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부페이라
포르투 깜 파냐 역에서 오전 10시 18분 기차를 탄다. 가난한 여행이지만 호사를 누려보기로 하고 열차 1등 석을 예매한다. 편도 105유로.
깜 파냐 역에서 알부페이라까지 6시간 15분이 걸린다. 열차 좌석은 넓고 아늑하고, 점심은 식당칸에서 판매하는 라면과 수프로 때운다. 맛도 비주얼도 나쁘지 않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 나는 다음 일정을 연구한다. 어디로 가야 할까, 어디에 묵을까... 그러는 새 경적이 울린다. 벌써 조그만 시골역 알부페이라 페레이라스 Ferreiras 기차역에 도착한 것이다. 가방을 끌고 밖으로 나오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택시 스탑에 대기하는 택시가 하나도 없다. 미련스럽게 택시를 기다리는데 해가 진다. 결국 우버 택시를 불러 숙소까지 간다.
값싼 숙소를 찾다 보니, 심하게 비탈지고 낡고 작은 집이다. 올드 타운 중심이라는 위치만 확인하고 돈을 지불했는데, 집 찾느라 두 시간을 헤맨다. 시골마을이라 그런지 영어 되는 사람도 없다. 통신 장애까지! 전화기가 먹통이다. 우버 택시 기사가 인도 출신, 영어와 포르투갈어가 되는 사람이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가 돌아가지 않고 집 찾기를 도와준다. 엘로우와 와이트가 칠해진 벽이라는 정보와 번지수 16. 한양에서 김 서방 찾는 식이다. 같은 골목을 몇 번이나 오르내리고, 좁은 골목에서 가방을 몇 번이나 옮기는지... 지나가는 동네 사람은 우리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지경이다. 우리는 정말이지 2시간 넘게 헤맨 끝에 마침내 대문 옆에 장착된 턴키를 뽑는다. 인도인 택시 기사에게 머리가 땅에 닿도록 감사인사를 건넸다. 현관문을 열자 싱크대 선반에 쌀과 커피가 나를 마중하듯 놓여 있다. 조개껍질을 한 소쿠리 담아 장식해 둔 식탁에 손가방을 내려놓고 소파에 풀썩 주저앉는다. 안도와 함께 피로가 밀려온다. 갈증을 참을 수가 없어 오래 앉아 있을 수가 없네…. 서울에서 준비해 온 휴대용 정수기를 꺼낸다. 물부터 마셔야겠다. 일어난 김에 저녁을 준비한다. 바닷가 코지 cosy 레스토랑은 물 건너갔다. 찰기 없는, 저기 놓인 쌀과 가방에서 꺼낸 컵 라면과 고추장이 내 저녁이다. 점심을 위해 기차에서 사 먹은 라면은 감성, 이 저녁의 라면은 나의 현주소다. 여행이 제대로 시작된 느낌이다.
여행의 기분을 만끽하기 위해 포르투의 첫 숙소는 도우로 강이 내다 보이는 예쁜 스위트 룸이었다.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서 얻은 알부페이라의 작은 아파트는 올드타운 중심에 있다. 음, 이건 광고에 올라와 있던 말이고, 이 집은 6,70년대 서울의 삼양동 달동네를 연상시키는 언덕배기 동네 끄트머리에 있다. '올드'는 '낡았지만 느낌 있다'로 해석될 때 감성어, '해지고 닳아 볼품없다'에 무게가 실릴 때는 그저 그런 일상어가 된다. 낡고 퀴퀴하고 불편한 나의 숙소는 향이 없는 향초 같다. 갈등이 시작된다, 옮길까….
좁은 소갈머리 때문에 밤새 고민에 시달리다 잠을 설친다. 알부페이라 저 멋진 해변이 있는 곳으로 숙소를 바꿔야 하나… 방값은 완불되었고 이대로 나간다 해도 환불은 절대 안 된다. 애초 알부페이라 이 시골까지 내려온 이유는 언덕 위 하얀 집을 배경으로 주황으로 물드는 저녁 하늘을 보기 위해서였다. 숙소를 옮기기 위해서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야만 한다. 돈을 날려야 하는 상황이므로. 해 떨어진 밤길 좁은 골목을 헤쳐 돌아오기가 쉬울까…? 이틀 후엔 이른 아침 세비야로 넘어가야 하는데 가능할까…? 새벽까지 고민한 나는 결국 이유를 찾아 낸다. 파로를 거쳐 스페인 세비야로 가기 위해서는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한다는 점. 이른 시간에는 밥 먹을 곳이 없다는 점. 집에서 식사를 하려면 마트에 다녀와야 하는데 이 비탈길을 걸어서 장본 음식을 들고 오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 등이다.
포르투갈은 남북으로 길게 놓인 땅, 유럽 대륙의 서쪽 끝이다. 이곳은 8시가 지나야 하늘이 부옇게 밝는다. 페레이라스 역에서 세비야까지 가자면 대여섯 시간은 잡아야 하고 나는 일찍 집을 나서야 한다. 오늘처럼 늦은 시간에 당도했다가는 또다시 집을 찾아 헤매는 고생을 하게 될지 모른다.
낯섦과의 조우가 여행의 본질이긴 하나 낯섦은 불안의 실체이기도 하다. 불안감이 깊어지면 삶은 초라해진다. 숙소를 옮길 이런저런 핑계를 찾아낸 나는 나의 편도체에 안정을 주기로 한다. 아이패드를 열어 숙소를 뒤적인다. (속으로는, 참을성이라고는 없는 내 성격은 여행에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에 시달린다.)
(위) 포르투갈 국영철도 식당 칸에서 먹은 컵라면과 아보카도수프, 보기 보다 맛은 좋았다. (좌) 올드타운 낡은 집 옥상의 감동 일출, (우) 숙소 옥상의 낡은 테이블