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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컬키트 localkit Dec 10. 2023

대전을 직접 걸어보는 사람들: 대전둘레산길잇기

대전둘레산길잇기, 대전 길의 역사를 새로 쓰다

여기, 대전의 길을 직접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만드는 길은 대전과 전국을 잇는 거대한 철도도, 잘 포장된 고속도로도 아니다. 등산복과 장비로 무장한 이 시민 혁신가들은 20년째 매일같이 대전을 걸으며 사람의 길을, 생명의 길을, 그리고 자연의 길을 잇는다. ‘대전둘레산길잇기’는 2004년 대전과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단체다. 이들은 대전을 둘러싼 138km의 둘레산길을 개척하였으며 이 ‘대전둘레산길’은 2022년 대한민국 제7호 국가숲길로 지정되었다. 대전둘레산길잇기는 대전의 길의 역사를, 철길에서 자연의 것으로 바꿔놓고 있다.

대전둘레산길잇기의 총 회원 수는 9,855명(글 작성 일자 기준)으로 거의 만 명에 달하는 회원을 보유하고 있지만, 가입 조건은 까다롭지 않다. 대전과 자연에 대한 애정, 그리고 기존 회원들과의 산행 경험만 있다면 정회원으로 활동 가능하다. 대전둘레산길잇기 회원들은 대전의 환경의 보존을 위해 노력하며, 살기 좋은 아름다운 대전을 만드는 방안을 고민하고 실천한다. 산의 환경에 대한 세심함과 존중심으로 대전의 둘레길을 걷는 그들은 커뮤니티에서 정기 산행과 번개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가을 내음이 짙어진 10월의 어느 날, 로컬키트는 대전둘레산길잇기 정기 산행에 동행해 그들과 함께 걸어보았다.

사진 속 띠를 달고 대전둘레산길잇기의 일일 회원으로 함께했다.
산행 초보인 우리를 막걸리로 맞이해 주셨다. 당시 마신 막걸리는 대전 지역 막걸리 ‘생유’.


단체를 이끄는 박찬인 교수와 함께 걷다

대전둘레산길잇기 11구간의 시작을 알리는 이정표.

대전둘레산길잇기 노선은 총 12개로, 이를 다 이으면 138km가 된다. 보문산을 오르는 1구간 보문산길부터 동물원을 거치는 12구간 동물원길까지, 각양각색의 매력을 겸비한 둘레산길이 대전을 감싸고 있다. 우리가 등반한 구간은 11구간 구봉산길로, 총길이가 12.7km에 달한다. 11구간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대전의 여러 산들 중에서도 ‘구봉산(九峰山)’을 오르는 구간이다. ‘구봉산’이라는 이름은 ‘아홉 개의 봉우리’를 의미하지만 실제로 봉우리가 아홉 개라기보다는 봉우리가 많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구봉산길은 방동저수지 입구에서 시작해 쟁기봉을 넘어 안영교까지 이어진다.

이 구간에서는 농촌 지역과 도시 지역을 동시에 조망할 수 있다.

충남대학교 박찬인 교수는 2004년부터 대전둘레산길잇기 단체지기로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가 대전둘레산길잇기 활동을 시작한 건 자신의 인생관과 관련이 있다.


“우리 사회가 나를 키워줬기 때문에, 사회에 기여를 하면서 살아야 된다고 생각을 해요.”


박찬인 교수는 숲 운동을 통해 지역사회의 숲을 지키는 ‘대전충남생명의숲’에서도 20년째 활동하고 있다. 대전둘레산길잇기와 대전충남생명의숲은 모두 지역사회의 환경을 가꾸고, 보존하고, 후대에 물려주자는 목표를 가진 단체이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가 있잖아요. 우리가 거닐면서 보는 이 들꽃들의 이름을 다 알면, 산에 다닐 때마다 이 꽃들이 우리에게 인사를 하는 거예요. 각각이 의미를 가지게 되는 거죠. 그런데 이름을 모르면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어요. ‘시이불견’, ‘청이불문’. 보지만 보지 못하고, 듣지만 듣지 못한다는 게 바로 이런 거예요.”


박찬인 교수는 종종 제자들을 데리고 산에 오른다. 그는 산을 걷는 것이 진짜 학습이라고 생각한다. 불어불문학과 교수인 그는 88년 처음 프랑스에 갔을 당시를 회상했다. 그때 그는 길에서 한 문구를 보았다. ‘자연을 존경합시다.’


박찬인 교수는 ‘자연보호’라는 말의 건방짐을 지적했다. 그리고 ‘인간이 어떻게 자연을 보호하는가’라는 생각은 그가 지금과 같은 일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산을 오르는 박찬인 교수와 팀원들의 모습.

둘레산과 대전 시민의 삶


(1) 대전을 걷다, 대전을 알다

“이 꽃은 뭐다, 저 나무는 뭐다, 이런 거 설명해 주고, 또 전에는 소방관 일 하는 회원이랑 등산 안전 이야기도 했어요. 그리고 이 동네는 어떤 동네다 라면서 향토 사학 이야기를 하니까 사람들이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자연도 알고, 등산 안전도 알고, 동네에 대해서도 알 수 있는 거죠.”


대전둘레산길잇기의 산행은 단순한 산행이 아니다. 박찬인 교수의 조그만 강의가 곁들여진 일종의 ‘인문학 기행’이다. 시민들은 산에 오르며 대전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주변의 생태 환경에 더 귀 기울일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이 시민들은 대전을 걸으며 대전의 문화를 향유할 수 있고,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해 더 알아갈 수 있다. 우리가 함께한 산행에서도 박찬인 교수는 대전에 관한, 산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팀원들에게 밤을 한 알씩 나누어주었다. 잣나무와 소나무의 차이에 대한 지식은 덤.

 (2) 대전을 걷다, 대전의 자연을 지키다

대전둘레산길잇기가 대전의 자연환경에 대해 갖는 함의에 대해서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비영리 민간단체로서 회비도 걷지 않는다. 또한 일반 산악회와 다른 점은, 산행이 단체의 주목적이 아니라는 점이다. 회원들은 산을 오르며 잘못된 이정표나 무너진 길들을 시 기관에 신고하고, 산의 보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한다. 회원들이 산을 보는 눈은 누구보다도 세심하다. 다른 누군가가 알아채기도 전에 훼손된 곳을 찾고, 기관에 보낼 사진을 찍는다. 이들은 이렇게 자부심을 가지며 산을 비롯한 대전의 자연환경 보호에 기여하고 있다. 

대전의 아름다운 자연이 보존될 수 있는 건 대전둘레산길잇기의 활동 덕이라고 할 수 있다.

(3) 대전을 걷다, 자유롭게, 평등하게

대전둘레산길잇기에는 특이한 점이 있다. 바로 ‘별명’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회원들은 서로를 별명으로 부르고, 그 외에는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이러한 별명 제도는 회원들이 지위, 나이, 계층 등의 차이가 주는 억압이나 불편함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산행할 수 있게 해 준다. 박찬인 교수의 입을 빌리자면 그야말로 ‘사람 대 사람의 만남’인 것이다. 이러한 편안한 만남 속에서 시민들은 자신이 사는 곳에 대해 이야기하며 대전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게 되고, 이는 대전 시민으로서의 정체성 형성, 그리고 대전의 건전한 공동체 형성으로 이어진다.

이들은 산행 중간에 ‘참’을 나눠먹으며 휴식 시간을 가진다. 이러한 시간도 그들에게는 소중한 교류의 장이다.


앞으로 그들이 걸어 나갈 길

대전둘레산길잇기의 산행은 대전 시민들에게 있어 대전을 이해하는 시간이자, 자연보호에 동참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자, 모든 ‘차이’로부터 벗어난 자유로운 시간이다. 이들의 산행은 대전 시민 개인적 측면에서 보나, 대전 공동체 전체의 측면에서 보나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대전둘레산길잇기는 자연환경 보호 측면에서 갖는 함의도 크지만, 특유의 정체성이 부족하다는 문제가 부각되는 대전에 대해 또 다른 의의를 가진다. 이들의 산행은 시민들이 대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대전의 역사를 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또한 관에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손으로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단체라는 점도 큰 특징이다. 


회원들은 앞으로도 계속 걸어 나갈 것이다. 대전 시민 혁신가들이 앞으로 걸어 나갈 길에는 대전의 산이 있고, 대전의 사람들이 있고, 그리고 대전이 있을 것이다.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은 곳에도 언제나 길은 있었다. 그들이 둘레산길을 개척한 것처럼, 앞으로 대전 자연보호를 위한 새로운 길을 열어주길 소망해 본다.

덧. 걷고 또 걷는다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라는 말이 있다. 길을 가는 인간이란 말이다. 우리 인간은 두 발로 걸으면서, 길 걸으면서 짐승상태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걷는다는 것은 느린 움직임이다. 느리기 때문에 세상의 다양성과 아름다움을 보게 해 준다. 자연의 침묵조차 듣게 하며, 세상에 허덕이던 우리 영혼의 숨을 고르게 한다. 어찌 보면 오직 느림만이 우리를 세상의 매력 속으로, 자연의 재미 속으로, 그 틈새 안으로 이끈다. 둘레길, 오솔길, 에움길에서 우리가 만날 때, 우리는 마침내 세상을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있다. 용도와 소유의 개념으로 세상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있는, 나 이전에도 있었고 내가 죽은 뒤에도 있을 자연을 만나고 느끼면서 행복한 것이다. 그런 넉넉함 때문에 풍경도 보이고 '나'도 보인다. 고은 시인도, 그래서,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을 내려갈 때 보았을 것이다. 걷기는 육체와 영혼을 함께 가꾸기 때문이다. 걷는다는 것은 존재의 총체를 관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가 부채질한 속도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우리는 자동차의 노예, 집의 노예, 직장의 노예, 관계망의 노예로 전락했다. 돈, 획득, 소유, 독차지 따위의 어휘들만을 머릿속에 가득 채운 채, 많은 이들이 어느 순간 걷는다는 원초적 본능을 망각하고 속도의 질주만을 경배한다. 또 어떤 이들은 점점 사적 공간에 틀어박혀, 때로는 몸을 완전히 망각하고, 컴퓨터, 스마트폰, 온라인 기반의 활동 등에 몰입한다. 여가시간조차도 그것들의 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거미줄에 걸린 곤충처럼 많은 이들이 삶의 기쁨, 삶의 역동과 같은 중요한 것들을 잃고, 잊고 살아간다.


보통 평범한 시민으로서 나는 도시건 시골이건 모든 열린 공간에서 자발적으로 자유롭게 걸을 수 있음을 사랑하고, 기꺼워하며 또 향유하고자 한다. 그래서 오늘 같은 방학의 날에는 일상의 책무에서 벗어나 꿈을 꾸며 걷고 추억하고, 사유하고, 기도하며 행복을 느낀다. 루소와 보들레르, 칸트와 하이데거 등 많은 이들이 걸으면서 세상을 바꾸는 위업을 이루었다. 걷는 시간에 느끼는 건 발걸음 하나하나가 사유가 된다는 것이다. 자신으로부터의 도피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흔히 인생을 여행이나 소풍에 비유하는데, 여행이나 소풍 혹은 산책을 떠나는 일은 그 비유를 구체화하는 일이다. 몸과 상상력을 통해 인생을 구현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역시 걷기를 사랑하는 철학자 리베카 솔닛이 "걸어가는 사람이 바늘이고 걸어가는 길이 실이라면, 걷는 일은 찢어진 곳을 꿰매는 바느질입니다. 보행은 찢어짐에 맞서는 저항입니다"라고 한 언술은 늘 내 가슴에 남아 있다. 


대자연은, 산이든 숲이든 아니면 바다든, 신비하고 고유한 힘으로 인간을 위로한다. 숲 속에서 나는 새소리와 더불어, 흘러가는 구름과 더불어 안정과 활력을 얻는다. 자연 속에서 몸과 마음을 치료받으며 행복을 느꼈던 또 다른 사람, 월든의 저자 소로(Thoreau)는 "숲을 걸었더니 내가 나무보다 커졌다(I took a walk in the woods and came out taller than the trees)"고 했다. 걸을 때에는 세상에 빠지지 않고 생각을 펼칠 수 있다. 그래서 걷는 게 좋다. 그래서 걷고, 걷고 또 걷는다. 

2019. 08. 26, 박찬인


·사진: <local.kit in 충청> 혁신팀 김소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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