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딛을 땅이 비좁다고
바람마저 웅크리면은...
...
청동 거울,
비단 꽃신,
자수 댕기 갖지 못 해도
지지않을 기세, 품은 큰 뜻이
그대에게 어려있다면
좋아라, 나는 좋아
제 자리서 한 바퀴 맴을 돌지요.
은 비녀와 옥 가락지 가져다가
그대 드릴 새 갓과 붓 몇 자루 구하고서,
새로 누빈 청도포는 고이 품어 안아들고
물 웅덩이 디딜 적에
살곰
살곰히 피해 걸어요.
젖어드는 짚신은
버선을 온통 못 쓰게 만들지만,
지지않을 기세, 품은 큰 뜻 그대와 함께 한다면
좋아라, 나는 좋아
제 자리서 두 바퀴 맴을 돌지요.
온갖 풍파에도 꺾이지 않을
저 곧음처럼,
여보,
추위마저 떨쳐내고 꽃 틔운
저 붉은 매화처럼.
20대 때 썼던 사랑 시.
사랑에 있어 순종적이고 헌신적인 조선시대 여성의 눈으로, 애정을 표현해보았다. 요즘 20대 청년들이 7080 레트로에 열광하는 것처럼, 나 역시 20대 때는 조선시대에 묘한 환상에 젖어 살았는데, 문진 오르골을 책상에 올려두는 것에서부터, 평상시에도 한복을 입고 생활하기를 꿈꾸고, 방에는 벤쿠버 차이나타운에서 사 온 사군자 족자를 걸어놓기도 했다. 특히 한복은 불편하고 번잡스러울 것 같아도, 그런 불편마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요즘에는 한복이 생활화 되어 1년에 한번씩 열리는 한복상점 행사도 인기가 있고 하지만, 나 때만 해도 한복을 입고 다니려는 사람은 신내림 받은 무당 정도 였다. 그런 이유로, 한복을 입고 다니고 싶다는 말을 하면, 이성들은 질색을 하기도 했다. 나는 고추장도 직접 담궈 먹을 때도 있고, 새벽 잠이 오지 않는 날에는, ‘한복을 입고 솥에 전통음식을 요리하는 영상’도 즐겨보는 사람인지라, 한복에대한 세상의 인상과 인식에 아쉬움이 많았다. 2020년대 초중반. 나의 정체성과 기호를 비로소 이해받을 수 있는 시대에 겨우 정착하게 되어 기쁘다.
시에는, 없는 살림에 정인께 드릴 선물을 몇 개 사서 기쁘게 귀가하는 여성의 마음이 담겨있다. 주눅들거나 위축되지 말고, 추위마저 떨쳐내고 꽃 틔운 저 붉은 매화처럼, 온갖 풍파에도 꺾이지 않을 곧은 기세가 낭군님 가슴 속에 깃들어 있길 바라는…. 시의 대상은 연모하는 이성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조국을 생각하며 썼다. 한반도, 워낙 작은 땅이라, 역으로 나라 이름에 크고 위대하다는 의미의 대大자를 붙이기도 하지만, 우리 지지않을 기세, 품은 큰 뜻으로 세상 마음껏 날아다니자는 뜻이다. 한국인들이 저마다의 겨울을 무사히 이겨내고, 삶 속 첫 꽃인 매화를 잘 틔워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