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창수 May 12. 2023

교감의 목소리

보이스의 힘

담임 선생님이 쪽지를 보내왔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00 어머님께서 답장이 없어 연락드립니다"



(참고로 요즘 젊은 선생님들은 '교감 선생님' 대신에 '선생님'으로 부른다)



며칠 전 00 학생 상담을 위해 담임 선생님과 함께 가정 방문을 가기로 했었다. 사전에 연락을 드려 시간을 조율해 보라고 했었는데 묵묵부답인가 보다. 사흘이 지난 오늘까지 기다렸는데 아무런 연락이 없다고 한다. 나에게 쪽지를 보낸 이유다. 그 뜻은 교감이 직접 연락해 보라는 거다. 학생 부모 연락처를 보며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어떻게 할까? 00 학생 아버지, 어머니 모두 연락이 없다고 하는데. 내 핸드폰으로 할까? 아니면 학교 전화로 할까?



만약 교감인 내가 연락을 했는데도 안 받으면 이제 쓸 수 있는 카드는 없는 셈인데. 고민이 되는 지점이었다. 전문상담선생님은 학부모를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은 교감 밖에 없다며 강하게 부탁했다. 부담이다.



고민 끝에 학교 전화로 00 학생 어머니께 먼저연락을 드렸다. 신호음은 가는데 받지를 않으신다. 담임 선생님 말대로다. 이제 아버지께 연락드릴 수밖에 없다.



통화가 연결된다면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까? 학부모의 첫 반응은 어떨까? 목소리 톤은 어는 정도일까? 퉁명스러울까? 까탈스러울까? 아니면 의외로 부드러울까?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를 생각하며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은 가는데 받지 않으신다. 끊을까 말까 그 찰나에 통화가 연결되었다.



"안녕하세요? 00 아버님이세요? 저는 00 초등학교 교감입니다. 반갑습니다. 아버님! "



수화기로 들려오는 상대방의 목소리도 생각 외로 크게 반감을 갖지 않는 느낌이다. 자신감이 생긴다. 쫄지 않아도 되겠다 싶다.



"아버님,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여러 차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마도 학교 방문이 어려우신 것 같은데 저희가 가정으로 직접 방문하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아이의 성장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의논드릴 일이 있어서요"



"우리 아이가 싫어하는데....."



역시 아이 핑계를 댄다. 상담 자체를 부정적으로 여기고 있는 상태다. 여기에서 물러서면 죽도 밥도 안 된다.



"아버님, 00가 더 잘 자라고 성장하는 데에는 아버님이나 학교 선생님이나 똑같은 마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더 늦기 전에 좋은 방법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학부모님의 의견을 들으면 생각지도 못한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간 좀 내주십시오"



"...... 그러면 애 엄마랑 얘기해 보고 시간을 말씀드리겠습니다"



" 네. 감사합니다. 저녁 시간 때도 괜찮으니 시간을 꼭 내주십시오. 정해지는 대로 담임 선생님께 연락 주세요"



얼굴을 직접 보지 않고 설득을 끌어내는 일은 참 힘든 일이다. 상대방의 표정을 읽을 수 없고 목소리로만 듣고 반응해야 하니 통화 기간 내내 긴장 모드다.



존 콜라핀토의 『 보이스 』에는 인간의 목소리에는 그 사람의 성격이 담겨 있다고 한다. 그래서 목소리가 인간의 삶을 결정한다는 논리로 글을 전개한다.



특히 이 책에서는 영국과 미국의 지도자였던 처칠과 링컨, 오바마의 사례를 들어 목소리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그들의 특징은 목소리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점이다. 처칠은 독일의 침공 앞에 두려워 떨고 있는 국민들에게 대중연설로 마음을 평안하게 만들었고, 링컨은 연설 그 자체는 서툴었으나 진정성 있는 연설로 사람들을 각인시켰다. 오바마 대통령은 특유의 억양과 목소리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그렇다면 오늘 00 학생 아버지에게 내 목소리는 어떻게 전달되었을까? 진정성이 느껴졌을까?



담임 선생님, 상담 선생님의 연락도 거부했었는데 교감의 요청에 약간 마음 문을 연 것 같다. 이제 변심하지 않기를. 가정 방문일을 알려 오기를 기다릴 일만 남았다.


보이스의 힘이다!


이전 16화 오늘은 상담사로 변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