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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나주 Dec 15. 2024

사계절의 맛_봄

또 나물반찬이다.

우리 집에서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건 식탁 위 나물이었다. 

달래가 든 된장찌개와 데친 두릅, 취나물, 돌나물이 줄줄이 식탁 위에 올려져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쌉싸름한 맛이 싫어 투덜거렸지만, 제철 음식은 꼭 먹어야 한다는 할머니의 강요에 코를 막고 꿀꺽 삼키기 일쑤였다. 


“쌉싸리한 게 몸에 좋은거다! 어여 무봐라, 맛만 좋구만”


코를 막고 억지로 삼켰던 그 음식을 지금은 오히려 없어서 못 먹는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봄나물 먹으라는 잔소리가 그립다. 

다가오는 봄에는 잊지 말고 나물을 무쳐먹어야지. 그게 할머니의 기억을 간직하는 것이니까.


 학교를 가지 않는 식목일에는 할머니와 함께 동네 뒷산에 가서 쑥을 뜯어왔다.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풀밭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한 발 늦은 우리는 항상 인적이 드문 으슥한 골목으로 다녀야만 했다. 


“할매 뒤에 잘 따라 온나. 사람들이 모르는 곳으로 가야 깨끗한 쑥을 캘 수가 있는 기라.”


그렇게 쑥이 모여 있는 장소를 발견하면, 우리는 쪼그려 앉아 삼십 분은 기본으로 쑥을 캤다. 할머니의 관절이 상하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였을지도 모른다.

등산이 아닌 등산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 나는 항상 녹초가 되어 누워 있었다. 우리의 노동으로 얻은 값비싼 쑥의 반은 쑥털털이로, 남은 반은 국이 되거나 방앗간에 맡겨져 쑥떡이 되었다. 

쑥 향은 싫어하지만 떡은 좋아하는 나를 위해, 할머니는 쑥을 뜯어온 날엔 항상 ‘쑥털털이(쑥버무리)’를 해주셨다.


쑥털털이는 쑥과 쌀가루를 골고루 섞어 찜기에 찌면 되는 간단한 음식이다. 할머니께서는 쑥향을 조금이라도 가리기 위해 설탕을 솔솔 뿌려주셨다. 달콤하고 떡처럼 쫀득한 식감에 쑥털털이에 푹 빠졌던 것 같다. 

지금까지도 식목일은 나에게 ‘쑥 뜯으러 가는 날’로 각인되어 있을 정도로, 매년 열심히 쑥의 씨를 말리러 다녔다. 


그렇지만 식목일이 공휴일에서 폐지가 된 것은  나에겐 추억 하나를 앗아간 것과 다름없다. 이제는 쑥을 뜯으러 갈 날이 없다는 것이 조금은 서운하다. 만약 다시 식목일이 공휴일로 지정된다면, 나의 쑥 생활도 부활하고 할머니와 함께했던 소중했던 시간들도 되살아날 것 같다. 그렇게 봄이 오면 다시 한번 그리운 기억을 되새길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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