑)을 발탁하여 파격 인사를 단행할 수 있었다.



그는 자리에 연연해하지 않았다. 권력을 지속하기 위해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지 않았다. 물러날 때를 알았고 공과 사를 분명히 했다. 안동으로 낙향한 이유도 그런 배경에서 나왔다.



오늘날 공직자들이 류성룡처럼 다음과 같이 행동하기를 바란다.



- 그는 명나라 장수들에게 끌려 다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조선의 입장에서 요구했다.(61)

- 류성룡은 전쟁 중에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백성을 구제하는 일이라 여겼다.(66)

- 류성룡이 걱정하는 것은 민심이었다.(70)



지도자는 백성에 대해 책임을 지라고 세운 사람이다. 민심을 잡기 위해서는 지도자가 솔선수범해야 한다. 민심을 주도하고 민심을 잡는 몫은 지도자의 몫이다. 작은 이익에 정신을 빼앗기면 안 된다. 지도자는 남에게 의지하는 순간 자신의 권리는 미약해진다. 자기 일은 자기 스스로 할 수 있어야 자존심을 지킬 수 있다. 남에게 의존하다 보면 영혼마저 잃어버릴 수 있다. 처음은 누구나 잘하지만 끝을 좋게 매듭짓는 사람은 드물다. 유종의 미를 잘 거두어야 한다. 떠난 후에도 생각해야 한다.



류성룡은 지도자였다. 선조 임금을 대신해서 백성과 나라를 위기 속에서 건져내야 할 책임을 온몸에 짊어져야 했다. 그에게 돌아온 것은 모함과 파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평하지 않았다. 그가 파직당한 날 이순신은 노량해전에서 전사했다. 조선은 두 명의 지도자를 잃게 되었다.



국가가 어수선하다. 류성룡과 같은 지도자가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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