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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연 Oct 21. 2024

푸르름, 나의 이름.

하루를 거침없이 베어넘겨서, 평온의 고독에 깊이 묻었지. 

구더기, 버러지들이 나를 한껏 갉아먹게 내버려두고,

웅크리자. 진탕 허물어지고, 삭아버리자. 

발길질과 지우개질, 무서울 건 하나 없으니까.


콱 막혀 멈춰버린 심장, 좋아.

가시지 않을 뜨거운 열기와 함께 발아하는, 

푸르름. 

아름다움, 나의 이름.


검은 흙을 거세게 움켜쥔 뿌리를 자랑스러워 하며, 

크게 뛰어오르자. 


반드시 돋아난 초록은, 기쁨.

반드시 돌아갈 고향은, 구름 위 무한의 백지.






밤샘 집필을 하며 첫번째 웹소설에 공 들일 무렵, 동료 작가가 넌지시 말해주었다. 잠을 제대로 자지 않으면 심혈관 계통에 문제가 생기고, 살이 찌고, 뇌가 쪼그라들고... 저주에 가까운 그 말을 듣고서, 나의 위태로운 건강 상태를 새삼 다시 깨달았다. 실제로 나는 잠을 제대로 자지 않는 사람으로, 수명을 활자로 바꾸는 작가. 살이 많이 쪘고, 심혈관 계통에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였기 때문이었다. 글을 때의 심적 평온, 우아한 고독에 심취하느라 세상의 온갖 나쁜 것들이 몸을 쏠아대도록 내버려 둔 것이다. 


글쓰기를 즐기기에, 24시간은 너무 짧았다.


조언을 해 준 동료 작가는 단순히 나의 건강을 걱정해서 해준 말 같진 않았지만, 오히려 나를 자기 관리가 안 되는 한심한 사람 쯤으로 비하하여, 나의 집필 습관 나아가 작가관 자체를 모욕한 것 같았지만, 나는 그저 웅크리기로 했다. 진탕 허물어지고, 삭아버리기로 작정했다. 한 톨의 에너지도 허튼 곳에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보다 열심히 글을 써서, 누구보다 기름진 흙이 되리라. 초록의 싹을 틔우리라, 다짐했다. 마침내 그루 우람한 나무가 되어 하늘을 찌를 자라날 거라고, 백지를 닮은 광활한 우주에 이르를 것이란 생각으로 호기롭게 적은 시가 바로 <푸르름, 나의 이름>이다.  언젠가는 필히 도달할 죽음을 두려워하기 보단 기쁜 마음으로,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집필에만 열중하겠다는 문인으로서의 단단한 각오도 담겨있다. 


나는 소설가 신지연아닌 푸르름, 그 자체. 

그렇게 내 몸에 반드시 돋아날 초록은, 기쁨.


고로, 구름 무한의 백지를 향하여, 오늘도 즐겁게 문장을 빚는다. 내 진정한 마음의 고향은, 아직 아무 것도 쓰여지지 않은 흰 종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모든 것이 창조될 수 있는 우주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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