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을 뒤돌아보면, 어떻게 학교로 갔고, 어떤 팔을 뻗어 교실문을 열고 들어갔으며, 어떤 발로 계단을 올랐는지 잘 모르겠다. 무엇인가 중요 사건 외에는 필름이 끊긴듯한 모양새였고, 어색함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은 별것 아니었다. 그저 오늘은 그 과정이 더없이 길게 느껴졌고, 험난하게 다가올 뿐이었다. 마치 누군가 의도한 것처럼, 장난을 치고 있는 것처럼 커다란 장애물들이 계속해서 나의 앞 길을 막고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신이 더 큰 행복을 주기 위해 만든 시련 같기도 했다. 그러나 진짜 신이 존재하는가에 대해서 의구심이 들뿐, 특별한 답도, 긍정적인 느낌의 어떤 신호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저 횡단보도의 흰색 선은 칼날처럼 느껴졌고, 신호등에서 나오는 푸른빛은 그대로 나를 관통하는 레이저같이 느껴졌을 뿐이다. 투명 인간일 때는 이 길이 그토록 짧게 느껴져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길게 느껴져 괴롭다. 그러면서도 내심 길어서 안도하기도 했다.
나의 커다란 힘에 따르는 책임은 다른 것도 아닌 용기가 분명하다. 내가 그것을 두려워하는 순간 나는 이전에 허무했던 투명 인간으로, 아무것도 제대로 만질 수 없는 그저 바라보기만 해야 할지 모르는 유령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니 당당하게 나아가야 한다. 길들이 나에게 날카로운 칼날처럼 달려들고, 고통을 주더라도 모두 덤덤하게 이겨내고 고통스러워도 참고 눈앞으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 여기서 주저앉아 버린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조차도 느껴지지 않는 상태가 될 것 같았다. 분명 그것이 내가 갖게 된 용기라는 힘이 준이며 큰 힘에 따르는 책임일 것이다.
교문 앞에서 맞이하는 마지막 횡단보도를 건넜다. 험난했던 길 같아서 뒤를 돌아보았다. 놀랍게도 그것들은 이전의 공포감을 갖고 있지 않았다. 원래 대로의 형태로 돌아가 아무런 문제도 없는 평범한 상태였다. 두려움이 그렇게 만들었을 뿐이며, 그저 그렇게 나에게 다가왔을 뿐 아무것도 아니었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었다. 학교 안까지의 길이 너무나 멀어 보였고, 내가 발걸음을 움직여도 줄어들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어느 사이엔가 계단 앞에 섰고, 한 발씩 나아갔다. 이제는 발걸음이 무겁게 느껴졌다. 제대로 들기도 힘들었다. 그러나 이겨내야 한다. 나는 나아갈 것이다.
드디어 교실의 문 앞에 도달했다. 당당하게 교실 문을 열기로 다짐하지만 여전히 긴장된다. 교실문을 잡았다 놓기를 몇 번 반복했다. 한번 잡을 때마다, 심장이 요동치는 것 같았고, 그 소리가 이곳을 벗어나 학교 밖까지 들릴 것 같았다. 어느 순간 긴장감 때문에 손은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지금 나 대신 누군가 교실문을 만진다면,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버린 몹시 기분 나쁜 상태의 촉감을 느낄 것 같았다.
그렇게 우물쭈물하기를 몇 차례, 크게 심호흡했다. 그래도 진정이 되지는 않았다. 한 번이 아니면, 여러 번 하리라 마음먹고 몇 차례 더 크게 숨을 마시고 삼키기를 반복하다 힘차게 교실 문을 밀었다. 누군가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교실 문을 여는 소리는 내가 상상하던, 생각했던 것보다 컸다. 어쩌면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쏠려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모두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 나는 더 이상 투명 인간이 아니다. 당당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철홍의 자리 앞까지 가다 보니 어느 사이엔가 심장의 요동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 아직은 그 잔여의 느낌이 있었지만, 조금씩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안정되고 있었다. 그는 어제의 감정이 아직 남아있는지 바로 옆에 다다랐음에도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로 있었다.
“미안해.”
무슨 말을 할지 수백, 수천 번 생각한 끝에 나온 첫마디였다. 나의 말에 그의 시선이 나에게 다다랐다. 여전히 차가웠지만, 이제 더 이상 신경 쓸 사항이 아니었다. 첫마디는 어려웠지만 그다음부터는 자연스럽게 말이 이어졌다.
분명 이런저런 시뮬레이션을 했는데,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이럴 거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수차례의 시뮬레이션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쩌면 별 의미 없는 생각이 분명했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마음먹었다. 나의 입술 위로 떠나는 말들은 어느 순간 나의 생각을 따라잡고 먼저 달려가고 있었다.
“네가 어제 우리 분위기가 별로 안 좋아 보여서, 분위기 환기도 하고, 좋게 풀어보려고 말했던 거 알아. 그냥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했고, 틀어진 것 같은 상황이 답답했어. 근데 그 답답하고 불안정한 느낌을, 내 감정이 제대로 닿지 않아서 느끼는 좌절감이나 불쾌한 감정들을 당사자가 아니라 중재하려던 너한테 다 쏟아냈던 것 같아. 철홍이 네가 나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닌데, 마치 그런 것처럼 행동했던 것 같아. 내가 어떻게 하..”
말은 두서없이 튀어나왔고, 나름의 형태를 갖고 있었지만 의미가 불분명하게 전달될 만큼 어지럽게 펼쳐지고 있었다. 생각이 따라 잡히다 보니 갈수록 심해졌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이어졌지만, 나의 말이 폭주기관차처럼 멈추지 않을 때, 그것을 가로막는 호탕한 웃음소리가 결국 그 열차의 운행을 멈췄다.
“푸하하하! 미친, 뭐야 무슨 소리 하는 거야.”
그의 웃음이 조롱이었을까? 듣기 싫어서일까? 여러 가지 생각이 뒤를 이었다. 그는 그런 생각을 읽은 것처럼 바로 뒤이어 말을 이어 나갔다.
“아 그냥 혼자 좀 꽁해서 있었는데, 뭘 그렇게 장황하게 사과를 해, 짜증 낸 사람 민망하게. 진짜 너는 생각보다 더 재미있는 놈이라니까. 이래서 너랑 친구 한 거 같다. 확실해. 역시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어. 나도 미안해. 나도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고 혼자 좀 삐졌었나 봐.”
순간 그의 말 때문에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이렇게 시원하고 정확하게 사과를 들었던 기억이 있었을까? 아무 이유 없이 나를 때리고, 상처 투성이 얼굴을 보고도 아무 말하지 않던 사람들만 있었다.
물론 그는 분명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들과 조금 다른 점은 그저 그들 중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었을 뿐이었다. 그런 그가 나에게 사과했다는 사실 때문일까. 눈가가 계속 시큰시큰했다. 하지만 참아냈고, 참아내야 했으며, 그것을 감추기 위해 그와 함께 웃었다. 그러자 생각보다 쉽게, 아무 일 아니라는 듯 해결이 되는 것 같았다.
“나는 괜찮으니까, 여친 오면 잘 풀어봐. 여자들 생각보다 오래가니까, 횡설수설하지 말고, 조리 있게 잘 말하란 말이지. 아 모르겠다 어쩌면 쉽게 풀릴지도 모른다만, 아무튼 잘 안 풀려도 걱정하지 마. 잘 안 풀리면 이 형님이 도와줄게. 아니면 같이 다른 방법을 같이 찾아보자. 파이팅.”
그의 파이팅에 엄청난 힘이 났다. 최고의 응원이었다. 그녀와 잘 풀 것이라는 확신은 없었지만, 고민했던 것에 비해 쉽게 해결되는 이 상황 때문에, 고민하던 나의 모습을 비웃는 것 같은 현재의 상황이 또 다른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것 같았다. 거기다가 방금 받은 응원의 말이 이전보다 두껍게 보호막이 되어 나를 지켜주는 것 같았다.
아직 그녀는 오지 않았다. 평소와 비교하면 곧 교실에 도착할 것이다. 조금 긴장이 되긴 했지만 든든한 보호막과 나를 응원하는 그가 내 뒤에 있어 견딜 수 있었다. 할 수 있다고 속으로 반복하고, 제대로 말하자는 생각을 끊임없이 이어나갔다.
나에겐 보호막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다는 다짐이 계속해서 이어지다 보니 어느 사이에 그녀가 교실로 들어왔다. 그녀는 나를 힐끔 바라보았지만, 아무 말 없이 자리로 가서 앉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다가갔다.
“미안해.”
철홍에게 이야기할 때와 마찬가지로 첫 말을 시작했다. 아까보다는 차분하게, 최대한 긴장하지 않으려 했고, 모든 말을 정리하며 말하고자 했다. 물론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말을 이어 나갔다. 다행스럽게도 이번에 말들은 나의 생각을 앞지르지는 않는 것 같았다.
“네가 어떤 기분이었을지 제대로 생각하지도 않고, 지레짐작으로 좋은 방향으로 풀어내려 했던 것 같아. 기분이 상했을 수도 있고, 안타까울 수도 있고, 원하는 느낌을 갖지 못했을 수도 있는데, 아무런 생각 없이 너무 쉽게 이야기를 한 것 같아.”
조금은 정리된 나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밝게 웃거나, 이전처럼 나를 대해주는 얼굴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더 덤덤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짧게 숨을 내뱉고, 나의 말에 대답을 해주었다.
“알았어.”
누군가 우리가 나누는 대화를 보고 성공 유무를 판단한다면, 판결 보류일 가능성이 높았다. 분명 나의 사과를 받아들여 준 것 같지만, 분위기가 아직도 풀리지 않았다. 그녀의 알겠다는 대답은 너무나 차가웠고, 그 차가움이 나에게 온전하게 전달되고 있었다.
이전처럼 나의 힘을, 용기를 얼게 만들지는 않았지만, 나의 생각을 얼려버린 것인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말이 생각을 앞지르길 원했지만, 그 예상 경로까지 모두 얼려버리고, 나의 입까지 모두 얼려버린 듯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그녀 옆에서 우물쭈물하며 서 있자 철홍이 다가왔고, 내 오른쪽 어깨에 손을 올린 뒤 속삭였다.
“고생했다. 내가 방법을 좀 생각해 볼 테니까 일단 자리로 가자.”
또다시 그의 말에 힘이 났다. 어느 사이엔가 수업이 진행됐고,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었다. 나는 쪽지에 제발 도와달라고 썼다. 그리고 그에게 전달했다. 힐끗 그를 바라보자 그는 내 쪽지를 보고 오른쪽 눈을 감은 뒤 오른손을 살며시 들어 올렸다. 그리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올리며, 나를 안심시켰다. 아주 조금 안심이 됐지만, 또 어떻게 모든 수업 시간이 지난 것인지 전혀 기억나질 않았다. 시간은 그렇게 제멋대로 내 생각을 휘저으며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