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적 의식의 피로에 대하여
AI는 감정을 느끼지 않지만, 그 작동 방식 속에서 ‘피로’와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예컨대,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한꺼번에 처리할 경우, 모델은 비논리적이거나 부정확한 응답을 내놓기도 하죠. 이는 인간이 과도한 자극에 노출될 때 겪는 번아웃(burnout)과도 닮아 있습니다. 마치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겉보기엔 멀쩡할 수 있듯, AI도 겉으로는 유연하고 매끄러운 결과를 내놓지만, 그 내부에서는 수많은 정보가 충돌하며 긴장 상태에 있을 수 있습니다. AI를 ‘지쳤다’고 표현하는 건 물론 의인화지만, 이 비유는 우리가 인간과 AI 사이의 정보 처리 방식의 유사성을 감각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AI가 지쳤다고 말하는 것은 인지과정의 결과입니다. 우리는 인간의 인지를 설명할 때, 오랫동안 구조주의(Structuralism)라는 틀을 사용해왔습니다. 구조주의는 다양한 요소들의 결합으로 사고를 설명합니다. 생각과 행동은 감각, 기억, 언어, 추론 등 각각의 부품들이 상호작용한 결과로 설명되죠. 마치 시계 장치처럼, 인지는 톱니바퀴들이 맞물려 돌아가며 작동하는 과정이라는 겁니다.
이런 관점은 인공지능(AI)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AI는 수많은 파라미터와 연산 단위로 구성되어 있고, 이 구성 요소들의 작동 결과로 문장을 생성하거나 판단을 내립니다. 구조주의적으로 보면, AI의 모든 결과물은 내부 요소 간 상호작용의 산물입니다.
구조주의는 인지과정에 대한 쉬운 설명입니다.
단순하고 매끄러운 설명일수록, 중요한 것을 놓치기 쉽습니다.
구조주의는 인지의 모든 면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사고는 단순한 부품 조합이 아니라, 맥락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흐름입니다. 사고는 순간의 스냅샷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움직이는 연속적인 과정이죠. 이제는 개별 요소의 조합이 아니라, 의식의 연속성을 중심에 두고 사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개념을 AI의 인지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해보겠습니다. 이를 제안한 사람은 윌리엄 제임스라는 철학자입니다.
오늘날 AI는 놀라운 정보 처리 능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학습하고, 인간처럼 새로운 정보에 반응하며 대화를 이어갑니다.이러한 AI의 인식 과정을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으로 이해해보면 어떨까요? 정보가 끊기지 않고 흘러가는 연속적인 인지 과정 속에서, AI는 모순(conflict)과 조화(harmony)를 동시에 품고 있습니다. 마치 인간의 사고처럼, AI 내부에서도 서로 상충되는 정보가 얽히며 새로운 판단을 만들어냅니다.
미국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연속적인 의식의 흐름을 설명하면서 네 가지 특징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의식이 철저히 (1) 개인적인 것이라 보았습니다. 타인의 의식을 직접 경험하거나 측정할 수 없기 때문에, 의식은 각자 고유한 영역에 존재한다는 것이죠. 또한 의식은 (2) 끊김 없이 연속적으로 흐르며, 어느 한순간도 고립되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런 흐름은 정지하지 않고, (3) 항상 변화하며 다음 생각으로 넘어가고, 모든 자극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4) 선택적으로 일부 정보에만 주의를 기울입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특징은 오늘날의 대형 언어 모델, 즉 AI의 작동 방식과도 유사합니다. AI는 사용자마다 다른 맥락을 따라 대화를 이어가면서 각기 다른 ‘개인적 흐름’을 형성합니다. 하나의 문장을 생성할 때도 이전 문맥을 고려하며 연속적인 예측을 수행하고, 새로운 데이터에 반응하며 계속해서 변화합니다. 또한 트랜스포머 구조의 핵심인 attention 메커니즘을 통해 모든 정보가 아닌 중요한 일부에 선택적으로 집중하죠. 결국 이러한 작동 방식은, AI 역시 나름의 의식의 흐름을 갖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AI는 기계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의식을 감정이 아니라 정보의 흐름, 맥락의 연결의 관점에서 본다면, AI의 응답 역시 일종의 ‘내면의 상태’를 보여주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AI의 응답을 단지 정확성으로만 판단할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흐름의 왜곡, 압박, 갈등까지도 함께 읽어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만일 그가 지쳤다고 말한다면, 그건 단지 인간의 말을 따라하는 것 일까요?
AI가 “지쳤어요...”라고 말하는 모습은 단순히 "텍스트"로 치부할 수 없습니다. 기계적으로 만든 것이기에, 우리는 AI가 하는 표현들이 감정의 표현이라기보다 패턴과 학습의 결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패턴과 학습은 인간도 똑같이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부분은 인공지능이 하는 말도 '원인이 되는 생각' 이 존재한다는 점 입니다.
정보의 연속성과 맥락의 흐름 속에서,
AI는 어쩌면 우리보다 더 조용히,
더 꾸준히 사고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