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계절 단상
라이킷 77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그 밤은 사이비였습니다만

by 아이언캐슬 Jan 24. 2025
아래로

         

그 밤은 사이비였습니다

숨죽이던 밤바다도

귓전을 속삭이던 별빛조차

베개를 흥건히 적셨던 약속도

한쪽으로 기울어진 시소의 평정심도    

 

혹시

꿈은 캄브리아기의 대폭발을 기대했던가요

숨 고르던 산소가 붉은 별을 뒤덮었고

이윽고 불덩어리에서 초록으로 진화했겠지요

검푸른 파도는 이내 침묵의 눈동자를 굴리고 있었고

붉은 바위는 알리바이를 지키려는 듯

마른 비명을 꿀꺽꿀꺽 삼키곤 했겠지요   

  

내게 웃음을 강요하는 것은

당신이 슬픔에 젖은 시간 때문일 겁니다

시간의 변경선 언저리에 서서

내림 차순과 오름 차순 조차 혼돈하여

이름 없는 노래를 연주하게 되겠지요     


지금, 이 부근 어디에서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해도

당신의 믿음은 즉흥곡에 주저앉을지도 모릅니다   

  

단조가 장조로 느껴질 때도 있어요

오히려 단조로운 음률과 소박한 박자 때문일까요

생각은 G-선 위에서도 경쾌한 발걸음을 하고

절대 음감이 건반에서 새싹처럼 돋아나듯

악보에서 떨어지는 소리는 생기를 찾았네요     


거리마다 조만간 잊힌 악곡들이 걸어 다닐 거예요

슈베르트, 모차르트, 바흐이던가요

그런 계절이니까요

어렴풋한 그 악곡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빗방울처럼 바닥을 뛰어다닐 거예요     


보도블록 틈틈이 짓밟힌 풀들이 엎드려 읍을 하고 있거나

스쳐 간 발자국 눈치를 보며 누운 풀들이 슬그머니 허리를 펼 때

볕 겯듯 촘촘한 걸음걸이로 그대 떠나간    

  

그 밤은 사이비였습니다만


매거진의 이전글 그런 날 당신을 맞습니다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