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거침없이 베어넘겨서, 평온의 고독에 깊이 묻었지.
구더기, 버러지들이 나를 한껏 갉아먹게 내버려두고,
웅크리자. 진탕 허물어지고, 삭아버리자.
발길질과 지우개질, 무서울 건 하나 없으니까.
콱 막혀 멈춰버린 심장, 좋아.
가시지 않을 뜨거운 열기와 함께 발아하는,
푸르름.
아름다움, 나의 이름.
검은 흙을 거세게 움켜쥔 뿌리를 자랑스러워 하며,
크게 뛰어오르자.
반드시 돋아난 초록은, 기쁨.
반드시 돌아갈 고향은, 구름 위 무한의 백지.
밤샘 집필을 하며 첫번째 웹소설에 공 들일 무렵, 동료 작가가 넌지시 말해주었다. 잠을 제대로 자지 않으면 심혈관 계통에 문제가 생기고, 살이 찌고, 뇌가 쪼그라들고... 저주에 가까운 그 말을 듣고서, 나의 위태로운 건강 상태를 새삼 다시 깨달았다. 실제로 나는 잠을 제대로 자지 않는 사람으로, 수명을 활자로 바꾸는 작가. 살이 많이 쪘고, 심혈관 계통에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였기 때문이었다. 글을 쓸 때의 심적 평온, 우아한 고독에 심취하느라 세상의 온갖 나쁜 것들이 몸을 쏠아대도록 내버려 둔 것이다.
글쓰기를 즐기기에, 24시간은 너무 짧았다.
조언을 해 준 동료 작가는 단순히 나의 건강을 걱정해서 해준 말 같진 않았지만, 오히려 나를 자기 관리가 안 되는 한심한 사람 쯤으로 비하하여, 나의 집필 습관 나아가 작가관 자체를 모욕한 것 같았지만, 나는 그저 웅크리기로 했다. 진탕 허물어지고, 삭아버리기로 작정했다. 한 톨의 에너지도 허튼 곳에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보다 더 열심히 글을 써서, 누구보다 기름진 흙이 되리라. 초록의 싹을 틔우리라, 다짐했다. 마침내 한 그루 우람한 나무가 되어 하늘을 찌를 듯 자라날 거라고, 백지를 닮은 광활한 우주에 이르를 것이란 생각으로 호기롭게 적은 시가 바로 <푸르름, 나의 이름>이다. 언젠가는 필히 도달할 죽음을 두려워하기 보단 기쁜 마음으로,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집필에만 열중하겠다는 문인으로서의 단단한 각오도 담겨있다.
나는 소설가 신지연이 아닌 푸르름, 그 자체.
그렇게 내 몸에 반드시 돋아날 초록은, 기쁨.
고로, 구름 위 무한의 백지를 향하여, 오늘도 즐겁게 문장을 빚는다. 내 진정한 마음의 고향은, 아직 아무 것도 쓰여지지 않은 흰 종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모든 것이 창조될 수 있는 우주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