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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유 Apr 09. 2024

당신은 죽으면 무엇이 되겠습니까

- 귀신이 되겠습니다 환생을 하시겠습니까





나는 열일곱 무렵부터 보이지 않는 것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 스물셋 무렵부터

잠이 들려고 하면  유체이탈이 시작돼서

보이지 않는 세계를 왔다 갔다 했었다.

훈련이 된, 의도한 이탈이 아니었기에

정말 탈도 많고 말도 많았다.      


뱀의 영체부터 시작해서 신내림을 받으라고

(신령님이 계신) 큰 기와집 대문을 두드렸던 일,

남자의 모습으로 바뀌어

여성의 영체를 사랑하게 됐던 일,


저쪽에서는 동물들도 말을 할 수 있는데,

현실이라고 착각해 고양이에게 '사람들 앞에서는

절대 말하지 마. 들키면 실험당할 거야' 라고

신신당부했던 일. 그리고 나아가는

차크라가 열리고, (영적) 가이드와의 만남까지.          


그 중 깨달은 건 귀신은

우리와 전혀 다른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것.

나 역시 죽을 때  미련이나 분노, 증오를 품으면

가야 할 곳으로  가지 못하고

드라마에서 보던 바로 그,

귀신이 될 수도 있다는 거였다.



귀신도 엄마의 배 속에서 태어난 -

하루하루를 버티며 귀신? 그게 뭐야?

먹고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퇴근 후에는 치맥으로 고단한 하루를 달랬을 -

평범한 김과장이었을 수도 있다는 것.

 


유체이탈의 좋은 점은

- 내가 어느 정도의 의식 수준에 다다를 때까지 -

고통스러운 일들이 많았지만,

이쪽 세상에서는 결코 할 수 없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건데, 그중 하나는 ‘죽는’ 경험이었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내 영체가 훼손되어도

몸으로 다시 돌아오면 회복이 됐기 때문.

물론, 그건 정말 너무 큰 고통의 시작이었지만...  



차라리 죽었으면 할 정도로 끔찍한 경험들을

많이 해야 했지만... 눈을 뜨면 왜 나는 아직도

살아있지? 레일에 깔려서 몸이 갈기갈기

찢어졌는데 왜 살아 있는 거야?

언제까지 이런 경험들을 해야 해?

울부짖었던 시절도 있었지만.



어쨌든 이탈 초기에는 현실인지 이탈인지 구분을

못해서 정말 죽는 거구나, 생각했던 적이 많았다.     


              

한 번은 바다에 빠져 상어(의 영)에게 물려

하반신이 거의 찢겨 나갔는데, 배 위에서

어떤 여자가 필사적으로 내 팔을 잡아당기며

나를 구하려 하고 있었다.



현실인지 이탈인지 나는 구분하지 못했고,

이미 늦은 것 같은데... 라고 생각 하고 있었다.

여자도 그걸 알았는지 눈물을 철철 흘리며 미안해, 미안해요. 구해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요,

나를 끌어올리려 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사람은 죽는 순간에도,

누군가에게 진심을 - 마음을 받으면

구원받았다, 고 느낄 수도 있다는 걸.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도 생각했다.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그래도 고마워요.

부디 나 때문에 죄책감 속에서 살아가지 마요.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이탈했을 때 느끼는 고통의 강도는 다행히

실제 세계보다 훨씬 덜하는데, 그때 느낀 감정은

죽는다는 두려움보다는 감사함이었다.

어떤 존재가 죽어가는 나를 구하려고 했다는 것.

진심으로 울어주었다는 것.

죽어가면서 ( 죽지 않았지만 .. ) 생각했다.

아아, 구원받았다고.



반대로 끔찍한 모멸감을 당하며 죽는 경험을

한 적도 있었는데, 영체가 복구되는 건 한계치가

있는 건가? 머리를 박살 내도 회복이 되는 건가?

궁금해하는 영들에 의해

실험대 위에 올려진 적이 있었다.



나는 '회복된다 해도 고통을 느끼는 건 똑같아.

제발 나를 풀어줘' 라며 애원을 했고,

나를 내려다보던 여자는 딱 한마디를 했다.


'가만히 있어.'


순간, 나는 그 말에 담긴 기운을

캐치할 수 있었는데,

그들은 날 ‘생명'이 아닌 '도구'로 보고 있었다.


그들에게 나는 '인간', - ‘생물' 이 아니었다.

단순한 도구이자 사물.



그리고 그 순간의 모멸감.

인간으로서의 살아온 내 울음과 웃음,

어머니와 아버지, 고통과 깨달음,

인간으로서 살아왔던 내 한 생이 무너지고,

무생물 - 도구로 취급받았다는 절망과 분노가 솟구쳤다.



나는 마음속으로 절규했다.

내가 지옥에 떨어진다 해도 상관없어,

너희들을 죽이고 싶어, 죽여 버릴 거야.

그렇게 몸부림을 치다  몸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때 알았다.



사람은 마지막 죽을 때 한 감정으로 인해

구원받았다 느끼며 눈을 감을 수도,

아니면 원한에 서려 천도를 거부, 그 자리에 맴돌며 귀신이 - 그것도 인간에게 해악을 끼치는

악귀가 될 수도 있다는 걸.



나 역시 그 상태에서 죽었으면 분노에 사로잡혀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웹툰에서 나올 법한 산발의 귀신이 될 수도 있었다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



그러나 사람은 어떤 죽음을 맞이할지 결코 알 수

없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는 것.



그래야 마지막 감정이 어떤 감정이든

그래도 할 만큼 했다, 실패도 있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달렸구나, 후회 없이 갈 수 있다는 것도.



그리고 조금 궁금하기도 하다.

나를 구하려고 했던 그 여자 영은 잘 살고 있을까?

죄책감을 떨쳐 버리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을까?

나를 도구로 보던 그 존재들은, 조금이라도 후회를 하고 인간답게 살고 있을까?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나 역시 어떤 죽음이 온다고 해도

잘 살았구나, 할 만큼 최선을 다해 살고 있을까?



그때의 나에게 ‘최선’ 이란 어쨌든 버티는

일이었다. 무력함에, 분노에, 공포에,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이탈은 강제적으로 일어났고 좆같은 영들은 좆같은 일들을 자행했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버티는 일 밖에는 없었다.



그러나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의 내게

최선이란, 정말 ‘하고 싶은 일’ 을 하는 것.

가슴 뛰는 일을 하며 삶을 건너는 것.



사실 전생에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으면

이런 고통스러운 경험들을 해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그 수많은 밤을 건너 - 결국 여기에 왔다.  

만약 지금 행복한가? 묻는다면 YES.



그걸 다 지나온 자신이 아름다워서, 빛나서 YES.

 봄이라서, YES.



그래, 얼마 전 봄이 오고 마침 꽃이 피기도 했다.



나는 이제, 나의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그림 - 류미영 작가

( https://www.instagram.com/monster_city_ryu_ar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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