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소복한 책장의 게으름을 닦는다.
상도에 걸맞는 빳빳한 책은
문인의 수치.
나를 돌이켜
굽은 어제를 곧게 편다.
둥글게 말린 것은 이제 책등이어라.
나 어깨를 바로 펼 날,
새로이 만날 무지를,
그 한계를 꿈꾼다.
안 읽은 책 몇 권을, 헌책방에 팔려고 정리하다가 쓴 시.
책등이 너무 빳빳하여 거의 새 책이나 다름없는 책을 두고 나는, 이 정도라면 제 값을 톡톡히 받을 수 있겠다며 좋아했다. 그런데 문득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문인이 아니라 순 장사치가 아닌가. 독서를 하겠다며 책을 잔뜩 사 놓고, 게을러서 다 읽지도 못하고 헌 책방에 내다파는 주제에, 비싼 값을 넉넉히 받겠다며 기뻐하는 한심한 인간, 못 견디게 탐욕스런! 결국 먼지 소복했던 책장을 싹싹 닦아내고, 내다 팔려던 책들을 전부 책장에 도로 꽂았다. 몇 권은 그 자리에서 전부 읽었다. 어찌나 수치스럽던지!
지식을 갈고 닦을 수록, 스스로의 무지를 깨닫게 된다는데, 스스로의 한계를 새로이 발견하는 기쁨에 탐닉하며, 앞으로 더 많은 책을 읽겠노라, 다짐하며 썼던 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