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밤은 사이비였습니다
숨죽이던 밤바다도
귓전을 속삭이던 별빛조차
베개를 흥건히 적셨던 약속도
한쪽으로 기울어진 시소의 평정심도
혹시
꿈은 캄브리아기의 대폭발을 기대했던가요
숨 고르던 산소가 붉은 별을 뒤덮었고
이윽고 불덩어리에서 초록으로 진화했겠지요
검푸른 파도는 이내 침묵의 눈동자를 굴리고 있었고
붉은 바위는 알리바이를 지키려는 듯
마른 비명을 꿀꺽꿀꺽 삼키곤 했겠지요
내게 웃음을 강요하는 것은
당신이 슬픔에 젖은 시간 때문일 겁니다
시간의 변경선 언저리에 서서
내림 차순과 오름 차순 조차 혼돈하여
이름 없는 노래를 연주하게 되겠지요
지금, 이 부근 어디에서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해도
당신의 믿음은 즉흥곡에 주저앉을지도 모릅니다
단조가 장조로 느껴질 때도 있어요
오히려 단조로운 음률과 소박한 박자 때문일까요
생각은 G-선 위에서도 경쾌한 발걸음을 하고
절대 음감이 건반에서 새싹처럼 돋아나듯
악보에서 떨어지는 소리는 생기를 찾았네요
거리마다 조만간 잊힌 악곡들이 걸어 다닐 거예요
슈베르트, 모차르트, 바흐이던가요
그런 계절이니까요
어렴풋한 그 악곡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빗방울처럼 바닥을 뛰어다닐 거예요
보도블록 틈틈이 짓밟힌 풀들이 엎드려 읍을 하고 있거나
스쳐 간 발자국 눈치를 보며 누운 풀들이 슬그머니 허리를 펼 때
볕 겯듯 촘촘한 걸음걸이로 그대 떠나간
그 밤은 사이비였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