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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터진마돈나 Aug 02. 2023

두 명의 암환자를 둔 가족.

기적은 두 번 오지 않아.


언니보다 3달 먼저 암환자가 되었던 아빠는 항암 막바지에 중환자실에서 열흘 가까이 물도 못 마시고 누워만 계시다가 마지막 항생제를 투약받고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나셨다. 그 당시 마지막일지 모를 아빠를 보기 위해 지방에서 형제와 친척분들이 모두 올라오셨고 우리 가족들은 그렇게 아빠를 떠나보내는 줄 알았다.

아빠도 의료진도 가족들도 더 이상 어떠한 노력조차 해볼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느껴졌을 때, 기적이 아빠에게 기적처럼 찾아왔고, 아빠는 그렇게 힘들게 암을 이겨낸 뒤 어느덧 완전관해를 코앞에 두고 계신다.

벌써 5년 차에 접어든 아빠는 당신에게 찾아온 그 기적의 시간들을 허투루 보내지 않으셨기에 지금을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암을 이겨낸 아빠는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자전거를 타거나 산에 오르면서 체력을 키웠고 당신만의 루틴을 만들어 스스로 꾸준하게 관리를 해오셨다. 50년 가까이 함께 했던 술과 담배를 완전히 끊고 맥주 한 모금 입에 대지 않았으며 엄마가 해주신 여러 가지 건강식품들도 툴툴대면서 꼬박꼬박 챙겨드셨다고 한다. 물론 아빠도 언니처럼 빵을 너무 좋아해서 엄마의 잔소리를 피해 몰래몰래 드시긴 했었지만.

언니가 사실상 큰 어려움 없이 치료를 마쳤던 거에 비하면 아빠의 암투병은 언니보다 몇 배 더 힘들고 고통스러워 보였었다. 물론, 암환자가 겪는 마음의 불안과 두려움은 당연히 언니도 아빠와 같았겠지만.

나는 언니가 재발되기 전까지의 과정들이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아쉽고 엄마가 아빠에게 했던 것처럼 언니를 제대로 이끌지 못했던 것들이 많이 후회된다.

아빠처럼 죽을 고비를 겪고 암을 이겨낸 것과 비교적 치료의 어려움을 겪지 않고 새 삶을 받게 된 언니가 느꼈던 감정의 무게가 달랐던 것이었을까..

왜 언니는 그때 얻은 그 소중한 시간들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했나.

왜 나는 언니가 술을 마실 때 좀 더 강압적으로 말리지 못했을까.

엄마가 몸에 좋은 거니까 꼭 먹이라고 했던 것들을 왜 나는 더 적극적으로 먹이지 못했지?

언니가 고집부리고 성깔을 부리면 어차피 내가 꺾지 못할 고집이라고 왜 단정하고 포기했을까.

언니는 암 치료 후에 예전처럼 자기가 먹고 싶은 것만 먹었고, 먹기 싫은 몸에 좋은 것들은 여전히 입에도 대지 않았다. 난 그럴 때마다 자기 합리화를 늘어놓는 언니와의 언쟁이 피곤했다. 나는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고 언니 몸은 이젠 언니가 스스로 챙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의 나는 그랬었다. 저러다가 다시 암이 재발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차피 말해도 듣지 않는 언니에게 더 이상 개입하고 싶지 않았다.

어찌 보면 말기암환자에게 찾아온 흔치 않은 기적의 순간을 우리 모두 너무 당연시 여기고 가볍게 잊고 지냈던 게 아니었을까. 언니는 아빠처럼 한 번의 기적을 선물 받았지만, 그것이 기적임을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그렇게 한 번 떠나간 기적은 다시는 언니에게 찾아오지 않았다.




언니의 재발 치료가 끝나고 받게 된 성적표는 우리를 또다시 좌절케 했다.

재발된 원발부위와 전이됐던 골반뼈에 있던 암은 방사선 치료 후 사라졌는데, 다른 쪽 골반뼈 3군데에 새로운 암이 생겨난 것이다. 하얗게 보여야 할 pet ct 화면에 너무도 명확히 찍힌 까만 점 3개.

그 자그마한 점 3개가, 고작 그 작은 씨앗이 앞으로 언니를 지독하게 괴롭히는 괴생물체가 될 줄 몰랐다.


"아.. 000 씨 우리가 우려했던 게 현실이 됐네.."

교수님도 난처한 듯 무겁게 입을 떼셨다.

.............

"저는.. 그럼 앞으로 어떻게 되나요.."

...

"저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어요..?"

나는 언니의 그 말에 결국 울음이 터져버렸다.

"교수님.. 저희 언니 좀 살려주세요.."

지금까지 언니 앞에서 울지 않으려 버텨왔던 내 모든 설움이 홍수가 되어 흘러내렸고 언니도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닦아내고 있었다.

"000 씨.. 우선은 항암 하는 걸 권하는데.. 그건 00 씨가 선택해야 하는 거고.. 얼마를 더 살게 될지는 신만이 아시지.. 앞으로 기도 많이 해요.."

눈물을 멈추고 언니가 물었다.

"교수님 만약 항암 안 하면요? 저 진짜 이번에 다시 항암 하면 귀가 아예 안 들릴지도 몰라요. 항암 안 하면 그래도 6개월은 살 수 있겠죠?"

 "6개월도 못살아요 교수님?"

"아~~ 이 사람아~ 내가 하나님도 아니고 00 씨가 언제까지 살지 어떻게 맞춰~~"

조금 나이가 있으셨던 교수님은 치료 내내 우리 자매에게 꽤나 편하게 대해주셨었고 그 때문에 언니도 교수님께는 징징대거나 때론 투정을 부릴 만큼 편했었다.

교수님의 그 말이 끝나자 언니가 언제 울었냐는 듯 헤헤거리며

"교수님 그래도 설마 항암 안 한다고 제가 6개월 안에 어떻게 되겠어요? 저는요 자식도 없어서 사는 거에 그렇게 미련도 없어요. 저는 죽는 것보다 귀 안 들리는 게 더 싫어요..."


어찌 보면 참 불편하고 철없는 말인데, 그때의 언니는 삶과 죽음에 대한 현실감이 없다 보니 당장 귀가 안 들리는 것에 대한 불안이 더 크게 느껴졌던 것 같았다.


언니의 투정에 교수님은 허허 웃으시며,

"우리 000 씨는 씩씩해서 좋아. 그런 생각도 나쁘지 않아. 그런데 일단은 혈종과에 예약 잡아줄 테니까 상담받아보고 다시 한번 생각한 다음에 결정합시다."

"만약 그래도 항암 안 하기로 마음을 정하면 그때는 다시 골반에 방사선치료를 할 수도 있으니까.. 알겠지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처음으로 언니 앞에서 길 잃은 어린아이 마냥 목이 터져라 엉엉 울었다.

언니가 항암을 안 한다고 할까 봐 무서웠고, 항암을 하면 언니의 귀가 안 들릴까 봐 무서웠다.

무엇보다 언니가 정말 죽게 될까 봐 너무너무 겁이 났다.

나의 그런 맘을 언니가 알았는지 휴지를 건네며 " 야! 너 왜 그래~ 나 죽을까 봐 그래..?" 하며 오히려 깔깔대며 웃었다.

"그래. 그러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제발 항암 받으라고.."

나는 어떻게든 강경한 언니 맘을 돌려놓으려 사정했다.

"아 싫어~~~ 항암 하면 또 머리카락 다 빠질 텐데 예전처럼 다시 골룸으로 살라고..? 그리고 지금도 귀가 안 들리는데 항암 하면 나 진짜 귀머거리 된다고."

"나는 누릴 거 다 누려봐서 사는 거에 대한 미련도 없어. 내가 자식이 있기를 해 남편이 있어. 어차피 사람은 누구나 죽는 거고 난 내가 관리 못해서 그런 거라 누구 원망도 못해."

" 이럴 줄 알았으면 너 말 좀 잘 들을걸. 미안해 김혜영~."

나는 언니 말에 화도 났지만 덜컥 겁이 나서 울음이 더 터져 나왔다.

"그놈의 자식 남편 소리 좀 그만해. 그럼 나는.. 나는 어떡하냐고. 나는 언니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언니 없이 못 살아~ 그러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나 위해서 살아. 언니 죽으면 나도 콱 따라 죽어버릴 거니까 내 생각해서 치료받으라고!"

언니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결국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다.

"진짜? 나 죽으면 너도 따라 죽을 거야?"

"그래. 이 멍청아~ 너도 없는데 이놈의 세상 내가 살아서 뭐 해!!! 나도 따라서 콱 죽어버릴 거야."


언니는 본인보다 더 슬퍼하는 나를 통해 조금이나마 마음의 위안이 되었던 것 같았다.

어느새 늙어버린 부모님과 출가해서 가정을 꾸린 막냇동생에게는 기댈 수가 없었던 언니는, 어쩌면 나에게도 차마 미안해서 기대지 못하고 혼자라고 생각했던 게 아니었을까?

언니는 어쩌면 그때 내가 했던 말들에 의지하면서 더 이상 외롭지 않아 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살다 보면, 일이 잘 안 풀릴 때는 무슨 노력을 해도 안되고 뭐를 해도 꼬일 때가 있다.

그날이 딱 그랬다.

언니가 항암을 하기로 마음을 바꾸고 혈종과 진료를 받으러 가는 그날. 하필이면 딱 그날 내가 장염에 걸렸고, 나를 대신해 언니를 태우고 병원을 가기로 한 동생은 약속 시간에 맞춰 도착했지만, 병원길이 초행이었던 데다가 네비가 이상한 길로 안내한 덕에 언니의 진료시간에 조금 늦어질 것 같은 상황이 발생했다.

그런 상황을 모르고 집에서 화장실 변기와 씨름하던 나에게 언니가 울면서 전화를 해왔다.

"혜영아~~ 나 어떡해~지금 길을 잘못 들어서 진료시간보다 5분 정도 늦을 것 같은데 병원에 전화했더니 내가 마지막 진료라서 1분이라도 늦으면 교수님 퇴근하신대. 어떡해.."

나는 내가 해결하겠다고 하고 병원에 도착하면 바로 진료실로 올라가라고 언니를 진정시켰다.

병원과 통화가 된 나는 환자가 5분 정도 늦을 것 같은데 양해 좀 부탁드린다고 사정했지만, 간호사의 대답은 냉정했다. "000님이 마지막 진료라 제시간에 못 오시면 저희 교수님은 1분도 안 기다리시고 퇴근하십니다."

이번 진료를 못 받으면 다시 예약 잡는데 몇 주 혹은 그 이상이 될 텐데 이번에 항암 받아야 되는 환자라 꼭 좀 교수님께 부탁 좀 드려달라고 사정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똑같았다.

나는 전화를 끊고 동생이 미친 듯이 신들린 운전을 해서라도 제발 제시간에 도착하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20분 정도가 지났을까.. 핸드폰이 울렸다.

"......"

핸드폰에선 언니가 서럽게 우는 소리만 들려왔다.

"에휴.. 진료 못 받았어?"

"나 진료실 앞에 도착하니까 6분 늦었더라.. 간호사가 교수님 퇴근했다고 다시 예약 잡아야 된다는데 제일 빠른 게 3주 뒤래."

"나 항암 안 할 거야. 자기네는 진료 볼 때마다 1시간도 넘게 환자 기다리게 하면서 사람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데  6분을 못 기다려주고 퇴근을 해? 내가 6분도 못 기다려주는 의사를 어떻게 믿고 내 목숨을 기겠어. 제발 좀 기다려달라고 그렇게 사정사정했는데.. 흑흑.."


그 여교수님은 예전 언니에게 머리카락 싹 다 빠지니까 가발 준비하라고 말하며 환자를 앞에 두고 퇴근 준비를 했던 그 교수님이셨다.


물론, 시간에 도착하지 못했기에 일어난 사건이었지만 그 일로 인해 겨우 마음을 돌렸던 언니는 결국 항암을 포기했다.

어찌 보면 그날의 작은 사건이 나비효과가 되어 지금에 이르게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내가 그날. 하필 그날,  장염에만 걸리지 않았었다면. 그냥 다 내 탓이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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