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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나동 Sep 10. 2023

한국에 오기 전 이 사람을 꼭 만나야했다

세계인은 무엇으로 연결돼 있을까.

그들은 맥도날드에서 빅맥을 먹고 스타벅스에서 카페라떼를 마시고 H&M에서 패스트패션을 입는다.

세계 어디서든 그 맛은 동일하고 커피맛은 비슷하고 옷도 똑같다.

사는 곳은 달라도 사실상 세계 시민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먹고 마시고 입는 공통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니까.

이는 다양한 취향을 획일화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스웨덴에 처음 왔을 때 낯익은 맥도날드와 H&M 간판을 봤을 때 왜인지 반가웠다.

빅맥을 먹고 스벅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셨을 때 느꼈던 이른바 ‘아는 맛’은 익숙했고 편안했다.


그 같은 맛을 위해 그 초국적 기업은 몇몇 특정지역에서 사들인 원두나 식재료를 전세계 매장으로 보낸다.

일견 다량의 원료를 한번에 구입하니 싸게 구입했을 것도 같다.

희한하게도 저렴할 것 같은데 결코 그렇지 않다.

배를 타고 트럭을 타고 전세계 매장으로 운반되는 비용은 만만치 않다.

운송수단에서 화석연료를 태운 뒤 나오는 이산화탄소는 기후위기를 가속화한다.

그 비용은 우리가 내는 가격에 모두 포함돼 있다.

같은 맛을 위해서.

초국적 기업은 외투기업, 외자라는 이름으로, 별다른 어려움 없이 세계 곳곳의 나라에 안착한다.

이들을 위해 각국 정부는 있는 규제도 없애고 오히려 보조금 등을 지원하기까지 한다.

반면 지역의 작은 기업은 각종 규제나 제한으로 뭐 하나 하기 쉽지 않은 생존의 위기에 처했다.

굴러온 돌인 초국적 기업은 끝없는 수익을 올리고 박혀 있던 지역 기업은 쪼그라들고 튕겨나가기 일쑤다.


자본은 이들 초국적 기업보다 더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고 별다른 세금 없이 이윤을 챙겨서 유유히 나간다.

얼마를 벌어가는지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이런 외국 자본을 유치하지 못해 안달이다.

외자 유치 실적이 곧 정부와 지자체의 자랑과 치적이 된다.

세금을 더 걷지는 못할망정 세금을 내리고, 있는 규제도 철폐한다.


우리가 선거로 뽑는 정치권력은 주기적으로 바꿀 수는 있다.

하지만 이 초국적 기업과 자본은 우리 손으로 바꿀 수 없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다.

정권과 정부가 바뀌더라도 이들은 변하지 않는다.

이는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 사회, 문턱이 높아지는 취업 시장, 집중을 거듭하는 도시화, 가속화하는 기후 위기와도 연결돼 있다.

자본과 초국적 기업의 목표는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투자해 더 많은 이윤을 남기는 것이기에.

그들의 머리 속에 '사람'이 있을까?

과연 누구를 위한 세상인가?

그럼 우린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떠났다.

지난 7월 말 스웨덴 생활 1년을 정리하며 반드시 가야 할 나라가 있었다.

바로 영국.

우린 이 사람을 꼭 만나야 했다.

어쩌면 앞으로의 삶에서 등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었으니까.


8월 2일 오전 런던에서 380km 거리의 영국 서남부 데번주 토트네스 위크로 렌터카를 몰았다.

비는 억수같이 쏟아져 시야는 좁고, 운전대도 도로 방향도 반대다 보니 여간 신경 쓰이는 운전이 아니었다.

가까스로 약속시간에 5분 정도 늦게 도착한 어느 시골집에서 백발의 할머니가 환한 웃음으로 우리 가족을 맞이했다.


스웨덴으로 연수를 떠나며 아내는 꼭 만나고 싶어 한 사람이 있었다.

한 명은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였고 나머지 한 명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Helena Norberg-Hodge)였다.

두 명 모두 스웨덴 출신이다.

환경운동가인 그레타 툰베리는 스웨덴에 거주하고 매주 금요일 스톡홀름에서 기후 위기 시위를 하고 있어 그녀를 만나는 건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다만 제대로 된 만남은 이뤄지지 않았다.

생태환경 운동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스웨덴에 살고 있지 않아 아내의 고민이 계속 됐다.

그녀는 영국에 있었다.

아내는 고민 끝에 그녀에게 정식 인터뷰를 요청했다.

사실 그녀가 거절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 입장에선 꼭 만나야 할 이유도 없고 무엇보다 그녀는 너무 바빴다.

전 세계를 돌며 강연하고 각종 생태, 환경 포럼에 참가하며 로컬 경제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었다.

우리가 영국에 머물 수 있는 기한은 한정적인데 그 기간에 그녀가 시간을 내줄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녀 측으로부터 기다리던 연락이 왔다. 인터뷰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아내는 정말 기뻐했다.

기쁨도 잠시 다시 연락이 와서 그녀의 일정이 유동적이어서 시간을 확정할 수 없고 추후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역시 쉽지 않다는 생각과 함께 초조한 며칠이 지나갔다.

그러다가 그녀가 인터뷰가 가능하다며 직접 연락해 왔다.

인터뷰 날짜는 8월 2일.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딱 2시간이었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처음 봤는데도 얼굴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아내 덕분에 책 '로컬의 미래'를 미리 읽었고 아이들과 함께 그녀가 히말라야 라다크에 머무르며 세계화가 침투해 지역 사회와 경제가 망가지는 과정을 고스란히 담은 영화도 봤기 때문이었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듯한 빽빽한 가로수길을 지나자 나타난 굵직한 돌로 쌓은 집에서 만난 그녀는 여느 외국인 할머니같이 푸근했다. 세계적인 생태환경가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집 내부는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이 없을 정도로 평범했다.

정말 순한 덩치 큰 개가 너무 편안하게 거실에 자리를 잡고 누워있었는데 옆집 개라고 했다.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았기에 서둘러 인터뷰를 시작해야 했다.

그녀가 말하는 모습을 영상으로도 담고 싶어 삼각대를 펼쳤는데 이게 자꾸 기울어지고 중심을 못 잡자 식은땀이 흘렀다.

마침내 안정적으로 삼각대를 고정시키고 휴대전화 영상 녹화 버튼을 눌렀다.

그 순간 그녀가 말했다.

"로우 앵글로 찍지 말았으면 해요. 난 권위적으로 보이고 싶지 않아요"라고.

사진 구도에 따른 이미지 효과를 모르고선 그런 말을 할 수 없는데 라는 생각도 잠시, 그녀가 영화를 만들었을 정도로 영상에도 일가견이 있다는 사실이 머리를 쳤다. (보통 권력자들이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로우 앵글로 사진을 찍기도 한다.)

내가 해야 할 역할은 영상, 사진 촬영을 빨리 끝내고 막내와 둘째를 데리고 빨리 집을 빠져나오는 것이었다.

그래야 아내가 마음 놓고 인터뷰할 수 있을 테니까.

첫째는 엄마 옆에서 인터뷰를 돕기로 했다.

난 역사적인 인터뷰 현장을 직관하고 싶었지만 '못 말려 남매'를 데리고 서둘러 퇴각해야 했다. 아쉬웠다.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건 이날 인터뷰 대상자는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혼자였다.

달리 말하면 그녀는 집에 혼자 있었다.

처음엔 누군가 그녀가 인터뷰하는 걸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연세도 있고 그녀를 도울 사람이 있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홀로 인터뷰 질문에 답하고 인터뷰 중간에 직접 차를 끓여 내오고 간단한 다과도 가져왔다.(물론 나는 먹지 못했지만.)

더 기억에 남는 것도 있었다.

보통 이름이 좀 알려진 이들을 인터뷰하면 먼저 예상 질문을 보내라고 한다.

사전에 질문을 받아보고 미리 답변을 생각해 놓거나 어떨 땐 민감한 질문은 빼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그녀는 이번 인터뷰에서 아내가 무얼 질문할지 전혀 묻지 않았다.

다만 아내에게 말한 건 시간, 장소뿐이었다. 그리고 유일한 요구 조건은 즉석에서 말한 '로우 앵글로 영상이나 사진을 찍지 말라는 것'이었다.

난 내 오랜 친구이자 유일한 DSLR 카메라인 24mm 팬케이크 단렌즈가 물린 캐논 500D(이 카메라로 2022년 11월 25일 스톡홀름 기후위기 시위에서 그레타 툰베리도 촬영했다)를 들고 그녀를 찍었다.

조용한 거실에서 질문과 답변만 오가는 인터뷰 중 이 오래된 카메라의 셔터음은 너무 컸다.

인터뷰에 방해가 될 것 같아 최대한 빨리 찍고 나왔다. 그녀의 인터뷰 모습을 잘 담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난 '못 말려 남매'를 데리고 주변을 산책하며 인터뷰가 잘 끝나기를 빌었다.

시간에 쫓겨 어느 집 앞에 대충 주차한 렌터카도 그녀의 집 부근으로 이동시켰다.

그런데 그 주차가 가뜩이나 부족한 인터뷰 시간을 더 까먹은 발단이 될 줄 몰랐다.

호지 할머니 이웃이 연락 와서 '물건을 옮겨야 하는데 주차된 차 때문에 옮길 수가 없다'며 물어와 인터뷰가 중단됐다.

호지 할머니는 직접 이웃을 찾아가 그게 내 렌터카라는 사실을 구구절절 설명하고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그러는 사이 귀한 인터뷰 시간 10여분을 그냥 흘려보냈다는 걸 인터뷰가 끝난 뒤 아내에게 들었다.

아내 역시 처음 시도하는 영어 인터뷰에 무척 긴장했고 나의 엉뚱한 주차로 말미암은 인터뷰 중단 사태로 흐름을 놓치기까지 했다. 미안했다.

많은 질문을 준비했지만 절반도 못 물어본 채 인터뷰는 끝났다고 한다.

아내와 첫째가 한글판 '로컬의 미래' 2권을 들고 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로부터 친필 사인을 받은 게 그나마 위안이었다.


돌아오는 길은 날이 맑게 갰다.

이왕 온 거 인근의 스톤헨지를 보고 싶었지만 이미 입장시간이 지난 상태였다.

그래도 마냥 좋았다.

우여곡절 끝에 아내가 꼭 하고 싶었던 인터뷰를 했으니까.

그걸로 충분했다.



다음은 아내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를 만나고 쓴 인터뷰 글이다.


"세계화에 저항하는 실천, 지구 살릴 상식적인 대안" [로컬이 미래다]


세계화로 전 지구가 몸살을 앓는다.

모두를 잘살게 해줄 묘약으로 여겨졌던, 합리적 자본주의로 포장된 세계화의 실상이 일부 글로벌 기업과 거대 자본의 배만 불리는 구조에 불과했다는 걸 사람들이 깨닫기 시작했다.

장거리 과잉 무역은 지역의 건강한 농업과 경제 선순환을 황폐화시켰고, 사람들은 경쟁으로 가득한 도시로 내몰렸다.

한국은 도시화, 그 중 수도권 집중으로 몸살을 앓는다. 부동산과 교육 문제, 양극화와 인간 소외는 모두 하나의 원인, 즉 세계화로 연결된다.

세계화에 맞서 로컬(지역)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77)를 8월 2일 영국 데번주 토트네스에서 만났다.

그녀는 고전이 된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운다'와 '로컬의 미래' 등을 쓴 저자다.

인터뷰는 통역 없이 영어로 진행했다.

그녀가 라다크에서 그랬듯, 그녀의 이야기를 전달자 없이 오롯이 듣고 전달한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로컬퓨처스 대표는 규제와 세금을 피해 막대한 부를 취하면서 지역을 황폐화시키는 글로벌 기업 주도의 세계화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한국의 잘못이 아니에요. 한국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은 결코 한국 문화의 탓이라거나 한국인의 역량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에요. 세계화 때문이에요. 대부분의 정부가 지지하는 글로벌 경제 시스템이 문제예요. 한국에서는 많은 측면에서 더 심각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이 이를 깨닫고 '지역화(현지화)'로 방향을 전환할 필요가 있어요."


1975년 인도 지역인 히말라야 라다크에 첫발을 디딘 이후 50년 가까이 지역화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 온 힘을 쏟아온 로컬퓨처스의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대표는 현재 한국사회가 겪는 많은 문제가 세계화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여러 문제가 겉으로는 이질적으로 보이지만 실은 하나로 연결돼 있고 그 핵심에 세계화가 있다는 진단이었다.


그녀는 한국을 잘 알고 있었다. 따로 설명하지 않았는데도 한국이 겪는 문제를 술술 풀어냈다. 실제 그녀는 전북 전주시에서 열린 '행복의 경제학 국제회의 전주'에 기조연설자로 참여하는 등 꾸준히 한국에 관심을 가져왔다.


"한국이 현재 겪는 과도한 수도권 집중과 양극화, 인간소외 같은 문제는 영국, 스웨덴, 미국, 스페인 등 모든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다. 한국에서만 원인을 찾으려고 하면 힘들다"는 호지 대표의 조언이 이어졌다. 국내의 수많은 전문가와 행정가가 사안 하나하나마다 붙어 해법을 찾지만 좀체 풀어내지 못하는 문제들인데, 외부인인 호지 대표의 시선이 머문 곳은 달랐다. '문제는 거기가 아니라 여기야'라고 말하는 듯했다.

영문판 '로컬의 미래' 책 표지

■세계화는 기업화 대신 쓰는 암호명


"사람들을 도시로 욱여넣는 기업들 때문에 일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이게 되는 것이지, 원래 일자리는 부족한 게 아니에요. 식량을 기르고, 음식을 만들고, 집을 짓고,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얼마나 많나요.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 대신 의미 없는 일을 하도록 강요받고 있어요. 글로벌 기업들은 소비를 유도해 사람들로 하여금 얼마 안 돼 새 차를 또 사고 싶게 만들고요. 패션을 1년에 한 번 이상 바꾸도록 만들어요. 그것은 당신이 계속해서 충분하지 않다는 느낌을 갖도록 강요하는 기계와도 같아요. 정부 정책 또한 이러한 소비만이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다는 광기 어린 믿음으로 연결돼 있어요. 소셜미디어와 각종 미디어는 어린아이까지 비교와 경쟁으로 내몰고요." 

비교와 경쟁을 통해 사람은 나고 자란 지역에서 형성한 고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다.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 된다.


그녀는 라다크에서 경제 발전의 파괴적인 위력을 직접 목격했다. 경제 체제는 힘을 중앙에 집중시켰고, 교육 기회와 일자리를 인위적으로 줄여 치열한 경쟁을 조장했다. 아울러 아이들의 정신에 깊이 침투해 보편적인 사랑과 인정의 욕구를 소비 욕구로 왜곡시켰다. 결국 라다크는 세계화에 발을 디딘 지 채 10년도 지나지 않아 우울증, 자살, 폭력 사태에 휩싸였고 자연도 황폐해져 갔다.


폴 헬러 전 캐나다 부총리는 "세계화는 기업화 대신 쓰는 암호명이다. 글로벌 자본과 거대 기업이 직원에게 정당한 임금을 주고 싶지 않아서, 도로를 보수하고 공원을 유지하고 노인과 장애인에게 연금으로 돌아가는 세금을 내고 싶지 않아서 세상을 재편하려고 꾸미는 시도"라고 했다. 그녀 또한 이를 인용하며 작금의 기후위기, 식량위기를 비롯해 인류를 위협하는 문제의 핵심에는 결국 세계화가 있다고 했다.


"노르웨이에서 파는 대구 필레는 현지에서 잡은 대구를 중국으로 수출해 가공한 뒤 다시 노르웨이로 수입한 제품이에요. 생선 하나가 1만 6000km를 왕복하는 셈이죠. 호주산 견과류도 중국에 가져가 껍질을 깐 뒤 다시 호주로 가져가고요. 영국산 새우도 태국에서 껍질을 제거해 영국으로 다시 가요." 이처럼 장거리 과잉 무역은 기후위기를 가속화한다. 그녀는 불필요한 무역과 운송을 중단하면 탄소 배출량을 체계적으로, 빠른 속도로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유럽에서 운송세 부과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는 것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추운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오렌지나 아보카도를 먹지 말라는 게 아니에요. 반경 80km 안에서 생산할 수 있는 밀이나 쌀, 우유처럼 그들에게 필요한 기본 식량을 수천 km 떨어진 곳에서 수입하지 말자는 것이에요." 영국만 해도 평균적으로 한 해에 우유 수백만 리터와 밀, 양고기 수천 톤을 수출하는데, 거의 똑같은 양을 수입한다.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유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거대 농장보다 작은 농장 생산성 높아


"현재 대부분 국가의 무역 조약에서는 글로벌 기업이 완전한 자유를 갖도록 정부가 동의해주고 있어요. 자유 무역에는 정부 간섭이나 방해가 전혀 없어요. 반면 한국, 영국 등 모든 정부는 지역 기업, 국내 기업을 규제하고 있어요. 이들 기업은 각종 규제와 세금에 묶인 반면, 글로벌 기업은 규제도 없고 세금도 없어요." 그리고 그것이 완전히 왜곡된 경제적 경쟁의 장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의미 있는 방식으로 무언가를 하려면 가시적인 국제 조약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대부분 대규모 단일 품종 재배의 생산성이 높은 것으로 알지만, 실은 작은 농장에서 다품종 재배하는 게 토지, 물, 에너지 단위당 생산성이 3~5배가량 높다고 했다. 거대 온라인 기업 아마존에서는 소매 매출 1000만 달러당 약 14명을 고용하지만, 시내 중심가 상점에서는 같은 소매 매출을 기준으로 했을 때 47명을 고용할 수 있다. 차익은 모두 글로벌 기업이 가져간다.


"한국인들이 정부와 개별 기업, 지도자를 비난할 것이 아니라, 광기 어린 글로벌 경제 시스템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세계화가 아닌 지역화에 중점을 두는 글로벌 운동에 동참했으면 좋겠어요." 그런 차원에서 그녀는 한국의 역할을 기대했다. 그녀는 9월 29일부터 10월 1일까지 영국 브리스톨에서 개최되는 '플래닛 로컬 서밋'(Planet Local Summit)에 한국인이 많이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행히 그녀는 매년 지역화를 실천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난다고 했다. 공동체도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 "한국에서도 특별히 로컬 푸드, 파머스 마켓과 관련된 이니셔티브가 계속되기 때문에 매우 고무적이라고 생각해요. 세계화에 저항하고 로컬은 부활시키는 양 갈래 해법이 세상에 더 많아져야 해요. 지역화는 글로벌 경제가 입힌 손상을 만회하는 가장 전략적이면서도 효과적이고 상식적인 방법이니까요."


어쩌면 그것은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작은 티베트’로 불리는 라다크 사람들과 함께 웃는 호지 대표

■생태환경 활동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언어학자이자 작가, 영화 제작자, 생태환경 활동가인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국제 비영리 단체인 로컬퓨처스(전신 라다크 프로젝트)의 창립자다. 로컬퓨처스는 지역 커뮤니티와 지역 경제를 강화해 생태적, 사회적 복지를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설립됐다.

로컬퓨처스는 세계 지역화의 날, 라다크 프로젝트, 플래닛 로컬 등을 진행하며 지역화를 위한 연대에 힘쓰고 있다.

호지 대표는 '작은 티베트'로 불리는 인도 라다크의 전통과 변화에 관한 이야기인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등의 저자다. 그녀는 라다크가 외부 세계에 개방된 직후 영화팀 일원으로 라다크를 방문했다. 이곳에서 3년을 보내며 언어를 배웠고, 이후 급격한 변화를 관찰해 책을 썼다. 책은 4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돼 전 세계의 독자를 만났다. 한국에서만 45만 부 이상이 팔렸다.


그녀는 영국계 스웨덴인으로 영국 런던대학과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언어학을 전공했다. MIT에서 '이 시대 최고의 지성'으로 불리는 놈 촘스키와 함께 공부했으며,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쓴 에른스트 프리드리히 슈마허의 이름을 딴 슈마허대학 강단에 서기도 했다. 그녀의 책과 영화, 강연 등은 제인 구달, 달라이 라마, 찰스 3세, 인디라 간디 등을 포함해 다양한 국제 인사의 지지를 받아왔다. 그녀는 문화·생물 다양성의 활성화와 지역 공동체 강화에 기여한 공로로 이른바 '대안 노벨상'인 '라이트 라이블리후드상', '아서 모건상', '고이 평화상' 등을 수상했다.


인터뷰 글 원문 : https://n.news.naver.com/article/082/0001231229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한글판 '로컬은 미래' 책에 남긴 친필 사인. 책에 인쇄된 "South Korea can lead the way"라는 글귀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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