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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슈모슈는 무엇을 읽는가

학교이야기-강릉운양초

by 모두가특별한교육
코슈모슈(코슈모슈는 운양초등학교 6학년 1반의 '학급이름'입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청소년들이 정치에 관심이 많다고, 계엄령부터 시작한 우리 민주주의의 현대사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고, 아이들 관심에 맞추어 어른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이라는 주제로 지난 주 학부모 반모임에서 이야기 나누었다. 아이들이 어른 세대보다 더 나은 시민이 되길 바라는 마음은 선생인 나와 부모인 학부모들 모두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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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하듯, 아이들이 정치에 관심이 많을 때 정치 공부를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

정치 공부라는 말보다 시민 교육이라는 말이 조금 더 어울리겠다. 시민 교육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대선이 끝나고 코슈모슈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재명 대통령이 공약을 잘 지키는지 감시해야 한다고, 하루에 한 번은 정치 뉴스를 읽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참으로 고맙게도 몇몇 아이들이 정치 뉴스를 보고 있다. 나한테 정치적 이슈로 말을 걸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코슈모슈는 바쁜 삶을 이유로 정치와 등지고 있었다. 정치에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는 나의 당부가 공허한 구호로 그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매일 아침 10분은 정치 뉴스를 찾아보기로 했다. 매일 아침 20분씩 타자연습을 하던 코슈모슈들이 오늘부터 10분만 타자연습을 한다. 나머지 10분은 정치 뉴스를 자유롭게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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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첫 시작부터 코슈모슈들은 커다란 관심을 갖고 살펴봤다. 뉴스를 눈으로만 읽지 않았다. 모르는 단어가 많으니 하나, 둘 검색하며 손으로 읽었고 다른 친구들과 기사를 공유하며 입으로도 읽었다. 눈과 손과 입으로 읽으니 10분은 짧고도 짧았다. 매일 10분 정치 뉴스를 읽을 코슈모슈가 나보다 더 나은 시민이 되는 모습을 흐뭇하게 떠올렸다. 나아가 이런 시간이 학교 정규 수업시간으로 편성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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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뉴스를 살펴본 다음 내가 쓰고 있는 또 다른 기수라이팅, 딱풀핑 일기(김기수 선생님이 자신의 아기를 기다리며 고민하고 생각한 내용을 쓰고 있는 일기)를 함께 읽었다. 딱풀핑 일기는 아내 뱃속에 아기가 생기기 시작한 순간부터의 이야기와 그 순간마다 떠올린 고민이 담겨있다. 굉장히 사적인 이야기를 코슈모슈와 함께 읽는 이유는 우리가 특별한 교감을 나누는 사이이기 때문이다. 선생과 학생이라는 역할 너머 이 순간을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관계 맺는 코슈모슈와, 나에게 좋은 아빠가 되면 좋겠다는 코슈모슈와 딱풀핑 일기를 읽으며 또 다른 교감을 나누고 싶어 오늘 첫 걸음을 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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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한 순간을 알았을 때, 산부인과에서 진료를 받았을 때 그리고 아내와 가족, 친구들이 꾼 태몽 이야기를 읽었다. 딱풀핑의 6주차, 7주차 모습을 영상으로 보고 심장 소리도 함께 들었다. 아기가 이렇게나 작게 태어나는 줄 몰랐다고, 그 작은 모습이 귀엽다고, 잘 자라고 있는 것 같아 괜시리 자신이 뿌듯하다고, 자기 자신도 이렇게 똑같이 태어난걸 생각하니 엄마에게 고맙다고, 자신의 태몽도 궁금해졌다고, 일주일만에 1cm나 큰게 부럽다고, 엄청 작은 크기에서 심장이 빠르게 뛰는게 신기하다고, 심장소리는 말발굽보다 기차 소리 같다고 말했다.


코슈모슈는 너무 재밌다며 계속 읽자고 보챘다. 재미있다는 말 안에는 재미만으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더 있었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코슈모슈들에게서 지금껏 보지 못한 표정을 보았기 때문이다. 정말 깊은 눈으로, 그 깊은 눈망울 안에는 ‘기수야, 네가 어느덧 시간이 흘러 아빠가 되어가고 있구나’처럼 어르신 같은 모습이 있었고, 딱풀핑이 생기기 전 유산한 산이와 속상해하던 나를 위로하는 듬직한 어른의 모습도 있었다. 무엇보다 딱풀핑이 건강하게 태어나길 바라는 마음을 나와 아내 그리고 딱풀핑에게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전하는 바람과 응원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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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무엇을 읽어야 하는가. 요즘 아이들의 읽기는 온통 문해력에 집중하고 있다. 나는 문해력을 올리려고 글을 읽기보다 세상을 알아가는 글을 읽고 나와 관계 맺는 사람의 이야기를 읽는게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세상도 알고 사람도 알며 본인의 삶을 가꾸어 나갈 테다. 문해력은 자연스레 뒤따를 테다. 내일 또 코슈모슈에게 딱풀핑 이야기를 읽어줘야지. 나의 이야기를 나의 목소리로 전할 때, 깊은 눈망울로 귀담아 듣는 코슈모슈들 표정을 잊을 수 없다.


글쓴이 : 강릉 작고 아름다운 학교 운양초등학교 교사 김기수입니다. 아이들과 넘나들며 운양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학교 안팎을 넘나들며 배움을 가꾸고 교사와 학생이라는 주어진 역할 넘어 본질적 자아를 공유해 넘나들며 인간으로서 관계 맺는 일을 좋아합니다.





매거진 여름호 목차


여는 글_모두가 특별한 교육, 여름


1. 시론_새 정부 교육정책의 우선순위


2. 특집_평가, 이대로 만족하시나요


3. 학교이야기_코슈모슈는 무엇을 읽는가


4. 책이야기_고쳐 쓸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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