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오렌지공 윌리엄의 요새
Royal Delft Museum (20221229)
The Hague의 여행을 마무리하고 마지막날 Rotterdam 공항으로 이동하면서 시간을 내서 Delft라는 마을에 들렀다. The Hague에서 공항까지는 20km로 비교적 가까운 거리인데 Delft는 그 중간정도에 위치해 있어서 그냥 지나치기는 아쉬울 거 같았다. Kunstmuseum Den Haag (헤이그 미술관)에서 만난 Delft 도자기 컬렉션이 인상 깊기도 했고, 이곳은 Johannes Vermeer의 고향이며 여러 화가들의 풍경화에 등장하는 마을이라서 기대가 되었다. 지금은 작고 소박한 마을이지만 16세기에는 17개 주로 나눠져 있던 저지대국가를 호시탐탐 노리는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로부터의 독립으로 이끌어 낸 초대 세습 총독인 William of Orange (Willem )가 Delft에서 단단한 요새를 기반으로 전쟁을 지휘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그는 네덜란드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1584년에 Delft에서 암살을 당하게 되었고, 그는 현재 네덜란드 왕실의 뿌리가 되었다.
The Hague에서 인상 깊었던 Delft 도자기는 Delftware, Delft Pottery, Delft Blue라고도 불리고 있으며, Delft에는 도자기 공방이 몇 군데 있다. 그중 Royal Delft Museum에서는 도자기의 제조공정을 보여주고 체험도 가능하며 시대별로 수집해 둔 Delft 컬렉션을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인기 있는 고급 브랜드인 <ROYAL COPENHAGEN>은 1775년에 덴마크에서 설립된 회사인데 이보다 더 오래된 역사와 기술력을 가지고 있던 곳이 Delft이다. 1653년에 세워진 <Royal Delft>는 17세기에 Delft에 세워진 32개 공장 중에서 유일하게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고, 왕실에서 인증받은 네덜란드 대표 도자기 회사이다. 사실 그릇 마니아가 아니면 <로열 코펜하겐>과 <로열 델프트> 두 브랜드를 구별하기가 어려울 만큼 비슷하다. 헤이그 미술관에서 굉장한 Delft Blue 컬렉션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 17세기에 제작된 Delft 도자기들은 오히려 중국이나 일본풍이라 느껴질 정도로 동양적이었다. 심지어는 동양 제품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빼닮은 화병들도 볼 수 있었다. 네덜란드는 이미 16세기 후반부터 이탈리아의 기술력을 전수받아서 도자기 생산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빠르게 새로운 기술들을 개발하고 발전시켰다.
Delft는 1602년도에 설립된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6군데 거점 중 한 곳이었다. 이 회사는 동양과 활발한 무역을 했기에 수백만 개의 중국 도자기를 수입했고, 네덜란드의 부유한 엘리트들은 중국에서 온 파란색 자기에 매료되었다. 이 당시 거의 모든 화가 나 조각가등의 예술가들은 길드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Delft의 Saint Luke Guild에서는 1610년에서 1660년 사이에 50여 명의 도예가를 배출하고 공인했다. 네덜란드의 황금기와 지역의 길드 시스템은 맞물려 있었는데, 길드는 전문적인 예술가를 배출하는 것은 기본이었고 생산을 관리하고 길드 회원만이 도시에서 작품을 팔거나 상점을 가질 수 있도록 규제하였다. Vermeer 역시 델프트 길드 소속이었다. 길드에서 배출된 도예가들은 Delft Blue를 생산하게 된다. Mauritshuis 편에서 등장했던 <The Goldfinch, 황금방울새>의 작가 Carel Fabritius (1622-1654)도 Delft의 길드 출신이었다. Fabritius가 젊은 나이에 사망하게 되었던 Delft의 화약폭발 사고는 수천 명의 사상자가 나온 대 참사였는데, 이때 파괴된 양조장 부지의 상당수는 도자기 공장으로 바뀌게 된다. 이후 이들은 값비싼 동양 제품에 비하여 상당히 저렴하게 Delft Blue를 생산해 낼 수 있었고, 이 기술은 인근 나라들로 전해진다. 그래서 로열 코펜하겐의 창립일이 네덜란드보다 100여 년 뒤졌나 싶다. 오리엔탈 풍은 1700년대 초반까지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그러나 유럽 전역에서 도자기 점토가 새롭게 발견되고 개발되면서 네덜란드는 경쟁력을 점점 상실하게 되고, 18세기말에는 영국의 웨지우드 등 새로운 브랜드들이 퍼져나가면서 Delft 도자기 산업은 쇠퇴하게 된다. Delft Blue의 타일들이 참 예쁘다.
Delft Blue 중에는 마치 우리나라의 석탑처럼 쌓아 올린 도자기가 있다. The Hague 도심 곳곳에서도 전시된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이건 무엇일까. 튤립 전용 화병이었다. 동그란 모양 등 다양한 화병은 역시 이곳은 튤립의 국가임을 상기시킨다. 네덜란드는 1600년경부터 1720년경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1인당 소득을 가진 최고의 경제 강국이었고, 이때가 예술분야의 황금기였으며, Delft Blue도 사랑받던 시기였다. 역사의 전성기 중심에 있었던 Delft. 지금은 더없이 조용한 마을이 되었지만, The Hague 여행길에 반나절 정도 시간 내어 과거의 영광을 느껴보기 좋은 곳이다. 14세기 네덜란드는 북해에서 청어잡이를 성공시키고 통조림으로 개발시키면서 부를 얻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청어 통조림을 못 먹어 본 게 아쉽다. 담기회에 와인 안주로 사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