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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연 Oct 21. 2024

후생에 이르러서도

네 목에 걸어줄 진주 한 알을 구하고자

소금 한 줌을 쥐어다가 장에 내다팔던 그 때.

뺨을 어루며 애틋하게 나누었던 약속 하나.

천지가 개벽한 후생에 이르러도 

우리 서로의 빛이 되기로,


네 발에 신겨 줄 비단 신 한 켤레 구하고자

엽전 꾸러미를 들고 장에 다녀왔던 그 날.

손을 맞잡고 달콤하게 나눴던 약속 하나.

천지가 개벽한 후생에 이르러도

우리 서로의 빛이 되기로,


수백, 수천 번의 삶을 통해 쌓아올려진 하나의 약속.

수백, 수천 년이 지나 하늘의 별마저 하나둘 지워져,

빌딩 숲 그늘 아래 서서 너를 기다리는 오늘.

그대는 기억할까, 그때 그날의 사랑을.


빚으로 빚어내는 금화 한 닢,

일찍이 없던 재화가 세상을 채워 거짓된 번영이 

육십갑자 한바퀴 돌아가고, 

희고 검고, 푸르고 붉은, 하여 검은 어지러운 계절들에도 불구

현생 남은 60여년을 나는 곱게 포장해 네게 건낸다.


건원중보 한 닢, 상평통보 한 닢 무슨 의미가 있으랴.

빛 바라지 않는 것은 그댈 담은 내 눈의 반짝임이라.


네 품에 안겨 마그네틱 선마저 옅어진 카드 한 장,

아파, 흐려진 몸으로 우리의 역사를 이뤄낼 수 있다면

세상의 거짓된 영광도 우리에겐 평온의 낙원이 되리.

무의미한 재화와 재물마저 귀한 정표가 되리.


혼을 다해 소원하리니,

나 그대의 빛이 되어, 

그대를 맑게 비출 수 있기를.


천지가 개벽한 후생에 이르러서도.






연애 할 당시, 남자친구에게 써 준 사랑 시.


유튜브로 <화폐의 역사>에 대한 영상을 보다가, 별안간 글감이 떠올라서 급하게 갈겨 쓴 시로, "화폐가 없어 물물교환하던 시절부터, 몇 번의 생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계속 연인으로 함께 했을 거야."라고 이야기 하고 싶어서, 애틋한 마음을 옮겨 적어보았다. "다음 생, 천지가 개벽하는 후생에 이르러도 널 지금처럼 사랑할거야." 라는 낯부끄러운 내용으로, 진주 한 알, 엽전, 건원중보, 상평통보, 마그네틱 선마저 옅어진 카드 한 장으로 시대의 흐름과 변치않는 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보았다.  


강렬한 감정은 녹아 사라져도, 글은 영원히 남는다는 걸 느낀다. 하여, 마침표를 찍기에 앞서, 보다 신중을 기해야 겠다는 생각도 든다. 시를 몇 번, 소리내어 낭독했는데, 웃음이 나올만큼 진실되게 사랑했던 나의 젊은 날들이 보기 밉지 않다. 앞으로 어떤 상대를 만나더라도, 순도높은 정결한 마음으로 참되게 사랑해야 겠다는 마음이다. 사랑의 결말이 어떻든 돌이켜 보았을 때, 결코 후회가 남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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