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활기찬 현대중공업 신조선 인수 분위기
여자 항해사부터 선박교통관제사까지
울산 현대중공업으로 출퇴근하던 하루하루는 정말 정신없이 지나갔다.
모텔에서 출퇴근을 하며 한 달 동안 선박 출항 준비를 하는데 배에 중공업 사람들부터 선박 검사관들에 해운회사 사람들까지 매일 북적거렸다.
태국에서 본 사람들 숫자보다 훨씬 많았다.
어딜 가나 사람들과 부딪쳤다.
그런데 거기에 일하던 여자들이 많아서 상당히 놀랐다.
당연히 이번에도 여자는 나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그렇게 섞여있는 환경이 반가웠다.
페인트통을 들고 다니면서 마감처리를 하는 분도 계셨고, 거주구역에 선원들이 쓰는 방들을 세팅하고 청소해 주는 분들도 계셨다.
나중에 시운전을 하러 출항을 했을 때는 대량의 식사 준비를 해주는 분들도 여자들이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일을 하는 사람들이 되게 활기차 보였다.
정문을 오가며 보는 사람들도 모두 얼굴이 밝아 보였다.
저기 걸어 다니고 자전거 타는 사람들 모두 부장이라 월급 엄청 많이 받는다고 하더니 그래서 그랬는지 전체적인 분위기가 밝아서 좋았다.
그때 우리 배 담당 부장님이 나에게 소개팅을 시켜준다고 여러 번 권유한 적이 있었는데, 내가 계속 거절했더니 결국 그 남자를 우리 배로 데리고 와서 인사를 시켰다.
아마도 울산에 젊은 여자가 잘 없으니 좋은 마음에 그러셨던 거 같은데, 그 남자는 그런 오지랖을 좋아하는 거 같지 않았다.
나도 뭐 니가 그렇게 맘에 들지 않았거든? 흥!
그래도 그때 내가 그 남자한테 메일이라도 하나 보냈다면 지금 미래가 좀 달라졌을까 싶은 생각이 가끔 드는 걸 보면 많이 아쉬웠나 보다. ㅎ
출항날짜가 임박하면서 처음에 여유롭던 시니어 사관들이 점점 긴장하는 게 눈에 보였다.
부원들은 필리핀 선원들로 정해졌고 출항 며칠 전에 승선을 했다.
실항기사는 이번에도 없었다.
필리핀 선원들은 미얀마에 비해 게으르고 일도 대충 해서 별로라고 그랬는데, 겪어보니 진짜 그랬다.
미얀마 사람들이 군부정권의 영향인지 우리나라랑 성향이 정말 비슷했다.
그래서 마찰이 크지 않았는데 필리핀은 서구권 영향을 많이 받았는지 한국 사람들과 부딪히는 면이 있었다.
한마디로 일을 시키면 시키는 대로 잘 안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필리핀은 세계에서 선원이 제일 많고 인건비도 저렴한 편인 데다가 일을 대충 해도 영어 소통이 가능하니 회사 입장에선 고용을 할 수밖에 없다.
내가 탔던 배 중에
가장 큰 4,600TEU에
길이 약 300미터짜리 컨테이너선의
처녀항해를 할 준비가 끝나갔다.
*처녀항해(Maiden voyage, First vayage)
: 신조선의 첫 번째 항해를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