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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나주 Nov 17. 2024

나의 주치의, 할머니

지금은 건강하게 자라 병원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사실 어릴 때 나는 꽤 약한 아이였다. 위장이 약한 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어릴 때는 특히 자주 체해서 할머니 댁엔 늘 손 따기 전용 바늘과 실이 준비되어 있었다. 체해 끙끙 앓고 있으면 어느새 할머니가 대바늘과 실을 들고 나타나셨다. 팔 전체를 몇 번 쓸어내리고 나서 손가락 끝을 실로 감아 검붉게 변하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는 두려움은 지금도 생생하다. 할머니는 머리카락에 바늘을 몇 번 문지른 뒤 망설임 없이 손톱 옆을 콕 찔렀고, 그 순간 삐져나오는 검은 피.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만, 양손에 피를 뽑고 나면 체기가 풀리는 듯했다. 마무리는 할머니가 직접 담근 매실청 한 스푼으로 놀란 위를 달래주는 것이었다.


어느 날은 체한 정도가 너무 심해 손도 쓸 수가 없는 상황이 됐다. 병원은 문을 닫은 저녁이었고, 할머니는 나를 업고 옆 동네 친구에게 달려가 도움을 청했다. 항상 침착하시던 할머니가 그날만큼은 불안한 목소리로 친구를 부르시던 모습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내가 잘못될까 봐 걱정하신 마음에,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두운 밤길을 그렇게 뛰어다니셨을 것이다.



첫 생리를 하고 처음 느껴본 통증에 울며 할머니 방으로 들어간 적이 있다.


“퍼뜩 이리 온나.”


할머니의 말 한마디에 곧장 옆에 파고들어 누웠다. 할머니는 밤새 내 배를 쓰다듬어 주셨고, 요동치던 아랫배는 마치 마법처럼 사르르 가라앉았다. 거칠지만 따뜻한 그 손길이 좋아서 한참 동안 아픈 척하며 그 시간을 즐겼던 기억이 난다. 


“할매 손은 약손 주야 배는 똥배.” 


그 노래가 자장가가 되어 함께 잠이 들곤 했다.


할머니는 따뜻한 말로 마음을 치유해 주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저 옆에서 눈빛과 몸짓으로 보살펴 주셨을 뿐이다. 철없던 나는 말로 표현되지 않는 마음을 몰랐다. 서른이 넘어서야 깨달았다.  할머니는 나보다 많이 아파하셨다는 것을. 내가 아픈 것 이상으로 마음 졸이며 밤새 기도하셨다는 것을.


간호학과를 졸업한 지금, 나는 할머니의 작은 주치의가 되었다. 몸이 불편하셔도 자식들에게는 숨기던 할머니가 내 눈은 속이지 못하신다. 표정, 행동, 목소리만 봐도 할머니의 상태를 알 수 있다. 20년을 함께하며 쌓인 시간의 힘이다. 그래서일까, 할머니도 나에게는 더 이상 숨기지 않으신다. 


지금은 너무 약해지신 할머니. 매일 추가되는 아픈 부위를 들을 때마다 고통을 덜어드리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아 속상하다.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바라보고 안아드리는 것만이 최선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오늘 밤엔 꼭 전화드려야겠다.

즐겨찾기 맨 위에 있지만, 멀게만 느껴지는 그 번호를 오늘은 꼭 눌러야만 한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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