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시유 May 16. 2024

마감을 끝낸 후, 우주 한 잔.



하루종일 마음에 드는 문구가 나오지 않아 썼다 지웠다 흑에서 백으로 백에서 개犬로

치환했다 굴렀다 커피를 쏟고 싶은 마음이었다


마감 30분 전에 원고를 발송하고

커피를 한 잔 마신다


아 이렇게 아늑했다니 따뜻하다니.


하루종일 마셨던 커피는 문자와의 사투 덕분인지 삐뚤삐뚤 가시가 흐르는 느낌이었는데 원고를 발송하고 난 후의 우주 한 잔은 요람을 들이켜는 것 같다


더 이상 예전 같은 텐션의 시는 쓸 수 없다고 무언가 다른 감각을 탄생시키지 않으면 더 이상 쓰는 건 무리가 아닐까 고민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생각이 달라졌다 쓸 수 있다, 고 예전과 결은 다르지만

침묵 속에서 다시 춤사위를 끌어낼 수 있다고 느끼고 있다


기폭제를 들이마시듯 이제야 조금씩 감각을 되찾고 있다

몇 년 동안 손을 놓고 있었던 대가를 이제야 평행으로 맞추려 눈금을 들여다보고 있다 아직 멀었지만

더 더 마당을 쓸고 가지런히 낙엽들을 모아 미세히 떨리는 한 순간의 자락도 놓치고 싶지 않다


사실은 이틀동안 마음이 흐드러져 쓰지 못했는데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자괴감에 빠졌었는데 단박에

어르신이 '한심하다' 고 하셨다. 그릇이 되는데도 왜 안 쓰고 있느냐?

어르신들은 냉정하다.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딱, 멈추신다. 도와주시지 않는다.


지금도 어르신들이 보고 계신 걸까. 잘 모르겠다.

인간으로서의 나는 그래 맞다. 한심한 면도 있다. 착한 면도 있지만 이기적이고

자신이 너무 좋다, 고 느끼면서도  어느 날은 머리를 헝클어트리고

모든 것을 마치고 싶은 날도 있다 자락자락 꽃자락을 부러뜨리며

젠가를 끝내고 싶은 날도 있다


이제 자야 할까? 잘 모르겠다. - 자고 싶은 몸의 욕망과 더 쓰고 싶다는 마음의 기폭.

쓰고 싶다, 는 말은 사실은 자신의 내부로 더 파고들고 싶다,

는 말의 다른 버전인 것 같다.

쓴다는 과정을 통해 내면의 마지노선 그곳에 다다라 보고 싶은 것.


피곤하다.

모랑이 (고양이) 가 와서 나를 올려다본다

아아 귀여워.


글자와 생명 (고양이) 사이에서 서성인다 이 새벽.

하루종일 뻐근했는데 오므렸던 발가락들을 모두 핀다


자고 있는 이도 태어나고 있는 이도 있겠지.


이 밤, 모두 평온하길 이 새벽, 저마다의 생 모두 긍휼하길.



이전 04화 버릴 걸 버리지 못하면, 결국 사람은 자신을 버리게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