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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연 Nov 12. 2024

기일.

따순 밥 지어다가

기름진 산해진미, 없는 살림에 조금조금.

  

맛난 떡 지어다가 

달콤한 유과 탕과, 없는 살림에 또 조금조금.

  

한 해 내내 오늘을 기다려 

떠난 임 오실 자리 앞서 윤을 낸다.

  

꽃 자수 방석 놓으면 그대 한 번 웃을까.

그릇마다 옻칠하면 그대 하루 더 머무를까.

  

그리워 울기보단 재회의 기쁨이 별 아래 가득하고,

곱게 휜 저 달은

우리 입매를 닮았구나.

  

후일

바르고 고운 얼로 따르고자

세속의 비명, 탐욕의 허기, 거짓된 모든 것을 경계하는데

임은 아실까, 나 홀로 댕기머리.

  

떠난 날, 

꼭 다시 오실 임을 기다리며

나 홀로 푸른 댕기. 






아버지 첫 제사를 준비하며 적었던 시.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서 우리 집은 가세가 형편없이 기울어 옥탑 단칸방에서 세 식구가 함께 살았다. 키우던 강아지를 차마 버리지 못해서, 친척 오빠에게 "여기가 사람 사는 집인지 개 집인지 모르겠다"는, 개를 버리라는 말을 대놓고 들었지만 그래도 그 좁은 집에서 강아지까지 식구로 여기며 함께 살았다. 남동생은 한 사람이라도 입을 줄여보겠다고 입대를 했고, 나는 제사용 목기도 없어 플라스틱 그릇에다가 아버지 첫 제사 음식을 올렸다. 어머니는 없는 살림에 제사를 포기하자고 하셨지만, 나는 이십대 초반 다니던 대학도 그만두고 보험회사를 다니며, 결국 혼자 상을 차렸다. 시골 큰 아버지댁에 내려가 제사상 차리는 법을 노트에 적는 등 따로 배워오기도 했다. 제사가 얼마나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었는지 화장실에서 피를 보았고, 이후 병원에도 가야했다. 옥탑 단칸방에서 치뤄지는 제사라, 친척 어르신들은 현관에 서서 신발 위에서 절을 하셔야 했는데, 나는 냉장고 옆에 바짝 붙어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눈물을 훔쳤었다.


이 시는 그 때 울면서 적었던 시다.


15년이 지난 지금은 아버지 제사가 집안의 전통이 되었다. 올케의 바람으로 간소화 하긴 했지만, 조카들도 좋아하는 집안의 큰 행사로, 어머니도, 남동생도 한 해 달력을 사면 아버지 제삿날부터 찾는다. 나는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지만, 만에 하나 정말 혼령이 있다면 그래서 아버지께서 배를 곪으신다면 속에서 천불이 날 것만 같다. 그래서, 내가 죽는 그 날까지 계속 아버지 제사상을 꾸준히 차려드리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아버지는 가난 탓에, 어려서부터 친구 집에서 공부를 가르쳐주며 더부살이를 하셨다. 그 친구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도시락을 싸 줄때는 밥을 살살 얇게 펴 담아서, 아버지께서 밥을 드시기 전 도시락을 몇번 흔들면 밥 뭉치가 도시락 귀퉁이에 조금 들어차 있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하셨다. 평생 먹는 것으로 눈치를 보시는 면이 있으셨고, 가족끼리 식사를 할 때도 우리가 밥을 다 먹고 나서야 본인 식사를 하시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셨다. 행여 음식이 부족할까봐 그러셨던 것 같다. 그런 아버지께서 혼령이 되어 밥을 굶으신다면….


세상 사람들 전부가 제사란 풍습을 미개하다 말하더라도, 그렇게 싹둑 단발을 하더라도 나는 끝까지 홀로 댕기머리를 할 생각이다. 사랑하는 아버지, 내 소중한 사람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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