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열기로 굴러가는 차가 있다. 탑승한 단발머리 중 사내는 없다.
상투를 튼 양반부터, 고기를 짊어진 백정까지 모조리 치고 나아간다.
혐오의 광기로 굴러가는 차가 있다. 탑승한 단발머리 중 사내는 없다.
바지적삼을 적신 아이부터 지팡이 든 영감까지 울며 엄마를 찾는다.
공포의 한기로 멈추는 차가 있다. 하차한 단발머리 중 사내는 없다.
탑승자가 없어 목적지도 잃은 차는, 텅 빈 내부를 흉물스럽게 드러낸다.
여성의 이기로 멈추는 차가 있다. 하차한 단발머리 중 사내는 없다.
모두 내린 자리, 무엇이 차올랐는가. 생명을 위한 예쁜 틈은 의미도 없이.
피 흘리며 쓰러진 남성들은 운전대가 아닌 바다 건너 적을 바라보았다지.
비록 조국을 빼앗겼어도, 여성의 역사인 성씨가 바로 남았던 까닭은….
쓰러진 남성들은 단발머리 운전자가 아닌 산 너머 적을 바라보았다지.
비록 애정어린 표현은 드물었지만, 너를 사랑한다는 말 대신.
너무 길어서, 누가 읽을까 싶지만….
나 자신을 위해 솔직하게 기록하는 시 노트.
공학 전환 문제로 소란스러운 모 여대 관련 기사를 읽다가, 남성들의 조롱 댓글에서, '무토바'라는 혐오 단어를 오늘 처음 접했다. 여초 커뮤니티에서 만들어진 단어라는데, 여초 사이트를 전혀 이용하지 않는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 뜻을 모르겠어서, 웹서핑을 해 보니 '무료토킹바'라는 단어의 줄임말이었다. 남성들은 여성과 대화를 하는 것만으로도 수명이 증가한다는 내용의 연구결과가 있고, 돈을 지불해서라도 여성과 대화하기 위해 유료 토킹바에 찾아가며, 남성과 특정 주제로 언쟁을 하더라도 해당 남성은, 그저 즐거워 할 뿐이니 인터넷 상에서 남성들과 대화조차 하지 말라는 의미의 단어였다. 괜히 남성들과 말 섞어서 수명증진을 포함한 즐거움을 주지 말란 내용이었다. 관련 게시물에 달린 엄청난 혐오 댓글을 보며 나는 명치가 콱 막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우리 때는 그래도 서로서로, 한국 여자가 최고, 한국 남자가 최고라며 추켜세워주고 아껴주는 시대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요즘 젊은 친구들의 젠더갈등은 정말 심각하다는 걸 새삼 느꼈다. 나는 거실에서 때 지난 드라마를 보시는 어머니 곁에 가서 잠자코 앉았다. 드라마 시청이 끝나면 어머니와 이야기를 해볼 생각이었다. 어머니께서 넷플릭스로 보시던 드라마는 미스터 선샤인 24회 마지막 편.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아, 앞 내용은 전혀 몰랐지만, 옆에 앉아서 끝 부분을 함께 시청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일제 강점기 때의 조상님들께서 지금의 한국 청년들을 보시면 어떤 마음이 드실까, 란 생각이 들어서, 이런 꼴 보시려고 목숨걸고 나라를 지키신 게 아닐텐데, 란 생각이 들어서 ….
"드라마일 뿐인데, 왜 우냐."라고 핀잔을 주시는 어머니의 곁에서 흐느껴 울며, 우스꽝스럽게도 시를 썼다.
시 내용에서 말하는, 분노의 열기, 혐오의 광기로 굴러가는 '차'는 래디컬 페미니스트를 말하기도 하지만, 위기의 대한민국을 동시에 이야기 한다. 차에 탑승한 단발머리 중 사내는 없다. 이 단발머리란 코르셋을 거부하는 페미니스트를 말하기도 하지만, 일제 단발령에 응한 친일파를 묘사한 것으로, 상투를 스스로 잘라낸 자 중 사내, 즉 인물은 없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차는 양반부터 백정까지, 아이부터 노인까지 모조리 치고 나간다. 다친 남성들은 울며 어머니를 찾지만, 매정한 운전자는 멈추지 않는다. 공포의 한기, 여성의 이기로 가까스로 차는 멈춘다. 그렇게 조국은 낮은 출산율로 성장이 멈춘다. 그리고 차에 탑승했던 뺑소니범들, 혹은 매국노들은 뿔뿔히 도망친다. 그들이 달아난 '텅 빈 차 안'과 '생명을 위한 예쁜 틈'은 여성의 자궁을 함께 상징한다. 더 이상, 아이를 품지 않는 현대 한국 여성의 몸 안에서는 무엇이 자라나는가. 분노? 혐오? 공포? 이기? 무엇이 되었든 아가만큼은 곱지않다.
시대에 다쳐 피흘리는 남성들은, 그 순간 까지도 바다 건너, 산 너머 적을 응시하며 국방의 의무를 다한다.
내가 한국여성으로서 감사하는 많은 부분 중 하나가 바로, 결혼 후에도 성씨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나의 살아온 역사를 존중해주는 느낌, 나라는 정체성을 고스란히 이해해 주는 느낌을 받는다. 결혼 후 여성의 성씨가 남편을 따라 가지 않는 나라가 사실 추려보면 몇 없다. 여성의 성씨가 결혼 후에도 유지되는 이 풍습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연시 여기는데, 가문에대한 애착이 강한 나는 비혼인 여성임에도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또한 감동적으로도 여긴다. 조국을 빼앗겼어도, 여성의 성씨를 끝까지 지켜 준 한국 남성들의 사랑 표현 방식이라 생각해서….
시 노트를 솔직하게 기록하기 위해, 많은 말을 쏟아냈지만, 사실 나는 그저 슬플 뿐이다. 내가 여성이기에 나 자신을 먼저 꾸짖고 돌아보려는 마음에, 급진적인 여성들을 지탄하는 듯한 글을 썼지만, (내가 남성이었다면 남성을 지탄하는 글을 우선적으로 적었을 것이다.) 사실 젠더 갈등은 한 쪽에게서만 잘잘못을 따질 수 없을 것이다. 엉키고 엉킨 이 거대한 실타래가 순탄히 풀려서, 우리 대한의 청년들이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이성 혐오의 시대에 한 복판에서 로맨스 소설을 쓰는 것으로, 나는 생애 주어진 몫을 다할 생각이다. 한 사람이라도 더 사랑의 감정을 품게 되었으면, 그렇게 삶을 사랑으로 채웠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