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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 됨됨이kmj Aug 03. 2023

엄마가 봉인해제 됐다!

<11>그냥 그만둘까?이게 다 무슨 소용.

삼십 대 중반쯤, 피부에 자가멱역질환이 발병했다.

1년을 온몸의 피부가 간지러웠고, 문지르기만 해도 진물이 나 살이 뜯겨져 나갔다. 원래 아토피 체질이 했으나, 여태껏 아토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잊고 살만큼, 큰 불편 없이 살아오고 있었다. 가지! 여름 모기에 물릴 때면, 내 피부가 심각할 정도로 과민반응을 한다는 것. 그것 외에는, 아토피라는 것이 크게 드러나지 않 이었다.




기억 속 그해 여름 피부과와 대학병원을 전전하며 살았다. 원인을 밝혀야 치료가 적절하게 시작이 될 텐데, 가는 곳마다 농가진, 건선, 아토피, 수족구, 옴 등의 다양한 진단을 내렸고, 그에 맞는 약을 처방해 주었지만 1도 듣지를 않았다. 어떤 약은 바르자마자 더 가려웠고, 낫기는 커녕 피부의 병증이 무섭게 번져나가기도 했다.


그러다 조카가 있는 대학병원의 피부과를 가게 됐는데, 거기서 조직검사를 받게 되었다. 처음부터 이곳에 가지 않은 이유는, 집 근처 피부과에서 충분히 나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까운 친척에게 문드러져 나간 피부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갑갑한 마음에 이런저런 검사를 왔었만, 딱히 원인을 못 잡고 있었던 터였기에 그날은 피부조직을 직접 떼어내 검사해 보기로 했다. 그 결과, 병변자체에는 바이러스나 세균이 없으며, 타인에게 옮는 피부질환은 아니라는 진단을 받았다. 적어도 타인에게 옮지 않는다는 확신 받았을 때, 얼마나 다행이고 속이 시원했는지 모른다.

'간지럼 발작'이라는 애매한 병명을 받기는 했지만, 그날, 직접 병변을 검사함으로써 내가 가진 병이 타인에게 옮지 않으며 면역체계와 관계가 있는 듯하다는 진단을 내려준 것만으로도, 나는 더 이상 원인을 피부에서만 찾으려고 매달리지 않게 되었다.

당시 받아온 피부 영양제는 그 어떤 약보다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신랑이 팔방으로 알아보고, 어느 날 가져온 듀00은 1년이라는 시간과 그간 발라왔던 연고들이 무색만큼, 병증을 삽시간에 잠재워버렸다.


 뒤로도 드문드문 재발하려는 피부병증은, 생각지도 못한 해독한약(생리불순을 잡아주었고, 몸의 순환체계를 돌려주었던 것 같다.)을 먹으면서 아주 사라져 버렸다. 얼룩덜룩한 흉터가 곳곳에 남았지만, 6년여의 시간 동안 많이 옅어졌음에 감사할 따름다.

이제는 잠들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다 밤중에 벌떡 일어나 냉수로 씻어가며 가려움을 참지 않아도 됐다.




그랬던 피부병증이 다시 고개를 든 것이었다.


10년간 집에서 주부로만 있었다. 소소한 일거리들이 있었지만, 출퇴근을 하는 일은 아니었다. 동량은 적었고 당연히 체력 같은 것은 만들어 지지도 않았다. 젊음이라는 에너지가 마치 체력인 양 삼십대를 보냈다.

그랬던 내가 2022년, 마흔이 넘어 세상밖으로 나와 1년을 나름 부지런히 움직였다.

댄스공연을 준비했고, 운동을 했다. 이전보다 아기를 더 많이 안아주었고, 더 자주 나 자신을 들여다보았다.

게다가  시기, 처음으로 챌린지라는 것에 참여를 시작하며 운동도 치지 않으려고 바둥거렸던 것 같다.


그렇다고 욕심을 부거나 체력을 함부로 낭비해서 몸이 아팠다고 생각하지 않다.

내가 아픈 이유는, 과거의 게으름과 잘못된 생활습이 만든 질병 때문인 것이다. 과거의 질병이 고개를 내밀어 나를 도발하는 것일 뿐이다. 운동을 하고 목표를 가지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다.




이전의 나 같았으면, 아마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병원과 집만 오갔을 것이다.


 "나는 왜 안 되는 거지, 나만 자꾸 나쁜 일이 생겨. 뭘 해보려고 해도 건강에 이상이 오는데, 대체 뭘 하겠어?"

"마흔 넘어서 이게 또 왔다고? 그때도 1년을 아무것도 못할 정도로 힘들었는데, 더 나이 먹은 내가 이 병을 어떻게 이겨?"

"다 그만두자. 이게 무슨 소용이야? 애 키우고 먹고살기도 바쁜데. 다 그만두자. 편안해지자."


이 따위 돼먹지 못한 생각들을 하며, 회복에만 몰두한답시고 집에 처박혀 징징대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아니, 달라야만 했다.

1년여의 운동과 악착같이 댄스공연을 준비하 내 모습, 나를 응원하고 도움을 주었던 인연들, 그리고 더 이상 아기를 밀어내지 않고 벅차게 안을 수 있었던 간들, 이 모든 것들이 내 안의 힘이 되어, 강하게 몰아쳤다.

나는 싸워보고 싶어졌다. 스스로 병증을 눌러보고 싶어 졌다. 그리고 하던 것들을 포기하지 않고 이어나가고 싶어졌다.


결국, 12월 말경 시작된 자가면역질환 나에게 그 어떤 것도 포기하게 하지 못했다. 조금 쉬엄쉬엄 갈 뿐, 포기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자 류마티스까지 가세하여 뼈마디가 굳는 게 느껴졌다. 통증도 동반되었다. 손가락 마디가 굵어지고 꺾이는 변형이 온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거기까지 가지는 않았다.





<다 내려놓고 몸을 편하게 할 수도 있었지만 인스0그램에 의지를 다지는 게시물을 계속 올렸다.중간에 그만두는 것...그것만은 하기 싫었다.>

속해서 의지를 다졌다. 인스타에 살이 뜯기기 시작했던 초반의 진행 단계를 올리고, 일상을 이어나갔다. 한동안 매운 음식을 즐겼었는데, 병증이 올라오는 동안은 음식도 깨끗하게 먹었다. 아파서 움직이지 못하는 날은 작게라도 움직였다. 도움을 받았었던 해독한약도 지어왔다. 시행착오를 겪었던 6년 전을 떠올리며, 스스로 몸의 상태를 지켜보고 그때 얻었던 노하우들로 병증을 조절하기 시작했다.

엇보다 이 병증을 내가 컨트롤 하겠다는 의지가 컸다.


6년 전, 1주일도 안돼서 온몸을 침범했던 피부질환은 만만찮은 나의 대응에 초기단계에서 더 진행을 하지 못한 채, 세 달을 나와 팽팽히 대치했다.

3월경 병증의 진행 멈췄다.

과 팔다리를 타고 전신으로 진행하려 했던 피부 터짐과 마티스는 그렇게 다시 잠들었다.




포기하 자는 '핑계'를 찾고,

해내고자 하는 자는 '방법'을 찾는다 했다.


병증과 팽팽히 대치하던 2월경...

혼자만 하던 생각들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거의 10년만에 문장을 적고 있었다.


아팠기에 움직이는 일들을 쉬엄쉬엄 가야 했지만,

아팠기에, 고무줄로 팽팽히 봉인되어 숫자만 늘려가던 펜뭉텅이에서 펜 한자루를 집어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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