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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도우로 강과 갑작스러운 다리 경직

포르투

by 명진 이성숙


아름다운 도우로 강변에서 저녁을 맞는다. 1월 6일, 한겨울인데도 낮 기온은 섭씨 21도다. 선선한 가을 날씨지만 밤이 되니 쌀쌀하다. 포르투는 몇 년 전 다녀간 후 꼭 한 번 다시 오고 싶었던 도시다. 도우로 강의 반짝이는 물결과 깔끔한 맛을 주는 바람, 선한 얼굴의 포르투 사람들, 강변을 향해 늘어선 오래되었으나 낡지 않은 기품 있는 건물들, 로마나 스페인의 오래된 건축물이 자신의 위용을 과시한다면 도우로 강가의 건물들은 시간에 마모되며 세기를 넘어 흘러온 듯 보인다.


반짝이는 물결은 밤의 조명을 받아 갖가지 빛을 담아낸다. 사랑스러운 풍경이다. 흰 천막을 시적으로 펼쳐 놓은 카페들, 그중 한 곳에 들어가 난로가 놓인 한쪽 테이블을 차지한다. 주문한 샹그릴라가 나오고 이어 낙지볶음이 나온다. 낯선 맛에 나는 감탄한다. 비행기에서 얻어 온 고추장 생각 같은 건 들지 않는다. 포르투에 머물기로 했다면 포르투 맛을 저장하는 게 맞겠지. 늦은 저녁을 마친 나는 도우로 강을 가로지르는 돈 루이스 1세 다리를 배경으로 도우로의 야경에 취한다.


천 년은 되어 보이는 포르투 거리, 이 거리에 걸맞은 게스트하우스는 좁고 아늑하다. 내 방은 옛날 영화 속에서 보던, 나무 덧문이 달린 밖으로 열리는 창을 가졌다. 덧문을 열어두고 커튼을 젖히면 도우로 강이 눈앞에 펼쳐진다. 아름다운 밤이다. 나는 이 여행 동안 '아름다운'이라는 수식어를 얼마나 많이 쓰게 될지 모른다, 달리 떠올릴 수사를 찾지 못하겠으니. 내가 짐을 푼 게스트 하우스는 돌집이다. 몇백 년 전 누군가 살았을 집이라는 생각에 구석구석 돌아보게 된다. 창틀은 육중한 돌로 이루어져 있다. 페인트칠도 되어 있지 않은 채 알몸을 드러낸 돌기둥에는 못 자국인지 어떤 구조물과 연결되었던 자국인지 모를 구멍이 제법 크게 나 있고, 오랜 세월 사람의 손이 닿은 듯 모서리는 반들반들 윤이 난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밤에 뜻하지 않은 통증이 찾아온다.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다리 경직이다. 죽음 운운하니 과장되게 들릴지 모르나 20시간이 넘는 비행과 유럽의 찬 공기, 패딩 점퍼가 비에 흠뻑 젖을 때까지 포르투행 버스를 찾아 헤매던 리스본 오리엔테 역에서의 분투 등이 약골인 내게 무리였던 게다. 다리에 몹쓸 쥐가 나서 온몸을 옥죈다. 발가락부터 종아리, 허벅지까지 일순간 시작된 마비가 쉬이 풀리지 않는다. 침대에서 기어 내려와 마그네슘을 찾아 두 알을 삼키고도 나는 비명을 내지른다. 조금 전까지 운치를 내뿜던, 돌벽이 그대로 드러난 방은 이제 냉기로 얼얼할 뿐이다. 낡은 온풍기 하나가 찬 공기를 밀어내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심한 경직에 냉기는 그야말로 쥐약이다. 나는 마비된 발과 다리를 안고 울음을 터뜨린다. 물을 마시고 양말을 찾아 신고 온풍기 앞에 발을 들어 올린다. 비타민과 칼슘, 만약을 위해 챙겨 온 공진단까지 모두 꺼내 삼킨다. 그러는 동안 한 시간가량이 흐른다. 차츰 몸에 온기가 돌아온다. 창밖으로 도우로 강물이 되살아난다.


막연히 덮쳐 오는 불안(가령 폭풍이나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일, 그리고 전쟁 따위)과 구체적이고 선명하게 내 앞에 드러난 고통은 무엇이 더 폭력적일까? 내 경우, 명백히 후자다. 감당할 수 없는 구체적 통증 앞에서 나는 죽음의 공포까지 느낀다. 다시 또 심한 경직이 온다면 그때 나는 모르핀을 찾아 나설지 모르겠다. 차라리 죽음을 맞기 위해서 말이다. 시간의 확장에 대한 갈망 따위는 이 폭력 앞에서 스러진다.


참, 나란 작자의 가벼움이라니… 경직이 풀리자 나는 부끄러워진다. 한껏 낭만에 젖었던 마음이 일순간 죽음에까지 이르다니 말이다. 나는 겨우 온기가 돌아온 다리를 끌어안고 그대로 쓰러져 잠든다. 여행 첫날밤이다.



잠시 비 그친 도우로 강변.
도우로 강의 눈부신 야경. 왼쪽에 강을 향해 서 있는 건물이 게스트 하우스다. 멀리 보이는 교각은 돈 루이스 1세 다리. 이 다리를 건너면 포르투의 유명한 와인, 포트와인 산지다.
비가 내려 반짝이는 강물 위에 유람선이 정박해 있다. 강가에는 주점과 레스토랑이 늦은 시간까지 영업 중이라 강변을 한가로이 걷다가 아무 데나 앉아서 한잔하기 그만이다.

도우로 강이 바라다 보이는 오래된 게스트 하우스 좁은 객실. 이곳 집들은 과거를 훼손하지 않기 위함인지 증축이나 개축을 하지 않는다. 보존을 위해 수리를 할 뿐. 페인트칠도 되어 있지 않아 돌기둥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돌집은 냉기를 가득 머금고 있다. 작은 난로가 하나 있지만 방안을 데우기엔 역부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낭만적인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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