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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수 May 12. 2023

교감의 기도

기도할 수밖에 없을 때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 내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니다. 자책하지 않는다. 다만 풀리지 않기에 머릿속에 늘 저장되어 있다. 신경이 쓰인다. 양말 안에 작은 돌멩이가 있는 것처럼.



며칠 전 학생의 보호자와 통화가 극적으로 연결되면서 나름 쾌재를 외친 적이 있다. 기쁨도 잠시 뿐이었다. 담임 선생님이 쪽지를 보내왔다. 00 아빠가 보내온 문자를 캡처한 쪽지를.



'선생님, 00 아빠입니다.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00는 더 이상 상담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냥 이대로 지내게 해 주세요.

저도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대면은 원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이 문제로 전화가 안 왔으면 합니다. 수고하세요'



학교 측의 연락을 받고 힘든 것인지 개인적인 사정으로 힘든 것인지 문자 내용으로 확인할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며칠 전 나와한 약속도 거절하고 더 이상 어떤 전화조차도 거부하겠다는 뜻이다.

최후통첩을 보내온 것이다. 기대에 찬물이 끼얹어진 형국이다.

어떻게 해야 되나.



오늘 새벽에 00 아빠를 위해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자녀를 위해 학교 측의 전문가들이 오랫동안 진단하고 방향을 제안했는데 00 아빠가 마음의 문을 닫고 있습니다. '



'자녀보다 자신의 상황에 갇혀 있는 00 아빠의 마음이 긍정적으로 회복되게 해 주옵소서. '



'앞으로 00 이는 상급학교로 진학도 해야 됩니다. 친구와의 관계가 중요해지는 시기가 도래합니다.  사춘기도 지나야 합니다. 지금이 마지막 골든타임이라고 합니다. 00에게는 전문적인 손길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지금 이대로 생활하는 데에 불편함이 없다고 해서 손 놓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불편한 부분이 있더라도 과감히 학교 측의 제안에 마음 문을 열게 해 주세요.

자녀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하는 학교 측의 마음을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게 해 주세요.'



'기적적으로 00 아빠의 생각이 바뀌게 해 주세요. 대화의 시간을 갖게 해 주세요. 그리고 00 아빠가 놓인 육체적, 정신적 상황이 변화되어 자녀를 양육하는데 어려움이 없게 해 주세요. 그래서 00 이가 가정 안에서 좀 더 밝게 건강하게 자라게 해 주세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밖에 없다. 상황이 바뀔 때까지 기도해야겠다.



"기도가 없는 인생은 삶의 일부가 없는 것이 아니라 전부가 없는 것이다"

『기도를 시작하는 당신에게 』좋은 씨앗, 강산 저.



어제 오후에는 인사자문위원회를 열었다. 인사위원들의 의견을 듣고 표창 대상자를 선정하는 회의다. 위원들이 추천하신 분들과 단독으로 만남을 가졌다. 개인적으로 한 분은 이번에 꼭 표창을 받았으면 한다. 내년 근무지역을 옮겨 가실 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추천한다고 해서 반드시 표창받는 것이 아니다. 선정 인원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장담할 수 없다.



교감의 입장에서 그분의 사정이 잘 알기에 인사 담당자를 졸라서라도 받게 해 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 밖에 없다.




'올해 꼭 근무지를 옮겼어야 하는데 옮기지 못한 000 선생님 사정을 아시오니, 내년에 꼭 근무지가 옮겨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근무지를 옮길 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표창 대상자로 이번에 확정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생각날 때마다, 새벽마다 기억하며 기도로 나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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