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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나주 Nov 24. 2024

다시 돌아간다면

가장 후회되는 순간

누군가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냐고 묻는다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할 수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로 돌아가고 싶어요.”


바쁘셨던 부모님 덕분에 할머니 손에 자랐던 나는 그날도 여느 때처럼 할머니 댁에서 학교로 등교했다. 그런데 학교에 와서 가방을 열었더니 그제야 수저통을 놓고 왔다는 걸 알았다. 


휴대폰도 없던 시절, 점심시간 전까지 오늘 점심을 어떻게 먹어야 할지 안절부절못하며 수업을 듣고 있었다. 


그러던 중 문득 내다본 복도에 할머니가 서 계셨고,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계셨다. 수저통을 챙겨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리셔서 학교까지 오신 거였다. 그런데 그 순간 감사한 마음보다 부끄러운 마음이 먼저 들었던 건 왜일까. 젊은 엄마가 아니라 할머니가 오셨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서 난 할머니를 보고도 모르는 척 고개를 숙였다. ‘땡’하는 쉬는 시간 종소리가 들리자마자 교실 밖으로 뛰쳐나가 할머니께 왜 학교까지 오셨냐며 오히려 짜증을 내버렸다. 수저통만 휙 낚아채 교실로 들어가 책상만 바라보았다. 


그때 할머니의 마음은 어땠을까? 

손녀에게 수저통을 가져다주고 공부하는 모습도 보려고 설레는 마음으로 오셨을 텐데. 교실 밖으로 떠나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난 보지 못했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 손녀를 키우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 손녀마저 자신을 부끄럽게 여긴다고 느끼셨을 할머니의 마음이 가늠이 되지 않는다.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면, 할머니께 환한 얼굴로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가장 기뻤던 순간으로 돌아갈 수도 있지만, 나의 죄책감을 덜기 위해, 그리고 할머니의 속상했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가장 후회되는 그 순간으로 돌아가 만회하고 싶다.




너무 아픈 순간은 다시 떠올리는 것조차 힘들다. 최대한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기억 속 저 밑에 묻어 두었는데, 이렇게 다시 들춰보니 가슴이 아파온다. 


“시간이 지나면 잊히겠지.”, “감정도 무뎌져서 언젠가는 웃으며 넘길 날이 올 거야.”라고 믿고 있지만, 아직은 아닌가 보다. 


후회되는 그때를 잊지 않아야지. 할머니에게 받은 사랑을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돌려드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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