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don까지 19km
오늘은 Pardon이라는 도시까지 19km를 걷는 일정이다.
Pardon에서 하루 묵고 다음날이면 Santiago de compostela에 도착한다.
캐럴과 수연씨, 무려 2명과 같이 걷는다. 처음 순례길을 걷기 시작했을 때는 쭉 혼자 걸을 것만 같았는데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시각을 공유하며 걸을 수 있다는 게
아직까지도 믿기지 않는다.
셋이 함께 걸으며 완주 후 어떤 시간을 보낼 것인지에 대한 얘기를 했다.
나는 바르셀로나를 수연씨는 스페인 주요 도시들(그라나다, 세비야 등), 캐럴은 산티아고 관광 후 귀국 예정이다.
다들 산티아고 있는 기간이 겹쳐 에어비앤비를 구해 지내기로 했다.
바로 바르셀로나로 넘어가기 부담스러웠는데, 산티아고에서 지내며 놀멍쉬멍해야겠다.
그러던 중 에어비앤비에 초대할 식구가 더 늘었다.
오며 가며 자주 마주쳐 안면이 있던 독일인 가족(엄마와 두 아들)
초등학교생 아들 둘을 데리고 순례길에 올랐다는 대단한 독일 엄마였다.
에어비앤비에 방이 많아 같이 지내자 제안하니, 흔쾌히 받아들여줬다.
이로서 산티아고 에어비앤비 멤버 6명이 모두 구해졌다!
얼마나 걸었을까, 무인 과일 자판대를 발견했다.
예쁘게 장식된 가랜더와 푸르른 나무
그 아래 형형 색깔의 과일들
모두 맛있어 보였으나 순례길에서 가방이 무거워지는 건 사치이기 때문에 오렌지 하나만 구입했다.
가격도 매우 저렴했던 걸로 기억한다.
땅도 짚고, 나무도 짚고 손이 더럽지만 그 자리에서 오렌지 껍질을 벗겼다.
그리고 입으로 쏙
예전 같았으면 항균 티슈로 손을 박박 닦은 뒤 먹었을 테지만, 순례길에서 위생에 대한 강박이 많이 사라졌다.
햇볕에 노출되어 있어 시원하진 않았지만 역시 스페인 오렌지는 실망시키지 않는다.
하루면 갈 수 있는 거리가 남았다.
슬슬 이 길의 끝이 보이는 거 같아 아쉬워진다.
큰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 마을에 진입했다.
산티아고까지 얼마 남지 않아서 인지 걸음에 여유가 생긴다.
얼른 완주하고 싶다가도 이 길을 조금 더 느끼고 싶은 마음..
마을에 도착하니 축제가 한창이다.
추로스도 먹고, 빠에야도 먹고, 립과 소시지까지
음식의 맛은 우리나라 축제 음식 같은 느낌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가려 하니, 스페인 아저씨 3명이 우릴 불러 세웠다.
동네에서 생산하는 와인인데, 먹어보라 건네신다.
우리나라 막걸리잔 같은 컵에 와인을 가득 채워 주셨다.
수연 씨와 캐럴은 술을 잘 못하기에 흑기녀를 자처해 꼴깍꼴깍 마셨다.
포도향이 진하고 드라이한 보랏빛깔의 레드와인
평소에도 드라이한 와인을 좋아하는 터라 맛있게 한 잔 비웠다.
대화는 통하지 않았지만, 우리에게 스페인의 문화를 알리고 이런저런 도움을 주려는 모습이
참 인상 깊었다.
나라면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에게 이렇게 적극적이고 호의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을까
이런 페스티벌을 만난 것도 운이 좋았는데, 특별한 이벤트까지..
산티아고 끝물에 행복이 가득하다.
3시간이 넘게 페스티벌을 즐기고, 남은 거리를 계산해 보니 8km
길을 따라 걷다 우리 목적지까지 버스가 간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진한 와인을 마셔서일까, 아님 순례길 끝무렵이라 마음이 나태 진 걸까
셋 다 버스를 타고 싶은 마음이 스물스물 올라온다.
순례길 완주를 하루 앞둔 오늘
누구라고 할 거 없이 버스 정류장 앞에 섰고, 대중교통의 힘을 빌려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순례길 완주를 하루 앞둔 오늘, 미리 완주를 축하하듯 하루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