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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가영 Aug 11. 2024

<언제나 책봄>느리게 나이 드는 습관

미친 사람처럼 달리던 b가 함께 뛰자고 한다

요즘 퇴근 후 주 5일 중 4일은 사람들을 만난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함께 나누다 보면 그간 내가 알고 있던 세계가 전부가 아님을 새삼 느낀다. 많은 이들을 만나는 일 자체가 에너지 소모가 많기 때문에 그동안 관계의 확장을 꺼려왔던 게 사실이다. 좋은 사람들만 만나고 살아도 모자랄 판인데 굳이 퇴근 후까지 여러 사람들을 만나 내 삶을 복잡하게 만들 필요가 있냐 싶어서였다.


하지만 내 삶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예전에는 내 주도로 인간관계를 취사선택 해왔다면 지금은 종종 전혀 예상치 못한 부류의 사람들과 저녁을 먹고 그들의 이야기 속에 빠져 든다. 신기한 건 관계의 확장이 부질없을 것이라고 여겨왔던 내 삶의 지론이 점점 변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나와는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시간이 이렇게 재밌고 유쾌할 줄이야. 가끔 정말 피곤하고 개차반인 부류도 있지만 나름의 대처 요령도 생겨나는 중이다.


하지만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는 말처럼 부작용이 생겼다. 많은 이들의 만남과 동시에 덤으로 생긴 '배둘레햄'과 가정이 아닌 사회에 시간을 쓰고 있는 나에 대한 가족들의 서운함이다.

저녁 자리 대화에 윤활유 역할을 하는 술이 늘다 보니 몸무게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실은 무서워서 몸무게를 재지 않다가 얼마 전 취중에 체중계에 올라갔다 화들짝 놀라 주변에 누가 없나 급하게 두리번거렸던 적이 있다.  퇴근 이후 시간 나의 부재에 대해 가장 서운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애들도 친정 엄마도 아닌 b였다. 새로운 일을 한 지 10개월 차를 넘어가면서 초반에는 다투는 일도 잦았지만 이제는 서로 타협점을 찾게 됐다.  b와 둘이 집 근처 술집으로 가서(또 술이다^^;;; 적당한 음주가 곁들여진 맛있는 저녁식사 자리만큼 관계 개선에 좋은 것이 없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사이좋은 부부가 되어 있다.


그런데 최근 넘지 못할 산이 하나 생겼다. 살살 달래 가며 일과 사회생활을 병행하면 될 줄 알았는데 대뜸 b가 내게 달리자고 한다. 35도를 넘나드는 찜통더위에 헬스장도 아닌 동네를 시간 날 때마다 무작정 달리자는 것이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폭염에 "달리다가 죽을 수도 있어. 참어 여보"라고 말했지만 내 말을 귓등으로 듣고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온 신랑의 얼굴에는 흥건한 땀과 뭔지 모를 희열로 범벅이 되어있다.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다. 근데 이 사람 달리기에 진심이다.

초등학교 시절 600m 달리기 선수였는데 까짓 거 못 달리겠어? 신랑을 따라나섰다. '어쭈 제법 뛰네' 하며

앞서가는 b를 따라 달린다. 마음은 달리는데 육중한 허벅지를 들어 올리는데 힘이 꾀나 든다. 하나 둘 하나 둘 구령까지 맞춰보지만 철렁이는 살과 가쁜 호흡, 여기저기서 솟아 나오는 땀방울은 각각 따로 놀았다. 도저히 못 따라가겠다. 빠른 걸음으로 뒤쫓아 가지만 힘에 벅찬다. '어머 초등학교 6학년 때 100m 15초 기록을 보유했던 나인데 뭐지?' 가까스로 참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달리기를 통해 나의 몸무게를 격하게 느끼고 난 후 고른 책이 정희원 작가의 '느리게 나이 드는 습관'이다.

노년 내과 의사가 알려주는 감속 노화 실천법! 달리기를 하며 체감한 충격적 느낌의 속도로 그 자리에 앉아 단숨에 한 권을 다 읽어버렸다.

'생물학적으로는 누가 노인인가?' 작가가 던지는 화두에 머리를 한 대 쿵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먼저 생물학적으로 노인이란 노화에 따라 몸에 고장이 쌓이고, 그 결과 사람이라는 시스템이 굴러가는 방식에 유의미한 변화가 나타나야 한다. 조직(근육 조직, 지방 조직 등)이나  장기(심장, 콩밭 등) 수준에서 바라보면 한 사람 안에서도 고장이 쌓이는 속도에 상당한 차이가 있는데, 이 고장 정도를 개인 차원에서 더해 모두 더해 본다. 이렇게 더한 고장의 정도가 몸 전체 시스템의 특성에 영향을 줄 정도여야 한다. 그것을 노인의학적으로 정의 내리면 노쇠가 발생해 있는 상태가 된다.


노화의 조건
노화는 내가 살아온 삶의 결과다.


평균적인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젊어서 담배를 열심히 피우고, 혈당을 급격히 흔들리게 만드는 가공 식품 위주로 식사하며, 운동은 거의 하지 않은 채 30년 정도를 성인으로 살아간다고 가정해 보자. 과잉 영양의 결과로 영양 감지 체계에 교란이 생겨 염증성 사이토카인을 내뿜는 복부 지방이 축적되고, 전신의 인슐린 저항성이 서서히 증가할 것이다. 세포는 쫄쫄 굶을 기회가 없으니 자가포식이 일어날 기회도 없고,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미토콘드리아의 기능은 악화 일로를 걷는다. 하지만 이런 변화를 눈치채기 어렵다. 그러던 어느 날 건강검진에서 당뇨병과 고혈압이 생겨났음을 듣는다.


과잉 영양의 결과로 영양 감지 체계에 교란이 생겨 염증성 사이토카인을 내뿜는 복부 지방이 축적되고,

정확히 이 부분을 읽고 나의 뱃살을 만져본다. 만감이 교차한다. 그다음 날 난 미뤄왔던 건강검진 날짜를 잡았다.


걸을 수 없다는 핑계
많은 사람이 피곤하고 시간이 없어서 걸을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정신적 스트레스가 과도해 발생한 피로감은 가짜 피로라고 생각할 수 있다.
걷거나 부드럽게 달리는 등 신체 활동을 하면 오히려 활력을 느낄 수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시간이 없어 걸을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사람 중 하나가 바로 나다.

찔렸다. 그래서 엊그제 저녁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티브이 리모컨을 만지작 거리다가 b와 함께 달렸다.




방학에 집에만 있는 딸이 안쓰러워(아들은 아쉽게도 벌써 개학을 했다.) 신랑과 함께 대전에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미술 전시도 봤다.

부쩍 잘 자라는 딸의 옷도 살 겸 스포츠 코너에 갔는데 b가 대뜸 "자기 달릴 때 신을 운동화나 하나 사. 다 낡았던데..."

심지어는 나이키 매장 마네킹을 보며 딸에게

"엄마 몸매가 이렇게 될 때까지 아빠랑 같이 달릴 거야"라고 속삭이는 게 아닌가?

이 또한 진심이었다.


"결혼도 했고, 아이도 둘이나 낳고, 잘 보일 사람도 없는데 전 이 정돈 충분해요"라고 누군가에게 호기롭게 말한 적 있는데....


이대론 안 되겠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서 작가의 '느리게 나이 드는 습관' 마지막 문장을 떠올린다.


이제 실천만이 남았다. 당신의 1년은 얼마인가.
그것은 우리가 얼마나 의미 있고 건강한 삶을 만들어 가는지에 달렸다.
한 해 한 해 가장 소중한 1년을 만들어 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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