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이나주 Dec 01. 2024

할머니의 사랑 표현법

“할머니 보고 싶어요. 사랑해요. 제 마음 아시죠?”

“그래, 말 안 해도 다 안다. 고마 전화 끊어라!”

부끄러우신지 내 대답도 듣지 않고 급히 전화를 끊으신다.

말로는 절대 애정을 표현하지 않는 것이 할머니의 귀여운 단점이다.


대신 할머니의 사랑 표현법은 식탁에서 묻어난다. 

“할머니, 고기 듬뿍 들어간 김치찌개 먹고 싶어요!”

“이번 주엔 호박잎과 강된장 쌈 먹고 싶어요!” 

내가 먹고 싶은 음식들을 말만 하면 마치 요술처럼 저녁에 그 메뉴가 차려져 있었다. 


할머니표 집밥은 나물반찬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내가 지쳐 보이는 날엔 시장에서 소고기 제일 좋은 부위를 사 와 구워 주셨다. 손녀만을 위한 소고기. 가족들 눈에 띄지 않게 냉장고 가장 깊은 곳에 검은 봉지에 숨겨 두셨다가, 내가 집에 오면 몰래 꺼내 구워 주셨다.


항상 내 컨디션과 기분에 따라 식탁 메뉴가 달라졌다. 일주일간의 반찬이 심심하게 느껴지면 할머니는 고춧가루를 듬뿍 넣은 떡볶이를 만들어 주셨다. 시장에서 사 온 가래떡과 어묵으로 만든 떡볶이. 굵은 고춧가루가 입안에 거칠게 느껴지는 질감도 좋았고, 퍼진 가래떡이 쫀득하게 씹히는 식감도 좋았다. 그렇게 내 입맛은 오래도록 할머니 손맛에 최적화되었다. 아마 내가 바깥 음식에 쉽게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겨울의 시작은 늘 붕어빵이었다. 겨울이 오면 할머니는 시장에 들를 때마다 붕어빵을 잊지 않고 사 오셨다. 추운 날 붕어빵 봉투를 품에 안고 현관에서 나를 부르던 할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주야, 붕어빵 사 왔다! 어여 온나. 뜨실 때 먹어야 한다.”

집에 오는 동안 김에 눅눅해진 붕어빵. 바삭하지는 않았지만, 그 따뜻함과 부드러움은 할머니의 사랑으로 다가와 늘 맛있게 먹었다. 천 원으로 산 붕어빵 네 개 중 세 개는 내가 먹고, 남은 하나를 할머니가 드셨다. “배부르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던 할머니. 이제는 안다. 그 말이 손녀에게 한 개라도 더 먹이기 위한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할머니의 모습에서 배워서일까? 나도 음식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게 편하다. 남편과 다퉜을 때 화해하고 싶을 땐 말보다 음식을 준비한다. 

남편이 좋아하는 차돌박이 고추장찌개를 끓이고, 이것저것 반찬을 만들어 식탁을 가득 채워 놓는다. 식탁에 앉은 남편은 내 마음을 아는지 웃으며 화해를 받아들인다. 


그게 할머니께 배운 나의 사랑 표현법이다. 말로 표현하는 데는 서툴러도 손으로 정성을 담아 전하는 것. 할머니의 귀여운 단점이 어느새 나에게로 옮아온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