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막난 분초를 모아다가 내일의 집을 짓는다.
고된 일상과 몽롱한 의식은 간데없고
문패에 각인 된 생즉고를 지우고서
이름 석자 바로 적는다.
바쁜 오늘은 내일의 단잠.
장미가
담을 타고 오른다.
높은 곳의 붉은 기상
나를 보채고
토막난 분초를 모아다가 내일의 집을 짓는다.
성벽은 능히 만년을 살아내옵고
또한 견실할지라.
20대, 문예창작학과 재학 당시 썼던 시였다.
등단을 해서, 아버지 묘의 비석을 세워드릴 생각으로, 먹지도, 자지도, 심지어 씻지도 않고 글을 썼던 나 였는데, 조바심에 넘어져 건강이 크게 상해 학업도 접고, 신춘문예에 투고도 한번 도전하지 못했었다. 그 후 건강이 회복되어 다시 펜을 잡을 수 있었는데, 한번 형성된 집필 습관이라 그런지, 나는 아직도 새벽 내내 잠을 자지 않고, 글을 쓴다. 보통 이르면 새벽 5시, 늦으면 아침 7시 쯤 잠이 들고 오전 11시쯤 일어난다. 일정이 바쁠 때는 아예 잠을 거르는 날도 많다. 하루가 고작 24시간인 것이, 매일 최소 4시간 이상 수면을 취해야 한다는 점이 항상 아쉬웠다. 한번 의자에 앉으면, 10시간 이상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있는데, 그러다보니, 허리와 손목의 통증, 눈다래끼나 혓바늘을 달고 살기도... 이번에는 왼쪽 눈에 염증이 생기고 말았다. 블루라이트 차단 안경을 쓰고 있음에도, 새벽 내내 어두운 방에서 환한 모니터를 응시하며, 장시간 글을 쓰다보니 눈에 무리가 온 모양이다. 주말내내 울며 지냈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통증이 있었기 때문이다.
존경하는 김교수님께서는 장기전이니까, 스스로를 돌보라고 누차 말씀해 주신다. 수면도 최소 7시간은 해야 한다고 하셨고, 취침 시간 역시 명시해주셨다. 다른 분의 말씀도 아니고, 김 교수님의 말씀이니까 잘 따르자는 생각을 하고 집에와서, 막상 책상에 앉으면, 왜 일까. 여유로움은 사라지고, 평소처럼 필사적으로 글을 쓰게 된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도,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외치며 글을 쓰다가 결국 아침 해를 마주한다. 이번 왼쪽 눈의 염증으로 주변 작가분들께서도 걱정을 많이 해 주셨고, 친구들도, 가족들도 마음을 많이 써주셨다. 나는 제대로 감사인사도 드리지 못하고, 그저 부끄러움에 속이 끓어 말을 삼켰다.
그런 이유로 오래된 집필 습관을 바꿔보려 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주변 소중한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고,
좋아하는 글쓰기를 실컷할 수 있도록
또한 오래 할 수 있도록.
"토막난 분초를 모아다가 내일의 집을 짓는다. 성벽은 능히 만년을 살아내옵고 또한 견실할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