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결혼식을 올리겠다는 무거운 과제를 가지고, 부산행 SRT를 탔다.
부산역. 부모님이 항상 마중 나와줬던 곳 이었지만, 이번에 나를 맞이한건 여름 임에도 싸늘하기만 한 밤이었다.
"동래로 가주세요."
한번도 타본적이 없었던 집으로가는 택시를 타고 가며, 부산에서의 화려한 추억이 새록새록 스쳐갔다.
"감사합니다, 조심히 가세요"
항상 편한 마음으로 왔던 집 앞에서 나는 잠시 마음을 가라앉혔다. 내 전략은 하나였다.
작전명: 불효자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뻔뻔하게 잘못했다고 인정하고 용서를 빌면 받아들일 것이라 판단했다.
" 나 왔어"
억지로 해맑은 목소리로, 아무일 없다는 듯 들어간 집안은 냉랭했다.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날 보는 아버지, 골 아프단 표정인 동생 그리고 나와주지도 않는 어머니. 내 현 주소였다.
"밥은 먹었냐?"
전통적인 집안 인사로 안부를 묻는 아버지.
"아직. 정신없이 와서 못 먹었어"
밥 먹으면서 얘기 하고 싶다는 의사를 흘렸다.
"그래서. 어떻게 된거야?"
그렇게 상황에 대한 자세한 업데이트를 시작했고, 부모님은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그녀의 집안은 어떤지, 앞으로는 어떻게 할지에 대해 세세하게 물었고, 난 최선을 다하여 답했다.
"결혼식을 부산에서 하는건 무슨 얘기야?"
본격적인 안건을 꺼냈다.
"결혼식은 원래 본가에서 하는거고, 아빠쪽 손님이 많을거니까 부산에서 해라."
"아니, 솔직히 우리 둘 다 서울에 있고 심지어 우리 친척들도 수도권인데, 아빠 손님들 때문에 부산에서 하라고 하는건, 아빠 행사로 만들겠다는거 아니야?"
잘못은 했지만, 그것 때문에 모든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버지는 민망한 표정으로 침묵했다.
우리집은 상당히 가부장적인 집안인데, 특이한 점은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가 가부장적이다. 어릴 때부터 남자는 설거지 하는거 아니다, 바느질 하는거 아니다 라는 말을 어머니가 했고, 가끔씩 손목 아대 바느질을 하시던 아버지는 왜 그런걸 하느냐고 어머니에게 혼났다. 아버지는 티 내지 않으려했지만 체면을 중시하는 분이었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의 체면을 세우는걸 중시했다.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던 나는 블러핑을 치기로 했다.
"그럼 어차피 아빠 행산데, 결혼식 비용은 엄마아빠가 부담해, 그리고 호텔에서 시켜줘!"
난 이 조건을 절대 받지 않을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던졌다. 잠시간의 정적이 흘렀고,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호텔은 얼마쯤 하노?"
충격이었다. 30년을 부모님의 자식으로 살았던 나조차 예상치 못한 어머니의 말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동생)아, XX호텔 결혼식 비용 한번 찾아봐라"
그랬다.
어머니는 집 주변에 있던 호텔의 야외 결혼식을 몇 년 전부터 눈여겨 봤고, 내 아들의 결혼식을 여기서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건 컸지만, 부산에서 식을 올리면 그만큼 축의금이 많이 들어올 것이라는 판단을 어머니는 끝내신 상태였다.
"호텔은 엄청 비쌀걸?"
패배에도 질척거리는 나였다.
"내일 상담해보고 결정하자"
결단력이 좋은 어머니였다.
"여보세요?"
패배한 소식을 그녀에게 전하려 그녀에게 전화했다.
"오빠네 부모님이 부산을 강하게 원하시면 어쩔수 없지. 부산에서 하자"
사려깊은 장모님과 통화 후 마음의 정리를 끝낸 그녀는 이해해주었다.
"그래 고마워, 그래도 아직 협상 여지는 있으니까, 내일 연락할게"
그렇게 가장 힘들었던 부산에서의 첫날 밤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