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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by 우영이 Mar 24. 2025

   기지개 펼치듯 찬 기운이 물러가고 파릇파릇 냉이가 쑥쑥 자란다. 옷차림이 가벼워지면서 집 주변에 살펴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 뒤뜰에 묻어둔 김치 항아리를 비우고, 무와 배추도 흙 구덩이에서 탈출을 한다.


    중고 거래로 구입한 창호는 쓰임새를 잊은 채 창고에서 먼지만 쌓여갔다. 격자무늬에서 한지 구멍 사이로 밀려오는 황소바람에 입김이 솔솔 묻어난다. 화롯불 잿더미에 밤과 고구마, 은행 열매가 익어가는 냄새에 군것질 거리만 기다리는 아이는 참새처럼 입을 룩거리는 장난꾸러기들이다. 숯불 가득 담긴 화로는 난로로 바뀌고 개선된 난방 덕분에 고물상으로 옮겨진 지 오래다.


    여유로운 것이 시간이다. 오늘은 여태 미루었던 한옥 문을 설치하기로 마음먹는다. 온돌방에 바람을 막아 준다는 이유로 현대식 창호로 교체하였다. 돼지 발에 매니큐어 마냥 흰색이 생뚱맞다. 문틀 제작은 구입한 창호 크기가 빈틈이  없어 얇은 판자로 대신한다. 도구가 마땅찮아 나무를 자르고 크기를 맞추는 일부터 시간이 걸린다. 장착된 둥근 문고리와 돌쩌귀 정첩은 하나씩 분리하는데. 손때 묻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손바닥에 물집을 민들 모양이다.


    전통 문양 창호 두 짝의 폭이 여유가 없다. 별다른 도리 없이 창호 일부를 톱으로 잘라 넓이를 맞추기로 했다. 몇 차례의 수정 끝에 장석을 붙여 문을 닫아 본다. 이제 마무리만 하면 전통의 체취를 가까이 둘 수 있다. 색의 실리콘으로 문틀을 잡아준다. 고정한 테두리가 힘이 주어진다.


    아내가 냄비에 밀가루로 풀을 쑨다. 공장에서 만들어진 화학 성분이 들어간 접착제 대신 친환경 재료를 더한다. 한지는 창호의 멋을 더해 주는 마지막 단장이다. 새색시 볼에 곤지 마냥 얹어준다. 황토벽에 한지를 붙인 창호가 어울린다. 두루마기 한복에는 갓이 제격이다. 해가 기울어 손톱 달빛에 기대어 눈을 크고 뜨고 빗자루로 종이를 쓸어내린다. 햇살의 도움으로 내일 아침이면 팽팽히 당겨진 하얀 한지에 세 가지 무늬가 펼쳐지리라. 완성된 전통 문 사진을 자랑처럼 가족 단톡 방에 올린다. 촌부의 노력이 만들어 낸 조금은 어설픈 작품이다.


    편리함만 찾는 사이 장인의 정성이 깃든 나무 창호는 점점 사라져 간다. 어쩌다 마주하는 문틀이지만 한지는 찾아볼 수 없고 유리가 대신 채워져 있을 뿐이다. 깊은 산속 사찰이나 궁궐에서 접한다. 생소한 피부 질환은 자연에 답이 있다.


    어느 누구든 살고 있는 환경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공간이 자연과 호흡하고 옛 것에 익숙한 중년의 전유물로만 다가온다. 인공이 덜한 우리만의 터전에서 편안한 나날을 함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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