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하원 시간이 다가왔다. 물과 간식거리를 가방에 넣고 킥보드를 챙겨 아파트 입구로 향했다. 버스에서 내린 하성이는 선생님께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바로 나에게 달려왔다. ‘아빠가 얼마나 반가우면 저렇게 달려올까? 아빠도 널 기다렸어’ 하는 마음에 쪼그려 앉아 팔 벌려 안아주려고 폼을 잡았다.
“아빠 놀이터가요.”
바람과 같이 달려와 짧은 한마디를 외치고 쌩하니 킥보드를 타고 가버렸다. 하원 후에 놀이터는 일상이 되었다. 하성이가 4살까지만 해도 놀이터를 돌아다니는 하성이를 그림자같이 쫓아다녀야 했다. 혹시라도 넘어지거나 다른 아이 물건을 자기 거인 듯 가지고 놀려고 하는 일들이 종종 생겼기 때문이다. 5살이 넘으면서부터는 좀 컸다고 친구들과 놀고 있는 모습을 의자에 앉아서 지켜본다. 가끔 한 마디씩 하며 아빠의 존재를 알리며 안전하고 사이좋게 놀고 있는지 눈 운동만 하면 확인하면 된다. 의자에 나란히 앉은 엄마들과 함께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하성이가 괴물놀이를 해달라고 부른다. 뒤이어 아이들도 나를 애타게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들은 괴물놀이를 참 좋아한다. 술래잡기와 같은 방법이다. 내가 괴물이 되어 아이들을 쫓아다니며 “하성이 잡아라, 종희 잡아라, 미미 잡아라,” 외치며 아이들을 잡을 듯 말뜻 쫓아다니면 된다. 중요한 건 괴물 소리를 내고, 엄청 열심히, 빠르게, 뛰는 척 느리게 뛰어야 한다. 엄청난 연기를 펼치며 아이 중 한 명을 잡으면 그 아이가 괴물이 되어 또 다른 누군가를 잡고 잡는 방식이다.
이렇게 함께 뛰어노는 조아빠를 아이들은 참으로 좋아한다. 육아대디로 놀이터에 자주 가다 보니 엄마들보다 아빠들이 손쉽게 할 수 있는 역할 들이 몇 가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첫째, 힘쓰는 일이 어렵지 않다.
: 놀이터에 구름사다리가 있었다. 초등학생들이 건너가는 모습을 보고는 하성이가 3살 때부터 자기도 하겠다며 올라가려고 자세를 잡았다. 나는 하성이에게 해보고 싶은지 물어보고 번쩍 들어 한 칸, 한 칸, 완주할 때까지 안아준다. 옆에서 지켜보던 친구들도 엄마의 도움으로 구름다리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 6~7살 형님이 되었지만 구름다리를 혼자 하는 것은 그때도 어려워했다. 예전처럼 번쩍 들어서 올려주지는 않았지만 중간에 떨어져도 다치지 안에 밑에서 받쳐주었다. 옆에 있던 하성 친구들도 엄마에게 도와달라고 했다.
“미미야 네가 이제 무거워서 엄마는 힘들어서 못 도와줄 거 같아”
“미미야, 하성이 아빠가 도와줄까?”
이렇게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함께 놀다 보면 힘을 써야 하는 일들이 종종 있었다. 그 순간 엄마들보다 힘이 조금 더 센 아빠가 더 쉽게 도와줄 수 있었다.
둘째, 벌레를 같이 잡는다.
하성이를 비롯해 그 또래 친구들은 대부분 벌레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여름이 되면 아이들은 메뚜기, 여치, 매미 등 다양한 벌레를 잡으며 놀았다. 아이들이 혼자 벌레를 잡는 일이 쉽지 않았다. 대부분 엄마와 아빠등 어른들이 잡아 줘야 했다. 아이들이 잡아달라고 요청을 해면 엄마들이 쉽게 나서지 못했다. 엄마들은 대부분 벌레를 무서워하거나 싫어했다. 하지만 하성이와 친구들에게는 조아빠가 있었으니 그들을 이끌고 대장이 되어 풀숲을 헤치며 메뚜기와 여치를 잡고 나무 위에 매미를 잡아 함께 관찰하며 놀았다. 혹시 나도 꺼려지는 벌레는 이 벌레는 무엇일까? 누가 잡아볼래? 하며 위기를 넘겼다.
셋째, 체력이 좋다.
아이들은 왠지 모르게 달리기를 좋아했다. 6살 이후부터는 일주일에 2~3번은 달리기 시합을 했다. 자기들이 빠르다고 생각하며 의기양양하게 조 아빠에게 시합을 하자고 한다. 시합을 시작하면 보통 5~6번을 뛰었다. 출발선을 정하고 1,2,3을 세고 뛰기 시작한다. 첫 시합은 조아빠가 간발의 차이로 이겼다.
“와~ 진짜 빠르다 좀만 더 힘내면 하성이 아빠 이기겠다. 대단해”
아쉽게 진 아이에게 살짝 자극을 해주면 한 번 더 하자고 성화다. 두 번째 시합에는 간발의 차이로 져주었다.
“오~~ 이번에 진짜 빠른데 한 번 더 하자 하성 아빠 온 힘을 다해서 뛸거나.”
자극을 또 해주었다. 방금 시합에서 이긴 기세로 시합을 받아들인다. 아이들은 잘 뛰지 못하다. 벌써 2번을 온 힘을 다해 뛰었기에 금방 지친다. 그럴 때 뒤에서 “어, 와, 이야” 등 기합소리를 내면서 따라가 준다. 아이들은 그 소리에 더 힘을 내서 끝까지 완주를 하고 했다. 물론 시합은 아이들이 이기도록 해주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아이들은 자기와 하자며 서로 도전장을 내민다.
반대로 불편한 점도 있다. 바로 스킨십이다. 특히 여자아이들이 문제였다. 3살 때부터 함께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들이 자라면서 다양한 활동을 함께 했다. 아이들은 서로의 부모들과도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하성이 친구들도 나와 친해져서 스스럼없이 손을 잡고 구름사다리와 같이 높이 올려줘야 하는 놀이들을 할 때 내게 부탁을 해서 안아주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6살이 넘으면서부터 여자 아이들을 안아줘야 할 때 엄마들의 눈치를 보며 조심하기 시작했다. ‘혹시 내가 아이를 안으면서 특정부위를 만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안아주는 것을 싫어하는 건 아닐까? 나와 손잡는 것은 괜찮을까?’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들었다. 다행히 그런 내색을 한 엄마들은 한 명도 없지만 계속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이었다.
물론 더 좋은 점과 불편한 점이 많이 있겠지만 조아빠가 놀이터에서 놀면서 느꼈던 아빠육아의 장점들이다. 조아빠도 이렇게 장점들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나를 받아준 엄마들의 힘이 크다. 놀이터에 아이들과 나온 아빠들은 참으로 잘 놀아 준다. 하지만 아이들의 친구들을 만나고 그 부모까지 함께 만난 후부터 어색함이 감돌며 수동적이 되는 경우가 있다. 주변을 의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모가 서로 친분이 있다면 전혀 어색하지 않고 잘 놀아 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육아에 좀 더 많은 부분에 참여하는 엄마들의 힘이 필요하다. 아빠들에게 말도 걸어주면서 아는 척해주는 것이다. 그렇게 엄마들이 익숙해진 아빠들은 놀이터를 휘젓고 다니며 놀고 있을지도 모른다. 조아빠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