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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메리 Dec 15. 2023

한쪽소설-She's gone.

그녀가 떠난 후 생긴 일

세상에 나 혼자만 동떨어져 있는 것 같다. 모든 게 다 꿈만 같다. 혜수가 떠난 후부터 모든 게 달라졌다.

30년 전 혜수를 만난 게 문제였을까? 어떻게 인생이 이렇지? 나한테 무얼 가르쳐주고 싶어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혜수의 조카 시영이 다시 말하기 시작한다.

"저기요. 제 말 알아들으셨어요? 제가 혜수 고모의 하나뿐인 조카라고요. 그래서 이 집을 팔려고 하니까 그렇게 알고 계세요."

나는 이게 무슨 소리인지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겠다.

도시 끄트머리에 위치한 24평의 소중한 우리 아파트를 왜 이 사람이 판다고 하는 걸까?

이 아파트는 나와 혜수가 20여년 가까이 살았던 따뜻한 보금자리인데 도대체 이 사람이 무슨 권리로 이러는 걸까?

"어휴. 아니 무슨 말씀을 좀 하세요. 답답해 죽겠네."

나는 더 굳게 입을 다문다.

"아~ 됐어요. 됐어. 아무튼 그렇게 할 거니까 그리 알고 계세요. 집 팔릴 때까지는 사셔도 되는데 웬만하면 그전에 나가주셨으면 좋겠네요. 이것도 많이 배려해 드린 거예요. 아시죠?"

시영이 현관문을 쾅 닫고 나가는 소리가 내 마음을 더 짓누른다.


다음 날 멍하니 앉아있는데 갑작스레 초인종 소리가 울린다.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행복 부동산에서 왔어요~ 집 보러 왔습니다~"

높은 하이톤의 밝은 목소리다. 벌써? 아직 혜수의 숨결이 가시지 않은 이 집에 낯선 누군가를 들이는 게 싫어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

"저기요? 계세요?"

재촉하는 소리가 들린다. 마지못해 문을 열어준다.

부동산 중개인을 따라 신혼부부로 보이는 젊은 남녀가 밝은 웃음으로 인사하며 들어온다.

기분이 이상하다.

젊은 남자의 붙임성이 유독 좋다. 눈치가 없는 것도 같다.

내 얼굴에 드려진 그늘이 그 남자의 눈엔 보이지 않나 보다.

"우와~ 집이 너무 이쁘네요! 정말 깔끔하게 잘 꾸며놓으셨네요! 자기야~ 어때? 이 집 너무 이쁘지 않아?"

젊은 여자는 너스레를 늘어놓는 남자를 흘겨본다.


혜수와 나도 처음 이 집을 봤을 때 그랬지.

혜수는 마냥 집이 좋다고 칭찬해 대는 와중에 나는 이곳저곳 손볼 곳만 눈에 들어왔었다.

그래도 우리 둘이 마련하는 첫 집이라는 사실에 들떠있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20년이나 지났지만 내가 매일 쓸고 닦고 신경 쓴 탓에 우리 집은 친구들 사이에서도 아기자기하고 예쁘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나는 그 자부심으로 우리 집을 지켰다.


다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친구 분과 같이 사시나 봐요? 사진들을 보니 엄청 사이가 좋으시네요~"

친구? 하하하...

30년 동안 연인으로 동반자로 살아왔어도 남들 눈엔 여전히 친구로 보이는구나...

우리를 부부로 세상에서 인정하지 못하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가시 돋친 말이 나온다.

"친구 아니에요. 제 아내였어요."

"네? 아내요?"

당황한 남자의 옆구리를 여자가 쿡쿡 찌르는 게 눈에 보인다.

"아이고~ 젊은 신랑이 실없는 소리를 했네~ 지금도 집을 너무 깔끔하고 이쁘게 잘 꾸며왔고만요. 그래도 인테리어 한 지 오래됐으니까 두 분은 어떻게 꾸밀지 한번 쭈욱~ 둘러보세요~ 하하하"

"안 돼요."

"네?"

"이 집은 우리 집이에요. 안 팔아요. 나가세요."

"네? 아니 무슨 소리예요. 어제 조카분이 빨리 팔고 싶다고 신신당부하셨는데요~ 이야기 못 들으셨어요?"

"그 사람 우리랑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이 집은 우리가 20년 동안 살았던 집이에요. 아무도 함부로 못 팔아요. 그러니까 빨리 나가세요."

"아니~ 참나~ 이게 무슨..."

중개인과 젊은 부부는 황당한 기색이 역력하다.

"잠깐만요. 그분이랑 통화 좀 할게요."


"여보세요? 김시영 씨 맞습니까? 지금 집 보러 왔는데 여기 계시는 분이 안 팔겠다고 나가라고 하셔서요."

"그 사람이요? 그 사람은 그 집에 아무 권리 없어요. 우리 고모랑 같이 살던 분인데 그냥 괜히 고집 피우는 거예요. 제가 그 집 상속받는 거니까 그 사람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진행하세요."

"네? 아니 이게 무슨.... 아이고... 복잡하네... 이런 거는 미리 말씀을 해주셨어야죠. 이러면 우리가 중개 못하죠. 그런 물건인지 알았으면 전혀 다릅니다."

"뭐가 복잡하다는 거죠? 그 사람은 엄연히 남이에요. 아무 권리가 없다고요. 그 집은 제 거예요."

"그게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에요. 부동산 전혀 모르나 봐요. 어휴... 일단 알겠습니다."


중개사가 짜증이 잔뜩 난 채로 말한다.

"상황이 복잡하게 됐네요. 우리 다른 집도 있으니까 그 집 보러 가요. 거기가 전망도 더 좋아요."

젊은 부부는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고 중개사를 따라 나간다.

나가는 그들을 보자니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그날 저녁, 시영이 다짜고짜 열쇠를 따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다.

"내가 진짜 어이가 없어서, 이게 무슨 짓입니까? 좋게 좋게 말할 때 좀 들읍시다. 네? 아니 고모랑 잘 지내셔서 잘 대해 드릴랬더니 이 무슨 깽판을 칩니까? 이런 식으로 나올 거면 당장 나가세요!"

시영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데도 내 귀에는 아무것도 안 들린다. 나는 그저 거실 소파에 앉아 베란다만 쳐다보고 있다. 그런 내가 답답했는지 시영이 어깨를 잡고 흔들어댄다.

"이봐요! 말을 좀 하세요! 네? 진짜 답답해 미치겠네!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저도 어쩔 수가 없어요! 이번 주까지 짐 싸서 나가세요! 알겠어요?"

시영은 나를 붙들고 한참을 소리도 질렀다가 회유도 했다가 난리를 피우다가 최후통첩 마냥 돈이 얼마쯤 든 봉투를 던지고 나간다.


이게 혜수가 떠나간 삶인가.

아니 혜수는 나를 기다리고 있다.

저기에서 나를 부른다.

분명 내가 빨리 오기를 바라고 있을 거다.

혜수를 혼자 둘 수 없다.

나도 모르게 발길이 베란다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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