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맘으로서 오롯이 혼자인 시간이 그리 많지도 않은데, 그 소중한 시간들을 누워만있으라니...집순이 자아는 사람을 참 기운빠지게 하는 데는 선수인 듯하다.
'안정적인 것을 좋아하고, 그래서 일부러 져주기도 하고, 뜻을 접기도 하는 집순이 자아야, 네 말대로 쉬긴 쉴 건데, 쉬엄쉬엄 계속 나아갈 거란다. 가만히 있는 건 건강한 게 아닌 것 같아.'
나는 3월경 병증을 잠재웠다.
이전처럼 회복을 핑계로 쉬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운동과 댄스를이어나갔고, 스스로 약과 일상생활을 적절히 배치해 나가며 면역질환을 누르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스스로 병을 잠복시킨 주체가 되었다는 사실에 나에 대한 믿음이 커졌고, 그것은 내 안의 또 다른 불쏘시개가 되어 '열정이'의 폭주가 시작되었다.
나는 아프던 동안,5월 초에 있을 댄스학원의 <시즌촬영>을 준비하고 있었다.문제는 '피부터짐'이 시작되자, 류머티즘이 발발했고, 이것은 움직임과 동작에 통증을 수반했다.자가면역질환은 그 종류가 참 다양하다. 하나의 병이 튀어나오면 그 사람의 면역상태에 따라 줄줄이 다른 신체나 장기에도 새로운 병들이 나타나곤 한다. 그래서 병증이 올라온다 싶으면 빠르게 잠재시켜야 하며, 무엇보다 평소의 면역상태, 즉 건강유지가 중요한 병이다.
<왼쪽은 5월 시즌촬영을 위해 새 안무를 배우는 모습,오른쪽은 운동화가 찢어질 만큼 수업에 임하셨던 원장님의 시연 장면>
사실 마음 한편에는, '5월까지 낫지 못하면어떡하지'라는 걱정도 있었다.만약, 병증을 막는 것에 실패하여 온몸에 병변이 번지고, 다른 질환들도 기다렸다는 듯 튀어나오면준비했던 모든 계획이 엎어질지도 모른다는 염려도 있었다. 그럼에도 촬영을 결정한 이유는, 반드시 빠른 시간 내에 병이 번지는 것을 막고, 댄스든 운동이든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중도하차하지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스스로 다지기 위해서였다.
목표가 있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기어서라도 갈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댄스강사'라는 꿈이 생겼기에, 피부가 문드러져도, 관절이 좀 굳었어도, 아무도 모르게 방바닥을 뒹굴며 아팠어도...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빗소리와 캐리어 끄는 소리, 도전을 위한 출발의 설렘>
촬영 당일은아침부터 비가 쏟아졌다.
캐리어를 끌고 우산을 받쳐 쓴 채, 평소라면 짜증이 날 법한 상황인데도 뭐가 그리 좋은지 나는 캐리어의 둔탁한 바퀴소리를 들으며 급하게 동영상을 켰다.
우산이 휘청거렸다.
'이 걸음을 남겨야겠다! 최고는 아니더라도 포기하지 않았고, 해내러 간다.'
나는 두 번 다시 밟지 못할 '그날의 시간'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영상 속 캐리어를 잡은 손이 보인다. 그리고 굵은 빗방울 속에서 간신히 받쳐든 우산... 이것으로 기록은 충분했다.
사실 촬영전날 밤, 나는 소위 '현타'라는 것이 왔었다.
아이돌이나 입을법한 작고 화려한 의상을 캐리어에 넣으며, 안경을 끼고 후줄근한 티를 입은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그리고 깊게 패인 팔자주름을 보았을 때...
아기가 엄마 어디 가냐고 물었을 때...
2-3시간의 이불킥을 시전하고 나서야, 나는 모든 물음의 해답인 '초심'이라는 단어와 그간의 기억을 떠올리며 편안하게 잠을 청할 수 있었다.
<그룹 '에스파'의 곡 girls 안무 중에서>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경험의 순간에는 집중한다. 몰입이 시작된다.
<블랙핑크 멤버 Lisa 의 money 안무 장면>
나는 출산과 동시에, 어느 곳에서도 눈에 띄지 않는 아줌마1 이 되었었다. 어디에 있어도 자연스럽고 평범했다.
펑퍼짐한 원피스를 뒤집어쓴 채 장을 봤고, 아기를 키우며 분주한 하루를 보냈고, 밤이 되면 신랑보다 더 육중한 몸을 침대에 누인 채,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지금 아줌마 1을 비하하냐고?
그 아줌마1은 나였고,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와 다르지 않다. 그녀는 꿈을 꾸고 방법을 찾는다. 아줌마1은 누구보다 강하다.
'이거 아줌마 비하 아니야?'라고 생각했다면, 당신은 스스로를 돌보지 않는 것이 아닐지... 솔직해져 보길 바란다.
스스로를 돌본다는 것은 몸매를 관리한다는 뜻이 아니다.
원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냥, 자신의 게으름을 포장하고 합리화하지 않는 것, 내게는 그것이 스스로를 돌본다는 것의 기준이다.
언젠가 예쁜 엄마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녀는 말수가 적었고 예뻤고, 날씬했고 그래서 도도한 느낌마저 들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잘못을 한 적도 없는 그녀가 별 시답잖은 이유로 아기엄마 몇명의 입방아에 오르는 것을 보며...
늘 몸을 덮고도 남는 풍덩한 무채색의 옷을 입고 있는 그녀들이 처음으로 안타까워 보였다.
아니... 모자라 보였다.
내 눈에는 다 똑같은 아기엄마일 뿐인데, 외모로 욕을 하다니... 나는 그렇게 몇몇 엄마들이 진심으로 자기 얼굴에 침을 뱉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들은 종종 피부관리나 다이어트제품 얘기도 나누었었다. 참으로 모순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과묵한 뚱땡이였던 나는 그들의 관심 밖이었나 보다.
나도 살을 빼면 저렇게 욕을 들으려나 싶었다.
아... 많이 이뻐야 하는구나 참.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타인을 다치게 하거나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내 인생을 즐길 권리가 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고, 노력하고, 실현시켜 나가는 인간, 그것이 남자이든 여자이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아는 삶.
혹은 현재에 충분히 만족하는 삶.
그들의 삶은 모두 존중받을만하다.
나는필터로 주름을 지우는 작업을 좋아하는데, 그걸 보고 저 여자 못났네 늙었네 한다면, 그들은 스스로 아닌 척 포장해 뒀던 외모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왜 나이가 들수록 외모 뿐 아니라, 좋아했던 것들을 '추억'이라는 창고에 집어넣어 스스로 끝을 내버리는가?
각자의 개성이 돋보이는 통통 튀는 10대를 지나, 자유로운 고뇌와 선택이 시작되는 찬란하게 아름다운 20대가 지나면, 누가 시키기라도 한 듯 대부분이 사라져 버린다.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