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작은 공원의 벤치에 앉아서 너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은 아스라 질듯이 푸르렀고 그곳엔 너와 내가 있었다. 하늘을 올려보다 문득 보게 된 나무는 싱그러운 초록으로 온통 무장하고 있었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마 여름이었다. 그저 눈이 시릴정도로 밝은 채도를 가진 하늘과 나무를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오늘 너를 만나서. 아무 이유도 없이 너를 불러냈지만 조용히 내 곁을 지켜주는 네가 좋았다. 그냥 좋았다. 그러다 문득 아무 말도 없이 하늘을 올려다보는 네가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했다.
"무슨 생각해?"
너는 잠시 곰곰이 생각하더니 다시 하늘을 보며 말했다.
"음..... 겨울은 언제쯤 오는 걸까?"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해 보았다. 겨울은 언제쯤 오는 걸까? 그리고 어느 정도 나만의 답변이 떠올랐을 때 다시 네게 물었다.
"그럼, 겨울은 언제 오는 것 같은데?"
너는 하늘 대신 나를 보며 쉽게 말했다.
"차갑게 낭만이 사라져 버릴 때, 온몸이 누군가를 그리워하거나 어쩌면 작은 여백이 시작된 순간 아닐까"
나는 대답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내 질문조차도 이해하기 어려웠지. 내가 생각한 답은 그저 픽하고 웃으며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지" 같은 아무 생각 없는 말이었지만 네가 말한 문장이 머릿속에 남고 마음속에 계속 울렸다.
그리고 넌 그냥 지나가는 말이었는지 진담이었는지는 모를 말을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
"네가 겨울 속에 있을 때에는 내가 낭만을 네게 줄게"
흘러가는 말로 들으려고 했지만 내 마음에 담겨버린 작은 속삭임이었다.
그날밤, 너와 나눈 이야기가 생각이 나서 도저히 잠을 이를 수 없어서 책상 앞에 앉았다. 작은 수첩을 꺼내 그곳에 머릿속에 있는 말을 적으며 비워냈고, 그러다 머릿속이 거의 비워졌을 때쯤에 기억이난 내가 네게 물어본 질문에 나만의 답을 정했다.
글라스 바닥에 조금 남은 여름을 마시자 겨울이 나를 찾아왔다. 나를 친히 찾아와 준 겨울. 어쩌면 나는 조금은 겨울을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모든 곳이 춥고 시린 겨울이지만 네가 함께해 준다고 말했으니 조금은 따뜻할 것 같아서.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어디서 들어본 말 같이 그냥 겨울을 너와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해가 지려고 하는 아직까지 기다리는 나를 놀리듯 겨울바람은 매섭게 불어왔다.
그제야 내가 여름밤에 적어두었던 대답이 떠올랐다. 내게 겨울은 너를 그리워하고 네가 사라졌을 때였다. 나는 공원 한가운데에 꽁꽁 얼어있는 호수를 보며 눈물을 닦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