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panorama view
Museum Panorama Mesdag (20221228) 네덜란드: panorama view
3년의 긴 어둠 속 터널을 지내고 맞이한 2022년, 작심하고 미술관 여행을 몰아서 하려고 지도를 들여다보았다. 근 20년 정도 여행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소개된 미술관 관련 책들의 대부분은 뉴욕, 파리, 런던 등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다. 덕분에 나도 이곳들을 중심으로 미술관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 거주했던 1996-2000년대 초반만 해도 미술관을 소개하는 책이 없었다. 미술에 관심을 갖고 싶었지만 비전공자로써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잘 몰랐고 미래를 위한 준비로 바빠서 여유 없던 20대였던지라 꽤 오랜 시간을 거주하면서도 이쪽 분야를 누리지 못했던 거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이후에는 관련책들을 가이드 삼아 기본적인 미술관들을 두루 다니고 나서 보니 다음 단계로 안내해 주는 가이드가 없다는 게 느껴졌다. 그림에 관심을 갖다가 알게 된 플랑드르 미술, 들어는 보았으나 대강 어느 지역의 오래된 시대의 미술이라는 정도밖에는 알지 못했다. 그저 미술관에서 자리는 많이 차지하고 있고 어두컴컴한 그림과 시커먼 액자틀 정도밖에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쪽 지역의 미술을 좀 공부하면 미술관을 다닐 때 인상파그림 이외의 분야도 즐감하며 볼 수 있겠다 싶어서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루트를 짜보게 되었다.
정보가 없었기에 구글지도에서 별표 많은 미술관들을 검색하며 후보에 올려놓고, 한 도시에서 4박 5일 정도 하면서 다녀올 수 있는 반경으로 리스트를 추려갔다. 딸의 런던집을 베이스캠프로 삼아서 도시 한 군데씩 다녀오는 거라 무리가 없었다. 날씨나 컨디션에 따라 현지에서 누락당한 미술관도 있고. 한번 오고 말 거 아니니까 천천히 보면 되지 싶어서 무리하지 않으면서 다녔다. 헤이그에서는 기대 이상의 다양한 미술을 보면서 이 도시는 꼭 왔어야만 하는 곳이었구나, 한번 다녀가는 걸로는 부족한 곳이라고 생각하며 다음을 기약하게 되었다. 서울보다는 따뜻한 겨울날씨지만 겨울은 겨울인지라 도심에서 차로 5분만 올라가면 바닷가이고, 바닷가 공원에도 야외미술 작품이 많다고 하는데 몸이 따라주질 않아서 포기했다. 헤이그에서의 마지막 날 오후 시간에 어디를 더 보러 갈까 남아있는 리스트 중에서 한 곳을 찾았다. 도심 안에 있어서 가볍게 걸어가면 되는 이곳에서는 이번에 못 가본 북쪽 바닷가 마을의 1881년도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작은 미술관이지만 바닷가 마을을 그림으로 본 걸로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이 바닷가 지역의 이름은 Scheveningen이다.
간혹 경치 좋은 곳의 꼭대기에서 360도 회전하며 식사하는 나이스한 레스토랑을 가본 기억은 있는데 그림을 360도 돌면서 보는 곳은 처음이고 상상도 못 했던 관람 방식이었다. 레스토랑에서는 나는 가만히 앉아있고 바닥이 움직이며 360도 뷰를 보여주지만, 이곳에서는 그림은 가만히 있고 내가 한 바퀴를 빙 돌면서 파노라마 뷰를 봐야 한다. 모래사장 시작정도의 위치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면서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돌면서 바닷가 마을과 멀리 백사장 끝을 보다 보면 다시 제자리로 오게 된다. 특이한 점은 그냥 벽에 그림만 둘러놓은 게 아니고 백사장 쪽에는 고운 모래를 가져다 부으며 높낮이를 줘서 설득력 있는 착시현상으로 원근감이 더 느껴지게 만든다. 그 모래사장 위에는 바닷가 풀도 자라고 어부들이 버려둔 그물도 올려져 있고 어선들에서 떨어져 나온 건지 나무 널빤지들도 굴러다니고 정말 바닷가 느낌이 나게 꾸며져 있었다. 하늘은 어땠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해안가에 있는 오두막집 컨셉의 공간이 모래사장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서 멀리까지 잘 볼 수 있었다. 수평선 위에 맞닿은 하늘이 천장까지 연결되었던 거 같다. Panorama Mesdag는 유럽에서 가장 큰 원형 캔버스이다. 1680m² (약 500평) 화폭에 화가 Hendrik Willem Mesdag (1831-1915)가 부인 Sina와 제자들의 도움을 받으며 4개월 걸려서 1881년에 완성하였다. 4개월 밖에 안 걸린 거 보면 여러 명이 합심하여 빠른 속도로 완성한 듯하다. 원형의 지름은 36미터 정도 되는데 원근감 덕분에 아주 멀리까지 보이고 훨씬 더 큰 공간으로 느껴진다. 원두막 같은 천장 위의 텐트 위로 숨겨진 채광창을 통해서 내부에 빛이 들어와서 정말 바닷가에 서있는 느낌을 준다.
Hendrik Willem Mesdag의 원래 직업은 은행원이었는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위하여 35세에 퇴사를 한다. 이름을 남긴 화가들의 경우에 이런 결단을 내린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데, 생업을 내려놓기까지 얼마나 뼈아프게 힘든 과정을 겪었을까, 나도 조금 나이를 먹고 보니 그 결정이 대수롭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그런 결단이 있었기에 후세까지 볼 수 있는 그림을 남긴 게 아닐까. 그는 37세에 바다를 그리기 위하여 헤이그로 이사를 오고 수많은 멋진 바다 그림들을 남긴다. 파노라마 뷰를 보기 위해서는 나선형 계단을 이용해서 2층으로 이동해야 하고 1층에서는 그의 바다풍경 그림들을 볼 수 있다. 캔버스 사이즈가 크고 옅은 파스텔톤으로 은은하고 잔잔한 깊이 있는 그림들이다. 이런 수많은 연습이 있었기에 파노라마 대형 캔버스에 대작이 가능했겠구나 싶다. 이들 부부가 브뤼셀에서 몇 년 거주했던 했던 인연으로 1880년 벨기에 회사로부터 Scheveningen 스헤베닝겐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파노라마 그림을 그려달라는 의뢰를 받게 된다. 그의 부인 Sientje Mesdag-van Houten도 화가였기에 작품에 대한 이해도도 높았고 작업에 직접적인 도움도 준거 같다. 이젤 앞에 앉아있는 그녀의 모습이 이 그림 속 안에 숨겨져 있으니 한번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그러나 얼마못가서 파노라마 그림의 유행이 끝나면서 작품을 의뢰했던 회사는 파산하게 되고, Mesdag가 직접 미술관을 인수하고 자신의 그림을 팔아가며 손실을 메꾸며 버틴 덕분에 오늘날까지 원래 위치에서 살아남은 가장 오래된 파노라마가 되었다.
파노라마 그림은 특정한 주제들, 주로 풍경이나 대단히 많은 군사들이 동원된 전투현장 같은 역사적 사건을 묘사할 때 넓은 관점에서 포괄적으로 사건을 바라보며 기록한 거대한 예술 작품이다. 18세기에 시작되어서 19세기에 유행했고 유럽과 북미지역에서 인기가 많았고 지금까지도 남아있는 작품들이 있다. 파노라마 그림은 캔버스와 현실의 차이, 즉 전체성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관람객을 몰입시키기 위하여 생생하게 그린다. 그림이야 물론 잘 그리겠지만 몰입도를 높여주기 위해서는 캔버스의 경계선을 소품들을 사용해서 실제처럼 꾸미고 현실감을 높여준다. 또한 채광을 사용해서 사실적인 빛 조절로 환상적인 느낌이 들면서도 더욱 사실처럼 보이게 만든다. 관람객들은 실제와 이미지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다 못해 신비로움까지 느낄 수 있다. 보통은 관람객이 빙 돌면서 움직여야 그림을 볼 수 있지만, 때로는 관람객은 가만히 앉아있고 그림이 돌아가도록 롤러를 사용해서 움직이기도 했다. 정말 인간의 상상력과 도전은 놀라운 거 같다. 파노라마 공간을 위하여 원형으로 건축을 하고 그림을 그리는 것도 부족하여 그림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도록 설비까지 넣는 끝없는 채움의 욕구란 인간의 기본적 욕구가 아닐까 싶다.
재밌는 점은 반고흐도 1882년경에 헤이그에 머무르면서 이 바닷가에 앉아서 작업을 했다는 거다. Beach at Scheveningen in Stormy Weather 뿐만 아니라 바닷가 마을의 풍경, 해변의 사람들 모습, 조용한 바다의 모습등 여러 점을 남겼다. 국제 도시인 헤이그에는 네덜란드인 보다 더 많은 이민자가 거주하고 있다. 과거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의 영향으로 혼혈 인구도 많고, 유엔기구와 각국의 대사관이 헤이그에 있기도 해서 그런지 외국인 거주 비율이 50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 덕분에 이곳에는 아시아 식당들이 다양하기도 하고 맛있기도 하다. 유럽여행에서 지친 느끼함은 헤이그에서 해소시킬 수 있으니 오래 머무르기에 더없이 좋은 도시이다. 그나저나 360도 동영상을 보여드리고 싶은데 지면 위에 동영상을 올릴 수 있을 때가 올 것인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