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평가, 이대로 만족하시나요?
초등학교 평가 제도는 시대 변화와 교육 패러다임의 전환에 따라 발전해왔다. 1973년 이전에는 학생들의 서열화와 성적 위주의 교육을 시행하였으며, 상대평가 제도를 기반으로 학생들 간의 비교를 통한 선발에 중점을 두었다. 1973년, 3차 교육과정의 도입과 함께 절대평가 결과를 생활기록부에 기록하게 되었으며, 1995년 이후에는 「5·31 교육개혁」, 「교육발전 5개년 계획」 등의 일환으로 새로운 평가 패러다임인 수행평가가 등장하였다. 이는 중간·기말 고사 점수로 대표되는 교과 성적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다양한 능력과 경험을 평가하고자 하는 시도였다. 이후 성취평가제와 과정중심평가를 강조하면서 수업과 연계한 다양한 평가 방식이 확산되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미래교육 패러다임이 등장하면서 AIDT(AI디지털교과서), 인공지능을 활용한 개별 맞춤형 학습 및 평가 등에 이목이 집중되며 평가 제도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강원 교육의 초등 평가 제도 또한 국가 교육과정 운영의 기본 방향의 틀 안에서 비슷한 흐름으로 전개되었으나, 시기별 각 교육감의 교육 방향성에 따라 평가 제도의 방점이 달라졌다. 한장수 교육감 시기에는 정책뿐만 아니라 학교 현장에서도 성적 및 학력 경쟁 위주의 평가 방식에서 온전히 탈피하지 못하였다. 민병희 교육감 시기에는 이에 대한 반성과 성찰로 학생 개개인의 성장 및 다양한 잠재력 개발, 고차원적 사고능력 향상을 위한 행복성장평가를 대대적으로 강조하였다. 중등교육에 비해 입시에서 자유로운 초등교육이야말로 ‘성적보다 성장’이라는 평가 본질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평가의 객관성 확보 및 기록의 어려움, 이에 따른 피드백 부족, 학부모의 낮은 수용도와 이해도, 교사의 평가권 확보가 아직 부족하다는 한계점이 드러났다. 신경호 교육감 또한 기존의 교육 시스템에서 개선할 부분을 찾아 학생들의 학력 신장에 초점을 두었다. 객관적 지표를 통해 수집한 학생 평가 데이터 수집과 성취기준 도달을 위해 강원학생성장진단평가, 성취기준 70% 이상을 반영하는 평가 계획 수립 등의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교육 패러다임에 따라 평가의 목적과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변화해왔다. ‘학생 성장’이라는 목적이 일치하더라도 이러한 목적 달성을 위한 방법론에는 견해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교육 주체간 평가제도에 대한 기대 수준 또한 차이가 존재한다. 학부모들은 대학입시를 고려하여 내 아이의 객관적인 학습 수준을 알고 싶은 반면, 학교 현장에서는 초등교육에서만이라도 전인적 성장이라는 교육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게 평가하고 기록할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되길 바라고 있다.
이러한 견해 차이에도 불구하고 ‘학생의 행동변화 및 학습과정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피드백을 제공하는 과정을 통해 학생의 전인적 성장과 발달을 지원한다.’ 라는 평가의 기본 방향성에는 모두 동의할 것이므로 이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사례를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1. 독일 학생 성적 평가 시스템 (홍혜정, 2017)
독일에서 학생에 대한 평가는 교사의 ‘고유한’ 권리로 간주되며 교사는 그 지위를 보장받는 공무원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 교사의 평가에 동의할 수 없는 학부모가 평가에 대해서 법적으로 소송할 수 있지만 법정에서도 교사가 준 점수가 합당한지를 보는 것이 아니라 평가 규정이 잘 지켜졌는지를 본다. 그만큼 교사의 평가권이 존중된다.
이처럼 성적 평가는 교사의 가장 큰 책임이 따르는 매우 중요한 업무로, 각 주정부 교육청은 매우 구체적인 규정을 정해놓고 있다. 또한 독일에서 교사가 되려면 5년 동안 대학 교육을 받은 후 18개월 동안 교육 현장에서 실제 수업을 하며 선배 교사로부터 1:1 멘토링을 받아야 한다.
독일 학교의 성적표에 기입되는 성적은 구두 성적과 필기 시험 성적의 합산이다. 여기서 구두 성적은 수업 시간의 자세에 대한 평가이고, 필기 시험 문제는 모두 논술형으로 출제된다.
구두 성적은 최종 성적에 40~60% 반영되며 크게 3가지 정도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수업 시간의 참여도’이다. 학생들이 수업 내용을 함께 생각하며 수업 진행에 긍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는지 혹은 수업 시간에 주어진 과제를 자립적으로 수행하였는지, 공동으로 해야 하는 과제에서 친구들과 잘 협력하였는지 등 수업 태도를 평가한다. 두 번째는 ‘프레젠테이션 태도’이다. 프레젠테이션은 한 학년에 한 번씩 하게 되며 한 주제에 2~3명의 학생이 한 그룹이 되어서 준비한다. 내용을 담은 결과물과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태도 등 두 가지를 합산하여 점수를 매기지만 결과물은 학부모의 도움이 있을 수 있어 점수에 많이 반영하지는 않는다. 세 번째는 숙제 검사나 공책 정리 등 교과목 지식 외에 지식을 습득하는데 필요한 태도를 반영한다.
필기 성적은 학기 중에 비정기적으로 보는 테스트(Test)와 정기적인 아르바이트(Arbeit) 혹은 클라주어(Klasur)의 성적을 합산하여 계산한다. 가을 방학 전에 한 번, 성탄 방학 전에 또 한 번의 시험을 치르며 1월은 성적 산출을 위한 ‘성적 평가 회의’를 한다. 성적 평가 회의는 평가에 있어서 중요한 결정 기구로, 이 회의에서 모든 담당 과목 교사는 자신이 준 학생들의 성적을 공개하고 성적에 대해서 논의한다. 예년보다 성적 차이가 큰 학생, 다음 학년으로 진급이 어려운 학생 혹은 과목 간에 성적 차이가 많이 나는 학생 등의 경우에는 왜 그러한 성적을 주었는지 해당 과목 교사가 설명하며, 성적에 대해 모든 교사가 동의하면 두 번째로 학년 책임 부장 교사와 교장, 학부모 대표가 모여 성적에 이견이 없는지 회의한다. 이 회의에서도 성적에 대한 이견이 없으면 최종적으로 성적표에 기재한다.
마지막으로 성적표에는 성적 외에도 학생의 태도에 대한 평가를 기록한다. 부지런함, 정직, 정리정돈 요소 외에 현대 사회에서 중요하게 꼽히는 덕목들도 학생 태도 평가 항목이 된다. 일을 자립적으로 알아서 하는 것, 책임감, 남에 대한 배려, 공정함 등이 태도 평가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2. IB PYP 교육과정과 평가 (홍선주, 2021; 신진영, 2022)
미래 사회를 대비하기 위해 학생 역량을 입체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신뢰성을 담보하는 것은 평가 혁신의 중요한 과제이다. 이런 관점에서 스위스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 교육재단 IBO(International Baccalaureate Organization)에서 실시하는 교육프로그램, 즉 IB 교육과정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중 우리나라 초등 교육과정에 해당하는 IB PYP(Primary Years Programme)의 교육과정과 평가 사례를 살펴보자.
IB PYP 과정은 전통적인 교과의 경계를 벗어나 학생들의 삶의 실제적 맥락에서 탐구하기를 강조한다. 따라서 초학문적 주제를 설정해 이를 바탕으로 교과 간 자연스러운 통합과 연계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탐구 과정을 통해 의미 있는 지식을 구성해 나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평가의 과정 또한 학습 과정을 모니터링하고 기록, 측정해 학습자를 효과적으로 지원해 주는 것에 방점이 찍혀있다.
IB PYP 평가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학교 공동체가 학교의 평가 목적과 철학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평가가 학생의 성장을 모니터링하고 적절한 피드백을 통해 성장을 돕는 것에 목적이 있다는 점을 교사, 학부모, 학생들이 명확히 인식한다. 또한 평가에 있어서 각 주체의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협의하고 명시해 놓는다.
평가의 각 단계에서는 다양한 평가 전략들이 활용될 수 있다. 학습 모니터링 단계에서는 관찰하기, 질문하기, 성찰하기, 동료와의 논의 등을 통해 학생의 탐구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상시 평가한다. 교사는 모니터링 단계에서 구술평가나 서술평가, 학습 포트폴리오 등의 도구를 활용한다. 학습 기록하기 단계에서는 구체적으로 학생들이 학습한 내용을 수집하여 기록물로 남긴다. 주로 학습일지나 포트폴리오의 형태로 학습 증거를 기록할 수 있다. 학습 측정하기 단계에서는 다양한 도구를 활용하여 학생의 성취도를 파악할 수 있는 데이터를 제공하는 것이다. 표준화 검사를 활용할 수도 있고 학교에서 직접 만든 도구를 활용할 수도 있다. 평가한 내용은 학부모에게 통지하게 된다. IB PYP평가에서 통지는 특정한 양식이 없다. 대신 학생과 학부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명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주로 부모, 교사, 학생 컨퍼런스, 학교 통지표, 전시회 등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렇게 교육 주체들이 함께 합의한 교육철학과 다양한 평가 전략, 도구들, 체계적인 평가 과정을 통해 IB PYP는 평가의 신뢰도를 높이고 있다.
IB교육과정은 기본적으로 개념 기반 탐구 학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능동적인 탐구 학습을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기초 역량 또한 매우 강조한다. 특히 초등 저학년과 중학년에 걸쳐 읽기와 쓰기에 기반한 문해력과 수학에 바탕을 둔 수리력을 꾸준히 평가하고 피드백한다. 우리나라 초등학교에서 한글 해득 검사나 읽기 유창성 검사, 3R’s 및 학습 진단검사를 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IB PYP의 사례에서 평가의 목적은 결국 평가 결과를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피드백을 통한 후속 교육계획 구성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서는 학부모와 학생, 교사 간 수시로 평가 결과를 공유할 수 있는 학교 평가 문화가 필수적이다.
3. AI를 활용한 평가
미국 텍사스주는 ‘매시아(MATHia)’라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으로 각자 수학 공부를 한다. 핀란드는 공교육권 전체 학생의 절반이 AI교육의 혜택을 받으며 학습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일대일 맞춤형 수업을 듣는다.
영국은 온라인 교육 플랫폼 ‘서드 스페이스 러닝(Third Space Learning)’을 활용한다. 이는 수학 교육에 특화된 1:1 튜터링 서비스로 AI 튜터가 학생의 학습 진도를 실시간으로 점검해 교사에게 전달하는 시스템이다. AI는 학생과 일대일 대화형 수업을 진행하는 동안 음성 인식으로 수업을 모니터링하면서 학생들이 어느 대목에서 개념 이해가 덜 됐는지 찾아내어 담임교사에게 알려준다. 그러면 교사는 학생의 학습 데이터를 확인하고 개인화된 학습 계획을 세운다. 주로 객관식 문제와 단답형 문제를 다룬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일부 문제는 어떻게 문제를 풀었는지에 대한 서술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런 경우 학생의 생각이나 문제 해결 과정을 분석하는 데 일부 AI 분석 도구가 활용되며, 서술형 문제의 채점이나 피드백은 교사의 개입이 필요하기 때문에 AI와 교사가 협력하여 문제를 다루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우리나라 또한 많은 선생님의 염려와 급하게 추진한 정책이라는 꼬리표에도 불구하고 올해 AI 디지털 교과서가 도입되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평가에서 AI를 활용한다면, 어떤 방식이 선생님들에게 도움이 될까?
첫째, 학습 데이터 분석. 그동안 학교는 학생의 수준을 파악하기 위해서 시험을 치뤘다. 하지만 시험 성적이 곧 학생의 학습 수준을 의미한다고 볼 수는 없다. 학생이 어려워하는 부분과 잘하는 부분을 데이터로 분석하여 축적하며 관리한 것을 토대로 교사가 즉각적인 피드백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수준별 맞춤학습. 학생 개개인의 학습 수준을 분석해 학습 수준이 우수한 학생에게는 심화 학습을 제공하고,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 학생에게는 보충학습을 제공함으로써 수준별 맞춤학습을 효율적으로 학생들이 접할 수 있어야 한다. 이에 한 예로 수학 교과에서 문제은행과 같이 다양한 난이도, 다양한 방식의 문제 중 학생의 학습 수준에 맞는 문제를 선별하여 제공하고, 평가 후 객관적인 피드백 자료 또한 제공할 수 있다. 다른 예로 국어나 사회 교과에서 학생이 자신의 삶과 연계된 일련의 학습 과정(포트폴리오)을 스스로 돌아보며 부족한 점을 발견하고, 더 성장하며 성숙해지기 위한 다음 단계로서 무엇이 필요할지 서술하는 평가를 할 수 있다.
우리는 종종 아이들을 씨앗에 비유하곤 한다.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치열한 과정이 마치 아이들의 성장을 보는 것과 같다. 그 과정에서 물과 햇빛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물을 너무 많이 주면 뿌리가 썩고 햇빛이 너무 강하면 잎이 말라 죽는다. 그럴 때 우리는 뿌리가 튼튼하게 내렸는지, 잎이 싱그러운 색을 띄고 있는지 관심 있게 살펴보고 그에 맞는 도움을 준다. 학생 평가도 그러하다. 한 아이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잘 자라기 위한 과정에서 평가는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이 또한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봐야 알 수 있다.
아이가 어떻게 꽃을 피우고 어떻게 열매를 맺는지, 그 치열한 과정에서 우리는 어떠한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살펴보는 것. 그것이 학생 평가의 첫 시작이다.
출처
이정민, 정재영(2024). 초등학교 학생평가 정책에 대한 역사적 신제도주의 분석: 1999년~2024년을 중심으로.
정창규, 강대일(2016). 평가란 무엇인가: 초등교사를 위한 평가 길라잡이.
강원특별자치도교육청(2023). 초등학교 학생평가 기본계획.
강원특별자치도교육청(2024). 초등학교 학생평가 기본계획.
홍혜정(2017). 일등과 꼴찌가 없는 독일의 성적 평가 시스템. 에듀인뉴스(2017. 09. 26).
https://www.edui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8730
홍선주(2021). IB PYP 사례 연구를 통한 학교 교육과정 혁신 방안 탐구. 교육문화연구, 27(5), 49-74. 인하대학교 교육연구소.
신진영(2022). IB PYP 평가 사례 분석을 통한 초등학교 평가 내실화 방안. 제주융합과학연구원.
모두가특별한교육연구원 웹진 편집부
매거진 여름호 목차
여는 글_모두가 특별한 교육, 여름
1. 시론_새 정부 교육정책의 우선순위
2. 특집_평가, 이대로 만족하시나요
3. 학교이야기_코슈모슈는 무엇을 읽는가
4. 책이야기_고쳐 쓸 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